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워지지 않는 허기와 월식

by 소리빛

며칠 뒤 자정 무렵, 화장실에 가려다가 식탁 위의 조명이 켜져 있어 무심결에 불을 끄려다 말고 놀라 온 몸이 얼어붙었다. 거실의 불은 켜지도 않고 엄마는 평소의 단정함을 잃은 채, 마치 무언가에 쫓기듯 밥을 입안 가득 밀어 넣고 있었다.


"엄마, 지금 열두 시가 넘었어. 아까 저녁 먹었잖아."

내 물음에 엄마는 창밖을 보며 대답했다.

"얘는, 지금 월식이라 해가 안 뜨는 거야. 아침이니까 배가 고파 먹는 거지."


허기와 월식_식탁 앞의 엄마.png


’월식‘이라 해가 뜨지 않는 아침. 엄마는 그렇게 자신만의 논리로 무너져가는 세계를 지탱하고 있었다. 강단있던 엄마가 마음의 허기를 채우려는 듯 아귀처럼 밥을 먹고 있다. 평소라면 갖은 밑반찬을 정갈하게 꺼내 놓았을 엄마였지만, 그 식탁 위에는 덜렁 김치 한 가지. 그 초라한 밥상 앞에서 엄마는 아귀처럼 허기를 채웠다. 나는 갑자기 겁이 났다. 이제 정말 시작되었구나.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엄마의 시계는 내가 모르는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엄마는 고모와 경하를 연달아 보낸 그 가을을 견디기 힘겨워 '월식'이라는 거대한 그림자를 불러와 세상을 덮어버린 것이 아닐까. 어둠을 아침이라 우겨서라도, 이 고통스러운 밤을 건너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은 엄마의 시간마저 뒤틀어버렸다. 나는 차가운 식탁 옆에서 소리 없이 울었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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