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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꿈속에서 뭘 잃어버린다. 어제는 전동 킥보드를 잃어버렸고 그걸 찾고 나니 이번엔 스키 폴처럼 보이는 지지대가 안 보였다. (전동 킥보드를 타는데 스키 폴은 왜 필요한가?) 대궐 같은 집에는 작은 방이 몇 백개는 돼 보였지만 꿈에서는 오직 대여섯 개의 방만 강박적으로 등장했다. 뒤진 곳을 뒤지고 또 뒤졌다. 엊그제는 호텔의 널찍한 수영장 위를 날아다녔다. 몸이 가뿐했고 모두가 나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어쩌면 스키 폴은 내일 수업에 빠진 게 없나 생각하는 마음일지도 모르지만, 잃어버린 게 그것뿐인지는 모르겠다. 꿈에 물이 나온다고 해서 모두 은총인 건 아니다. 이제는 꾸지 않는 꿈이지만 호수로 둘러싸인 학교는 단골 소재였다. 이번 꿈에선 다리가 무척 가볍고 기분이 좋았던 걸 보면 다리 수술을 하고 나서 결과가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꿈은 대부분 해몽이 더 좋고, 운이 좋으면 예지몽을 꾸기도 하지만 최근엔 시험에 떨어지는 꿈을 꾸고도 붙었으니 제멋대로인 셈이다.
마취의 후유증인지 아직 오래 앉아있는 일은 힘들다. 하지만 계속 누워있는 건 더 힘들어서 종종 몸을 일으킨다. 약을 먹기 위해 아침을 간단히 챙겨 먹고 앉아서 생각한다. 내일을 위해 오늘은 뭘 해야 하는지. 엄마의 잔소리도, 짝꿍의 쌓여가는 헌신도, 내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는 언니의 목소리도, 피드백을 반영해서 다시 과제를 했다는 학생의 연락도, 지나갔다. 리스펙토르가 말하는 아구아 비바 그러니까 살아있는 물은 내게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다시금 일깨웠다. 이게 글이라고? 왜 자꾸 글을 쓰는 거야? 뭐가 될 것도 아니면서?
뭔가 말하고 싶겠지. 근데 말할 수 없겠지. 꿈, 대화, 꿈, 대화... 그리고 나면 문장을 따라서 다시 쓰게 된다. 제대로 침묵하고 공허를 직시하기 위해서는 엎치락뒤치락하는 삶에 대해 제대로 기록할 필요는 있다. 어떤 날엔 그게 불안과 강박이었다가 시간과 자유였다가 복잡과 단순이기도 하다. 리스펙토르를 읽다가 소화시키지 않으면 다음 글이 들어오지 않을 것 같아 여기 기록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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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화의 은밀한 조화: 나는 이미 만들어진 것이 아닌, 길고 복잡한 과정을 거치며 지금까지도 만들어지고 있는 걸 원한다. 균형을 잃은 내 말들은 내 침묵이 만들어낸 귀중한 산물이다. 나는 공중에서 곡예도 하고 피루엣도 하면서 글을 쓴다 - 마음 깊은 곳에서 말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기에 글을 쓴다. 글쓰기는 오직 침묵을 더 잘 수행하도록 만들어 줄 뿐이긴 하지만. 아구아 비바, 16
존재하는 것들을 붙잡는 법을 모르는 나는 무엇이든 상관치 않고 지금 일어나는 일을 산다: 나는 실수들로부터 거의 자유로워졌다. 나는 자유롭게 풀려난 말이 맹렬히 달리게 한다. 나는 힘차게 달려가는 자, 오직 현실만이 내 한계를 설정한다. 아구아 비바, 27
[...] 나는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붙잡아 두기 위해 기록한다. 아구아 비바,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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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모두가 나 자신은 알아차리지도 못했던 내 내면의 어떤 영역에 먼저 도달했던 이들, 즉 내가 '나'로 터져 나올 때까지 나에 대해 예언해 준 예언자들이다. 이 '나'는 당신들 모두이다. 나는 그저 나만으로 존재하는 걸 견딜 수 없으므로, 나는 살기 위해 타인들을 필요로 하므로, 나는 바보이므로, 나는 완전히 비뚤어진 자이므로, 어쨌든, 당신이 오직 명상을 통해서만 이를 수 있는 그 완전한 공허에 빠져들기 위해 명상 말고 무얼 할 수 있겠는가. 명상은 결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명상은 그 자체만으로 목적이 될 수 있다. 나는 말없이, 공허에 대해 명상한다. 내 삶에 딴죽을 거는 건 글쓰기다. 별의 시간, 8
정말이지, 나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단순함에 이를 수 있다. 나는 질문들이 있고 답이 없는 한 계속해서 글을 쓸 것이다. 별의 시간,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