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빠가 돌아가실까 안절부절 눈물만 흘린다. 마치 엄마가 아빠를 아프게 한 것처럼. 지금까지 아빠 때문에 마음 상한 시간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엄마는 모두 잊은 것일까?
“엄마, 아빠는 위기를 잘 넘겼대. 나아지실 거야. 걱정 마.”
잘은 모르겠지만, 아빠는 뇌 기능에 영향을 주는 산소 포화도가 급격히 떨어져서 집중 중환자실에서도 산소호흡기를 착용하고 있었다. 온몸에 힘이 없어 축 늘어진 아빠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복잡한 심정으로 아빠의 손을 잡았다. 크고 차가운 손. 아빠는 가늘게 눈을 떠 나를 바라보았다.
“힘내. 아빠.”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해버렸다. 아빠의 다리를 주물러 드리면서 이틀 전 세상을 떠난 사촌 동생, 경하 생각이 났다. ‘많이 힘들었을 텐데, 혼자 하늘나라로 가기 아쉬워서 작은 아버지를 모시고 가려고 했니? 그러려다가 혼자 가버렸니?’ 속으로 중얼거리다가 눈물이 뚝 떨어졌다. 10분이 다 되어가자 간호사와 안내원이 손을 저어가며 나가달라는 신호를 했다. 시린 코끝을 닦으며 자동으로 열리는 유리문을 나왔다.
지겹기도 한데, 나는 매일 오전 10시면 병원에 갔다. 아빠는 시간이 지나면서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고 주삿바늘을 뽑으며 난동을 부렸다. 당연히 그러시겠지. 간호사는 아빠의 치료를 위해 '신체 억제대(Physical Restraint) 사용'에 대한 동의서 작성과 아빠의 돌발 상황을 설명했다. 신체 억제대는 소위 환자의 팔이나 다리 등을 침상에 묶어 낙상이나 자해, 주삿바늘 제거 등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이다. 덩치가 큰 아빠의 무시무시한 괴력을 간호사도 의사도 감당하기 버거웠던 것이다.
아빠는 자신이 병원에 왜 와있는지, 집에 가야 한다는 둥, 휴대폰을 달라는 등의 소란을 부렸고 담당 의사는 심지어 뇌 손상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뇌 MRI 검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아빠의 뇌에는 아무런 병변이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아빠가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엄마를 주간에 돌볼 수 있는 데이케어센터를 찾아야만 했다. 아빠가 돌아오게 되면 엄마는 아빠의 식사를 챙기느라, 또 꼼짝을 못 할 것이기에 인지저하 등급을 받은 엄마를 정서적으로 안정시킬 수 있는 케어센터에 다니게 하고 싶었다. 간신히 찾은 곳은 다행히 시설이 쾌적하고 간호사도 상주하며 요양보호사와 봉사자들이 다른 곳에 비해 많아 보였다. 다만, 거리가 멀기 때문에 우리 집까지 기관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가 오갈 수 없다는 불편함은 있다. 내가 조금 더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을 떨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엄마를 깨우고 씻기고 곱게 단장하여 하루, 이틀을 다니기 시작했다.
엄마는 소위 ‘학교(데이케어센터)’에서 집으로 오면 이불속으로 들어가 금세 잠이 들어버렸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그동안 안 했던 활동으로 몸이 피곤한 모양이다. 엄마의 얼굴을 씻기고 로션을 발라 토닥토닥 잘 자라는 입맞춤으로 그날의 딸 역할은 마무리되고, 빨래며 설거지며 내일 먹을 반찬거리 등의 집안일은 시작됐다. 그런데 엄마와 나의 단꿈 같은 평화는 열흘 만에 깨졌다. 기력을 회복한 폭군이 귀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