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새웠다. 새벽 3시,
“누나 아빠 연명치료를 해야 한다고 전화가 와서 그렇게 해달라고 했어. 잘한 거겠지?”
“응”
이미 저질러진 상황에서 내가 무슨 답을 하겠는가. 나는 침대에 몸을 던지고, 엄마를 좋은 환경에서 케어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새벽이 되었고 새로운 아침을 준비했다. 엄마에게 밤을 꼭 챙겨 먹어야 힘이난다며 간단하게 상을 차렸다. 그리고 엄마를 꼭 안아드리고 집을 나섰다.
우선 아빠의 상황을 확인하러 병원으로 향했다. 텀블러에 진한 커피를 가득 채우고 얼음도 잔뜩 넣었다. 몇 번을 꿀떡꿀떡 마셨다. 속칭 커피 수혈을 하고 나면 기슴이 시원해지는 것 같아서이다. 차 창문을 열고 차가운 공기로 차량 내부를 채웠다. 그러면 내 머릿속의 잡다한 생각들도 다 날아갈 것이라는 바람과 함께.
집중 중환자실(ICU), 중환자실 중에서도 24시간 모니터링이 필요한 환자들이 가는 곳이다. 오전 10시 한 시간만 면허가 허락된다.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름 모를 환자의 가족들이 서로를 안고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 바닥에 누워 몸부림을 치는 사람도 있었다. 아빠가 돌아가시면 나도 저렇게 슬퍼할 수 있을까? 나는 심장이 몸 밖으로 빠져나오는 듯했고 손가락이 떨려 방명록에 내 이름 석자를 어떻게 써야 할지 머뭇거렸다.
“이곳에 이름과 연락처. 환자분과의 관계를 적으시고 잠시 기다리세요.”
황토색의 상의와 검은색 바지 정장을 입은 덩치 큰 안내원이 반복하여 이야기한다. 집중 중환자실에는 가장 쇠약해진 상태의 환자들이 있는 곳이라 마스크롤 꼭 착용하고 오랜 시간 동안 면회를 할 수도 없다. 그 공간에 는 인원이 정해져 있기에 순서를 기다렸다가 나오는 이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 나는 창밖을 보며 멍하니 건너편의 건물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다리가 아프고 허리도 불편해서 그냥 바닥에 주저앉았다. 차례로 동생이 오고 언니가 왔다. 온몸이 무력감으로 손가락 하나도 들어 올리기가 귀찮았다. 그냥 그렇게 차례를 기다렸다. 왜 이리 차분할 걸까?
아빠의 부활은 이번까지 벌써 세 번째이다. 과연 이 선택이 아빠를 위한 최선인지, 내가 아빠와 엄마를 감당할 수 있는지, 아빠가 점점 성격이 포악해지는 것을 내가 어떻게 이겨낼 것인지 두렵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직장과 학교를 오가며 죽도록 이를 물고 버텨온 지난 일들이 이를 위한 것인가? 50세가 넘도록 지켜온 나의 경력들이 부모님의 은혜를 갚기 위해 살아온 것이라면 내가 왜 비싼 학비를 들여 박사까지 받은 거지? 툭하면 ‘네가 박사면 다야?' 나의 가슴을 호벼 파는 아빠의 폭언을 들으며 계속 이렇게 언제까지 살아야 하나?
나는 이글로 다른 이들이게 교훈을 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선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