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핑 소스와 스프링보드

by 뭉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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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 책임 열병 순정 불안

탈출 집중 몰입 생략 회의


2023년 여름, 메모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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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unce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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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는 물체가 통통 튀어 오르는 순간을 회복 탄력성의 개념과 연결 지어 설명했다. 실직,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이혼, 질병 등을 겪은 사람들은 자책과 좌절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지만 회복 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은 역경과 스트레스를 훨씬 더 잘 극복해 낸다고. 아이들은 회복 탄력성 옆에 resilience라고 적고 크게 별표를 했다. 꼭 기억하겠다는 듯이.


스프링보드에서 날렵하게 날아올라 물속으로 쏙 들어가는 선수의 경기를 봤어. 얼마나 노련하던지 포말도 거의 생기지 않더라고. 그렇게 황홀한 낙하는 거의 보지 못했어. 우리도 애초부터 스프링보드에서 뛴다면 말이야. 조금 깊숙이 들어가 2-3분쯤 숨을 참고 있더라도 고득점의 기쁨을 안고 당당하게 제자리로 돌아올 텐데.


어릴 적 수영을 처음 배울 때가 생각났어. 물속에 들어가 수중 세계에서만 들리는 소리에 적응하고 숨을 참고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순간이 올 때까지. 목에 힘을 빼고 물은 좀 먹어도 돼 너스레를 떨게 되기까지. 스킬도 없는 주제에 맨 몸으로 스프링보드는커녕 킥 보드 없이만 물에 떠도 스스로 기특해하던 순간도 말이야.


문득 생각했어. 지나치게 헌신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새롭게 시작해야 할 때 빠져나오기가 너무 어렵더라고. 스프링보드 위의 실력 있는 다이빙 선수처럼 힘차게 날아올라 우아하게 낙하하고서도 미련 없이 경기장을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J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않고 들려오는 말들을 다 믿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른이 된 것 같다고 했다. 또 심각해졌네. W의 말에 J는 여태껏 심각했던 사람은 정작 너 아니었고 받아치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내게 그랬겠구나. 할 말이 있어도 하지 않고 남겨두었겠구나. 그런 생각했었어. 모든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건 어쩌면 무심한 게 아니라 살아내면서 습득한 전략일지도 몰라. 물론, 미화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 늙은 교사들은 한때 애쓰다 다 소용없다고 생각해 버린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예전에 L이 말했을 때 코웃음을 쳤던 것 같은데. 우리는 서로에 대해 너무 몰라. 별로 알고 싶지 않기도 하고. 한 여름에 정수리가 타들어갈 것 같은데 입추라길래 헛웃음이 나왔었어. 영원히 한 여름일 것 같아도 금세 가을이 다가오는 걸. 어쩌면 충분히 집중하지 못했는지도 몰라. 누군가를 이해하는데 시간을 낭비하기보단 좀 더 순간에 집중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어. 세계를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할바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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