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성을 쌓기

by 뭉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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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창고. xlsx를 클릭하면 봄에 뿌려놓은 텍스트들이 남아있습니다. 그간 조금 소원했던 건 내게 의미 있는 텍스트란 무엇일까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찾을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에요. 적어도 며칠 하다 말 일은 아니었으니까요. 의미란 무엇이고, 텍스트란 무엇인지부터 따져봐야 했지요.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고 하잖아요. 일단 내게 꽂히는 것, 숨 막히게 하고 아득하게 하는 문장이라면 창고에 쌓아둔다고 해서 손해는 아닐 것이란 생각에 다다랐어요. 그리곤 오직 믿는 건 10년이란 시간뿐이라고. 10년 후엔 어떤 플랫폼에 글을 쓰고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텍스트는 인쇄된 종이 출판물만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책, 메모, 논문 속의 구절이 될 수도 있지만 그림이나 악보 그 외에 읽힐 수 있는 건 뭐든 가능하죠. 주로 출처가 분명한 것들로. 모르는 성을 쌓겠다고 다짐했지만 어쨌든 믿는 게 시간뿐이라면 일관된 이야기를 해야 해요. 모르면서 어떻게 일관되게 이야기할 수 있냐고요? 모르는 것은 앎의 바깥이 아니라 앎의 일부이기 때문이에요. 일관된 이야기가 지루하고 시대에 맞지 않을까 봐 두려울 뿐 우리는 이런 이야기에 능합니다. 조금만 신경 쓴다면 과도하게 밀려오는 정보도 빛을 잃을 거예요.



새벽이나 늦은 밤에 글을 읽거나 쓰는 이유는 밝은 낮보다 밝은 밤에 일관된 이야기를 하기가 좀 더 쉽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집안일과 밥벌이로 인해 허락된 시간이 얼마 없어서 낸 궁여지책의 새벽이기도 하지만요. 이 텍스트들이 새벽의 눈을 만나면 어떤 빛을 발휘할지 기대됩니다. 쌓는 동안의 설렘과 단단함만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가치를 누리겠죠.



필력은 심력에서 온다고 보는데요. 리춘여사*가 자신의 소란스러운 삶을 일기장에 쏟아붓는 바람에 애달픈 삶을 지탱할 수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제 삶이 다른 사람의 것으로 치환되어 모두에게 읽히기에는 자신의 삶에 대한 애착이 너무도 컸던 거죠. 누군가 몰입해 들어가기엔 자기 자신이 너무 깊이 똬리를 틀고 들어앉아있는 형국이었죠. 계속 자기 인생에 침을 뱉어요. 망할 년, 망할 년. 어느 순간부턴 인생 바깥으로 쫓아내고 싶었던 게 시어머니와 시누이인지 자기 자신인지도 헷갈리게 되죠.



을 쓰려면 인내심, 담력, 체력, 경제력이 필요해요. 제 안에 없다고 생각하는 얘깃거리를 뭔가 의미 있게 말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시작하는 일이니까요. 쓰다 보면 구태여 이런 얘기를 공들여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 새삼스럽게 생각하는 때가 오겠죠. 그다음부터는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만 쓰게 될 거예요. 담력은 리춘여사에게서 알 수 있듯이 온몸으로 버티며 살아내고 나서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 힘입니다. 체력은 마지막까지 펜을 붙들거나 키보드를 두드릴 수 있게 해 주죠. 경제력은 글쓰기에 공간적, 심리적 여유를 줍니다. 결국엔 마감이 글을 쓰게 하잖아요.



지독한 여름에 시달렸던 시기가 있습니다. 글쓰기는 권태 속에서 끝도 없이 죽었다 다시 태어나게 해 준 유일한 놀이였어요. 시 친구의 말이 떠오르네요. "독자들은 글을 쓰면 그게 다 내 얘긴 줄 알더라. 막장드라마 보고 나서 길거리에서 아주머니들이 악역 맡은 배우 등짝을 후려치면서 그렇게 살지 마요 이러는 거랑 비슷하지. 근데 배우는 연기를 잘해서 그런 거라 치고, 작가는 화자랑 항상 같은 건 아닌데 말이야. 좀 난감한 지점이 있어." 우리는 글이었다가 글이 아니었다가 살아 숨 쉬는 중심이었다가 밖으로 뛰쳐나가 중심을 기억하면서 도는 회전문 같기도 해요. 어쨌든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모르는 성 Never-been-there Castle이지만 분명 살아 숨 쉬는 목소리는 있다고 믿으면서요.







*가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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