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또 무슨 일이

by 소리빛


누나, 누나, 아빠가 숨 쉬기가 힘든가 봐. 응급실에 가야 할까? 어쩌지?


사무실에 앉아 정신없이 자료를 뽑아 고객의 기업상황을 분석하고 있는 시간을 비집고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출근하기 전, 아빠의 상태를 봤을 때는 아침은 다 드셨고 누워 계신 것만 확인했다. 잠시 생각을 하다가 대답했다.


“그래,”


난 아무런 감정 없이 대답했다. 어디부터 이야기를 해야 하나. 현재의 아빠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기에 그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 시간을 갉아먹고 있는 그의 노년이 안타깝다는 생각뿐.




아빠에 대한 나의 기억은 중학생 때 나를 업어주고 그의 무릎에 날 앉혀 나의 밝고 안전한 미래를 걱정해 주던 모습에 멈추어 있다. 술을 드시고 퇴근하는 날에는 거친 털이 자란 턱을 내 얼굴에 비비며 자신의 사랑을 내게 표현하는 애정 넘치는 아빠였다. 나는 아빠의 자랑이자 삼 남매 중에 가장 귀엽고 안쓰러운 딸이었다. 편애라기보다 다른 자식에 비해 덩치도 가장 작고 몸이 약했기에 병원을 자주 다녔다. 감기는 늘 달고 살았으며 툭하면 양호실에서 아빠를 호출하여 응급실로 가곤 했다. 그럼에도 공부를 잘했고 상장도 많이 타서 즐겁게 해 드렸기 때문에 아빠의 가장 아프고 사랑스러운 딸이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현재의 나는 ‘아빠의 도둑년’이다. 아니, 아빠를 제외한 엄마와 우리 삼 남매는 아빠를 모함하고 아빠의 재산을 노리는 ‘도둑 패밀리’가 되어 버렸다.



“누나, 지금 아빠의 몸속 산소가 많이 부족하대. 저산소혈증이라고 하네.
그래서 집중 중환자실로 옮겨야 하는데 아빠가 ‘오늘 밤’이 고비라는데
지금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집에 가서 기다리래.
전화를 다시 주기로 했어. 만약 필요하면 연명치료를 할지 결정을 해야 돼.
누나 생각은 어때?”



“응”


나는 전화기 너머 동생이 전해주는 아빠의 상황을 들었다. 달리 답할 내용이 없었다. 조금 전에 응급실에 갔을 때 동생과 엄마가 함께 갔지만 엄마는 응급실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응급실 밖에서 엄마는 초초하게 안절부절못하며 기다리고 있었겠지. 내가 퇴근하여 집에 왔을 때는 엄마의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한참을 운 모양이다. 나는 엄마의 등을 토닥이며 ‘괜찮아질 거야. 걱정하지 마.’를 계속 되뇌이며 엄마를 안정시켰다. 피곤한 하루다.


샤워기를 틀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려오는 물줄기를 맞으며 몸의 열기와 심장박동이 안정될 때까지 서 있었다. ‘어쩌지?’ 나는 아빠가 그냥 돌아가시는 편이 나은 것인지 연명치료를 해서 다시 부활을 하게 하는 것이 나은 것인지 갈팡질팡 했다.

욕실에서 나와 엄마의 저녁을 챙겨 드렸다. 엄마는 밥이 넘어가질 않는다며 수저를 내려놓는다. 나도 그랬다. 식탁 위를 정리하고 몇 개 안 되는 그릇을 치우며 있는 대로 물을 틀어놓고 설거지를 했다. 엄마는 침대에 앉아 멍하니 예수님과 성모상을 바라만 보고 있다. 기도라도 하는 것이겠지. 엄마는 얼마 전만 해도 아빠의 등에 대고 ‘귀신은 뭐 하고 저런 사람은 안 잡아가나.’하며 혀를 끌끌 찼었는데 아빠의 부재가 두려운가 보다.


나는 혹시나 지난번 장기요양등급 신청의 결과통보서가 우편으로 왔는지 알아보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갔다. 편지 한 통이 와 있다. 아빠에 대한 결과통보이다.


어르신 귀하.
귀 댁에 항상 행복과 평안함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노인 장기요양 신청을 하였으나 대상자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하여
안타까운 마음을 전합니다.

반면 엄마는 인지지원등급으로 가장 낮은 등급판정을 받았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면 나쁜 딸이 되는 것일까? 모르겠다. 우선 엄마를 집에만 둘 수가 없어 엄마를 안전하게 돌볼 수 있는 근처의 치매 케어센터를 알아보는 것이 중요했다. 오전 12시가 넘어 새벽 1시. 근처의 치매케어센터는 정원이 다 찼거나 시설이 협소했다. 나는 엄마가 오랫동안 사신 동네에서 케어센터를 다니게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케어센터를 다닌다는 이야기를 친구들이라도 알게 되면 엄마의 마음에 상처가 될까 고민되었기 때문이다.


“앨리스, 고모한테 전화가 왔어. 고모가 아빠가 위중하대. 난 병원에서 아빠 얼굴도 못 보고 왔는데 어떻게 지금이라도 가면 안 될까?”

“엄마, 고모 돌아가셨잖아. 어떻게 전화를 할 수 있어. 전화기 줘봐.”

물론 엄마의 전화기에는 아무에게도 수신된 전화가 없었다. 엄마의 망상인 것이다.


“아냐. 내가 어제 경하가 와서 인사를 하면서 작은 아버지 인사도 못 드리고 간다고 문 앞에서 인사를 하길래 알았다고 어서 가보라고 그랬다고.”

“엄마, 알았어. 그런데 경하는... 엄마, 가서 자자 내가 재워줄게.”


나는 더 이상 엄마를 이해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아기가 되어 버린 엄마의 손을 잡고 침대로 가서 엄마를 뉘었다. 엄마의 가슴을 토닥이며 안정을 취하게 했다. 엄마는 계속 눈물을 흘리며 울음을 참으려 끅끅 거리면서 울음을 삼켰다.









수, 토 연재
이전 09화꼭꼭 숨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