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의 맛

by 뭉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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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에게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 아니 언제든 끝날 수 있다는 그 유일하게 명료한 사실이 제게 용기를 줘요. 결론지을 수 없는 건 없다고 말해주는 것 같으니까.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요. 얼마 전 빅터 프랭클이 죽음의 수용소에서 쓴 기록을 다시 읽게 되었어요. 크리스마스와 새해 전에 수용소 안의 있던 사람들은 더 자주 죽어버렸대요. 크리스마스니까, 섣불리 품어버린 희망은 더 큰 낙담으로 이어져 쉽게 죽는 면역력 없는 몸이 되었다죠.


마감도 없이 계속 쓰는 마음은 뭘까 가끔 궁금했어요. 근데 누군가를 응원하는 마음이었던 거 같아요. 편지를 써서 띄우는 마음이요. 잘하고 있다고. 네 몸부터 챙기라고. 다른 어떤 것도 그것보다 중요하지 않다고요. 따뜻한 밥 한 끼 챙겨주고 편히 잘 수 있게 잠자리 돌봐주는 마음이랑 크게 다르지 않은. 첫 문장이 두 번째 문장으로 이어질 때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첫 문장이 지워지고 버려질까요?




개성, 몰개성, 개성

학생 여러분, 개성이란 도통 알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나눈 대화, 꾸는 꿈, 여기저기 헤매 본 궤적들이 우리가 된다고 숱하게 말했었죠? 여전히 사실이지만 최근에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모든 학생이 지덕체가 뛰어나지는 않고 우리가 만나는 '점에 불과한' 시간에 꽃을 피운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장차 무엇이 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개성은 찾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입니다. 활동이기도 하지만 태도이기도 합니다. 다만, 더욱 새로운 표현이 필요합니다. 세상과 타인, 그리하여 나 자신에 대해 발견하게 되는 그 순간과 기쁨을 포착하기 위해 섬세하고 신선한 언어가 필요합니다. 우리 다시 만나요.


이 모든 노력은 중요합니다. 아, 잘못 말했어요. 조금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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