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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빛 Feb 21. 2021

붕장어는 통통하니 놀자근한 것,
입이 짤막해야 담백

전라남도 고흥 붕장어

     

  여름이 끝난 뒤의 바다는 한적하다. 고흥의 대전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에는 예쁜 빨래터가 있다. 마을 안쪽에 있어 무심코 지나는 나그네들은 찾기 어려운 곳이다. 고즈넉한 빨래터에서 어느 아낙네가 빨래를 하고 갔는지 빨랫돌 위에 햇살에 마른 방망이가 놓여 있다. 빨래터를 두고 녹동항으로 가 보았다. 녹동항에는 물 빠진 갯벌에 뗏마가 앉아 있다. 예전에는 붕장어가 흔했다. 물이 빠지면 낙지를 잡으러 바다에 나갔다가 낙지 구덩이에서 뿔룩 나온 장어를 쉽게 잡았다고 한다. 지금은 낙지도 장어도 귀해졌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장어는 네 가지 정도다. 이 중 민물장어와 먹장어(곰장어)는 도시의 포장마차에서 접할 수 있고 붕장어와 갯장어는 바닷장어가 잡히는 남해안 지역에서 볼 수 있다. 뜨거운 여름 한 철을 보냈으니 장어로 힘을 보충할 때이다.      



  녹동항에서 30년 동안 장어를 팔고 있는 혜진횟집이 있다. 장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붕장어 탕과 구이로 입소문이 난 곳이다. 이곳의 양념장은 다른 곳에서 배워갈 만큼 맛이 좋다. 

  여주인 공순화(여, 59세)씨는 고흥으로 시집와서 시어머니가 가르쳐 주겠다는 갯일도 마다하고 붕장어 식당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보기도 싫어 돼지 막에 던져주던 붕장어가 지금까지 삶을 지탱해 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구이가 좋을지, 탕이 좋을지 고민하는 필자에게 구이를 추천해 준다.


붕장어 손질


  부엌에는 커다란 붕장어 어항이 있다. 사람의 손이 들어가자 붕장어들이 이리저리 도망을 간다. 여주인은 굵은 붕장어 서너 마리를 어항에서 꺼내어 깨끗한 물로 씻은 뒤 붕장어의 머리를 야무지게 잡는다. 반평생 동안 붕장어 머리를 거머쥐었던 손목은 기운이 다 빠져 병이 났다고 한다. 그러나 이내 도마에 꽂힌 못에 붕장어의 머리를 끼우고 순식간에 배를 가른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섬섬히 토막을 친다. 


  “지금 붕장어는 대부분 여수에서 가져와.
옛날에는 여기서도 잡았고 녹동에서도 가져왔지.
장어는 처음 잡을 때가 젤 힘들어.
안 잡힐라고 요동을 치니까 그러지.
그래 장어가 힘이 좋으니까 머리를 칠 때가 가장 힘들지.”

  붕장어는 비늘이 없고 입이 둥글고 이빨이 약하다. 옆으로 흰점이 줄줄이 나있는 모양이 먹장어보다는 순하게 생겼다. 게다가 가시가 적고 살이 부드러워 먹기에 좋다. 여주인이 추천한 대로 역시 붕장어는 노릇한 기름이 올라오는 구이가 최고이다. 고소한 살이 씹을 시간도 없이 입안에서 녹아내린다. 입안에 구수한 붕장어 기름이 둘러졌을 때 양념장을 찍어먹어 본다. 고추장에 물엿, 생강, 마늘과 양파 맛이 난다. 달콤하고 매콤하다. 게다가 풍부한 양파즙과 생강즙이 붕장어의 기름진 맛을 신선하게 잡아준다. 먹는 방법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면 상추에 곰삭은 깻잎장아찌를 얹어 싸 먹으면 몇 인분을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붕장어 구이와 붕장어 쌈


 “우리들은 붕장어가 통통하니 놀자근한 것, 놀미한 것,
 입이 짤막한 것이 담백하고 맛있다고 해.
예전에는 장어회를 많이 먹었지.
그러다가 벽돌 두 장 놓고 그 위에 석쇠 놓고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구워 먹었어.
여 바다가 옆에 있으니까 손님들이 오면
바닷가에서 둘러앉아 구워 먹었지.
재미있지 그러면. 그 손님들이 여직 오셔.”


  그러고 보니 음식에는 추억이 함께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닷가에 둘러앉아 붕장어를 구워 먹었던 사람들이 이곳을 잊지 않고 오는 것처럼 말이다.                 


[도움 주신 분]     

 혜진횟집 공순화(여, 59세)씨는 30년 동안 식당을 운영했다. 붕장어 요리와 그녀의 특별한 양념에 대한 설명, 사진 촬영을 도움 주셨다.     


* 위 글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지역n문화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s://ncms.nculture.org/food/story/1947?_ga=2.116604358.1559705289.1613814797-477163452.1613098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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