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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클 Nov 11. 2024

숨은 숲이 되고


악보집엔 만약에 광장에서 이별한다면 그 이별까지 사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어째서 크로매틱 하모니카 연주곡은 하나같이 슬픈지에 대해 L과 이야기했고, 그저 스즈키 하모니카가, 특히 내가 가진 은빛 세련된 하모니카가 호너에 비해 묵직하고 무게감 있는 소리를 내는 거라고, 추위에 얼어버린 리드를 품에 안고 녹이면서 L이 말했다. 숨이 <숲>이 되는 동안 나는 내 특유의 멜랑꼴리가 내는 분위기를 사랑하게 되었다. 편곡을 하면 얼마든지 발랄해질 테지만, 보사노바도 되고 블루스도 되겠지만, 일단은 내가 되어보겠다고 숨을 고르는 동안 시가 노래가 나를 세상 끝으로 데려다주었다. 조옮김 없는 원키, 라장조의 악보를 고르고 MR을 준비한다. 귀를 막고 숨소리에 집중한다. 아가의 쌔근쌔근 잠자는 숨소리, 은빛 숲과 달빛 정원의 숨소리, 아주 빠르게 뛰었다가 아주 나른하게 축 늘어지는 숨소리... 보이저 1호에 실어 보낸 다정한 숨소리를 생각하면 대화란 서로를 숨 쉬게 하는 것. 상대에게서, 우리에게서 새로운 물질을 발견한 사람처럼 새로운 숨을 발명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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