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들 그리고...(2)

by 뭉클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는 내게 작가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다. 아주 정성스러운 가벼움. 지금도 계속 사라지는 그 순간, 을 붙잡으면서 춤을 춘다. 기도처럼 보이는 춤을. 영영 끝날 것 같지 않은 춤을. 명쾌하거나 흡입력 있는 줄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신도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확답을 하지 못하지만 계속 따라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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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A에게 이걸 가르쳤어요. 의도는 결과가 되지 못해도 살아남을 수 있나요? 살해된 꿈에 대해서, 죄의식을 떠안는 일에 대해서. 근데 왜 그 모든 게 오로지 제 몫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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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스무 살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얼마를 줘도 싫다고 할 것이다. 유전, 기질, 체형, 성격, 유혹, 불행, 고통, 갈등... 그 모든 것이 직조되어 온갖 꿈을 짜냈다. 이랬다면, 이번엔, 다음엔, 과연... 다를까? 체념과 수용 그 어디쯤에서 기준(의도)과 기록(결과)이 엇갈리면서 쌓여가는 성장 (가능성) 데이터들을 보면서 시시하고 미미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새로운 재미가 생긴다면 그건 용기일 것이다. 용기는 믿음에 가깝다. 증명하기도 전에 믿어버리는 것. 공허를 바라보는 용기. 두 손을 맞비비며 정신을 되찾는 용기. 널찍한 집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장소가 기도 자리라고 말하던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산다는 게 조금 사치스럽다는, 죽음을 너무 두려워말라는 리스펙토르의 말에 살아갈 힘을 얻는다.


똑같은 조건으로 두 번째 살아보는 삶에 대해 생각했다. 시간 여행이 아니라, 모든 기억을 그대로 두고 현재의 몸으로. 하루의 무게를 제대로 인지하고 사는 걸까? 지나치게 억누르고 무겁게 사는 건 아닐까? 두 번째 삶은 이미 살아본 몸이니 좀 가벼워질 수 있지 않을까?


지난 주말에 호되게 겪은 메스꺼움은 척수 마취 후유증이 맞다고 했다. 주말에 특히 통증이 심했을 거라고. 내일쯤엔 괜찮을 거라고 했다. 도저히 고개를 들고 앉아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여태껏 대부분의 일을 앉아서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고통은 순간을 길게 늘여 뺀다. 하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약해진 믿음을 되살리는 법은 지나치게 구하지 않더라도 이미 내게 있음을 믿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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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작하기 위해 몸을 풀고 있다. 용기를 내기 위해 두 손을 맞비빈다.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기도를 올렸던 순간이 퍼뜩 떠오른다: 움직임은 정신이다. 기도는 남들의 눈에 띄지 않고서도, 아무 말 없이도 나 자신에게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나는 기도할 때 영혼을 비울 수 있었고 - 그리고 그 비어 있음은 내가 가질 수 있는 전부였다. 그 외엔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비어있음은 그 자신만의 가치를 지니며, 그 겉모습은 풍요로움의 형태를 띠고 있다. 얻는 법 중의 하나는 찾지 않는 것이며, 소유하는 법 가운데 하나는 구하지 않고 그저 믿는 것이다. 내 안에 있으리라 믿고 있는 정적이야 말로 내게 주어진 수수께끼의 답일 거라는 믿음.

별의 시간, 22-23


나는 이 세상에서 달리 할 일이 없기 때문에 글을 쓴다: 나는 여기 남겨졌으며 사람들의 세상에는 내 자리가 없다. 나는 절박하고 지친 상태로 글을 쓴다. 나로서 존재하면서 맞이하는 일상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으므로, 글쓰기라는 항상 새로운 작업이 없다면, 나는 날마다 상징적인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별의 시간,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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