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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클 Sep 08. 2024

가르칠 수 있는 용기

라이너 마리아 릴케 X 울라브 하우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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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존경받는 교육 지도자이자 사회 운동가인 파커 J. 파머는 교육 에세이집 가르칠 수 있는 용기에서 시인 릴케가 시인 지망생 프란츠 카푸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를 언급한다.



마음속에서 풀리지 않는 모든 일들에 인내심을 가지세요.

질문 그 자체를 사랑하세요.

어떤 답은 아무리 찾아도 구할 수 없어서 그저 살아내는 수밖에 없어요.



프란츠 카푸스에게 릴케가 5년간 보낸 편지에서 교사, 릴케의 모습을 본다. 교육지도자이자 사회운동가의 가르침에 대한 통찰은 진짜 교육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는 현장에 있는 내겐 몹시 괴로워 피하고 싶은 글이다. 텍스트 밖으로 나가 학생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수업을 거꾸로 뒤집는 시도를 하면서 늘어버린 건 성취감보다 겁. 신참 시인에게 보내는 베테랑 시인의 편지는 가슴 벅차도록 아름답지만 '어떻게 그 길을 따라가야 해요'라고 묻는 질문에 답하는 릴케에게서 용기보다 너그러움을 본다. 릴케는 내게 편지를 받을 생각만 하지 말고 인내심과 너그러움을 갖고 누구에게 이런 편지를 보낼지 궁리해 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Live the question!




Eit ord

 ― ein stein

i ei kald elv.

Ein stein til ―

Eg lyt ha fleire steinar

skal eg koma yver.


Olav H. Hauge, <EIT ORD>


한 단어

 ― 하나의 돌

차가운 강물 속

또 다른 돌 하나

이곳을 건너려면

더 많은 돌이 필요하다.


울라브 하우게, <말>





울라브 하우게의  나 또한 이전에 누군가가 놓은 돌을 딛고 건너왔듯 우리도 하나씩 돌을 놓아 누군가의 징검다리가 되어줘야 한다는 호프 자런의 과 같다. 말은 돌이 되어 가슴을 짓이겨놓기도 하지만 그 단단함으로 우리를 새로운 곳으로 데려가기도 하니까. 원예학교에서 공부한 후 평생을 과수원 농부로 살아온 울라브 하우게의 글은 담백하다. 현학적인 면모가 보이지 않는다. 조용히 읊조리면 허공에 공명한다. 꾹꾹 눌러 말하지 않는데도 여운이 남는다. 씨앗이 있고, 계절이 있고, 시간을 견디면, 열매를 맺는 거야. 그 이상은 없는 거라고 말하는 것 같다.





DIN VEG


Ingen har varda den vegen

du skal gå

ut i det ukjende

ut i det blå.


Dette er din veg.

Berre du

skal gå han. Og det er

uråd å snu.


Og ikkje vardar du vegen,

du hell.

Og vinden stryk ut ditt far

i aude fjell.


길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스스로 걸어야 한다

모르는 곳으로

먼 길이다


길은 그런 것

오직 스스로

걸어야 한다 길은

돌아올 수 없다


어떤 길을 걸었는지 남기지 마라

지나간 처음의 길은

바람이 지우리


울라브 하우게, <길>



듣기 좋은 진부한 말들은 흔적도 없이 공기 중으로 사라졌지만 정원사의 마음만으로는 탐스러운 사과를 얻을 수 없음을 안다. 시의 여백에서 백만 가지 소리를 듣는다. 가르칠 수 있는 용기는 없지만 텍스트 밖으로 나갈 준비는 되어있는 밤. 시는 내게 질문만 준비하고 살아가도록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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