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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빛 Feb 21. 2021

섬진강 참게탕은 들깻물을 넣고
부글부글 끓여야 옛 맛

전라남도 곡성 은어와 참게

   

  벚꽃 날리는 섬진강의 봄은 아름답다. 섬진강은 하천 중에 수질이 가장 좋은 곳으로 1급수에서만 볼 수 있는 은어가 산다. 섬진강의 은어 회를 맛보려면 서둘러야 하고 살 오른 참게를 맛보려면 가을을 기다려야 한다. 은어는 어른 손바닥만 하고 예쁘다. 은어 회를 맛본 이라면 은어의 싱그러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버들잎이 시들기 시작하는 9월이면 은어는 알을 낳고 저세상으로 가겠지만 참게는 살이 오르기 시작한다. 필자는 후자를 택했다. 그리고 은어 회 대신 튀김으로 만족키로 했다.     


 

  고즈넉한 섬진강을 앞에 두고 25년 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김혜숙((여, 60세)씨는 곡성으로 시집와서 시어머니에게 섬진강의 참게로 게장 만드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섬진강 은어, 참게와 반평생을 살아왔다. 그녀에게는 요리를 시작하면서 장만한 칼이 두 개 있다. 38년 된 칼이다. 넓었던 칼은 닳고 닳아 송곳처럼 뾰족해졌고 몇 번씩 갈아 끼운 자루는 손때가 끼었다. 그럴수록 애정이 깊어져 버리지 못하고 있다. 오랜 시간 무언가에 몰두를 하다 보면 아끼는 도구가 생기게 된다. 그녀에게는 자신과 함께 늙어가는 칼이 소중한 친구이다.     


그녀가 아끼는 38년 된 칼


  은어 손질은 쉽지 않다. 지느러미와 내장을 제거하고 잔가시까지 발라야 먹기에 좋다. 은어의 가시는 꼭꼭 씹어 먹어도 된다고 하지만 얇고 날카로워 튀김을 할 때에도 양쪽으로 포를 떠서 튀기면 먹기에 좋다. 은어를 손질하는 그녀의 손은 날래고 힘이 있다. 순식간에 등뼈를 중심으로 은어가 갈라졌다.


은어 손질


  “은어는 가을이 되면 살이 빠져.
은어 살이 통통할 때 살을 바르면 칼이 바로 나가는데  
살이 빠지면 몇 번씩 살을 저며야 해.
예전에는 등뼈나 잔가시를 바르지 않고 그냥 튀겨 먹었지.
은어 튀김은 먹는 법이 있어.
꼬리부터 먹어야지 머리부터 먹으면 뼈가 걸려.”



  깨끗하게 손질한 은어를 찬물에 반죽한 튀김옷을 입힌다. 기름에 바삭하게 튀겨진 은어튀김이 먹음직스럽다. 튀김옷 사이로 삐져나온 허연 속살은 부드러운 담백(淡白)함 그 자체이다.       



  처마 끝에 가지런히 매달린 무청을 보고 무를 재배하는지 물었다. 여주인은 들깨, 고추, 무, 배추를 직접 농사짓고 고춧가루와 된장도 담근다고 한다. 참게탕을 들깻물로 끓여야 옛 맛이 나는데 좋은 깨를 사용하려니 농사를 직접 지어야 했다. 그러니 일이 얼마나 많을지 짐작이 간다.


  어항에서 건진 참게를 깨끗이 씻어 다리를 뚝뚝 잘라 시래기가 깔린 커다란 뚝배기에 담는다. 된장과 고춧가루, 생강, 후춧가루를 넣고 들깻물을 붓는다. 손에 익힌 계량은 정해진 것이 아니다. 그녀만의 감각으로 맛을 낸다. 섬진강의 참게는 다른 곳의 참게와 달리 살이 향긋하고 찰지다.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면 새우젓국으로 간을 맞춘다.


살아있는 참게와 손질한 참게 그리고 들껫물
직접 재배한 양념과 제료들
  “나는 섬진강의 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이곳 맑은 물이 참게탕의 제 맛을 내지.
 참게, 물, 들깻물, 된장의 네 박자가 맞아야 이 맛이 나.
참게를 먹을 때는 나처럼 이렇게 열 손가락을 펴서 게걸스럽게 먹는 거야.
그래, 참게는 선보는 자리에서는 못 먹는다.
자근자근 씹어봐. 그래야 속살이 나온다.”

  여장부처럼 소매를 걷어 참게 먹는 법을 설명하는 그녀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 게딱지 하나를 먹으면 게 한 마리 먹는 거와 같다면서 밥 한 숟가락을 넣어 비벼준다. 게의 눈까지 먹으라는 통에 손을 내저었다. 게딱지를 싹싹 비벼먹고 게 다리도 꼭꼭 씹었다. 게 껍질이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참게 맛을 알게 되면 대게는 심심하여 먹지 못한다더니 그럴 수 있겠다 싶다. 


참게탕


  잘 말린 시래기를 밥에 올려 먹기 시작하자 한 공기가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게 탕의 네 박자에 시래기 맛을 추가하여 다섯 박자라고 제안하고 싶을 정도이다. 여주인은 체하지 말라며 3년 묵었다는 아삭한 매실장아찌를 내어 준다.      


  여주인의 오래된 부엌에는 빛바랜 체 두 개가 걸려있다. 벌교시장의 체 만드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이제 살 수도 없다고 한다. 하나에 십 년은 쓴다고 하니 조심스럽게 번갈아 사용하면 20년은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손맛은 섬진강, 칼, 체와 함께 시작하여 그것들처럼 묵은 정이 담겨 있다.     

       

[도움 주신 분]     

새수궁가든 김혜숙(여, 59세)씨는 ‘전라남도 음식명인’이다. 은어와 참게를 잡아서 손질하고 요리하는 전 과정에 대한 설명과 사진 촬영을 도와주셨다.      


* 위 글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지역n문화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s://ncms.nculture.org/food/story/1946?_ga=2.113399239.1559705289.1613814797-477163452.1613098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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