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례지만 어느 길로 가야 하나요?

by 소리빛

토요일 늦은 아침의 고요함이 아빠의 고함에 깨졌다.


“여기 있던 돈이 어디 갔냐고?”

“아니,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잘 찾아봐.”


엄마가 힘없이 대답한다.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아빠의 방으로 갔다. 흐트러진 흰머리 아래, 여윈 얼굴에 박힌 광기 서린 눈. 그 눈이 엄마를 쏘아보고 있었다. 나는 얼른 엄마를 부축하여 방에서 빠져나왔다.


“왜 그러는 거야? 엄마.”

“나도 몰라. 무슨 돈이 없어졌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치잖아.”




느닷없이 가족 중 누군가를 도둑으로 몰아붙이는 무서운 불신. 뇌는 정상이라지만, 아빠는 가족 중 누구도 신뢰하지 못한다. 이 불신의 근원은 언제부터인지 모를 정도로 오래되었다. 당신을 제외한 우리 삼 남매는 ‘엄마의 편’이며 모두가 한패로 자신을 존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며칠 전 아빠가 치매 검사를 받을 때, 의사에게 섬망 증상이 있고 가끔은 헛것이 보이며 간혹 낮인지 밤인지 구분을 못 한다고 자신의 증상을 이야기했지만, 엄마와 달리 노인 장기 요양 등급을 받지 못했다. 아빠는 자신이 엄마처럼 치매가 아니라는 자부심으로, 흐려지는 기억의 조각을 붙잡고자 주변에 보이는 종이마다 이리저리 돌려가며 글자를 꾹꾹 눌러 적어댔다. 그런 아빠가 측은해서 병원의 처방 약을 아침, 저녁으로 다정하게 메모를 남기고 따듯한 물이 식지 않도록 보온컵에 담아 아빠의 손이 닿는 곳에 챙겨 두었다. 몸무게가 급격히 감소하면 병원을 내원하라는 의사의 지시대로 매일 몸무게를 재어 기록하기도 했다.


아빠는 나의 정성을 무시하며 일주일도 안 돼서 병원에서 처방한 약을 던져버렸다. 그러고는 당신의 몸은 알아서 챙길 테니 간섭하지 말라는 방어벽을 높이높이 쌓았다. 아빠의 생각에, 병원 약은 약국 약처럼 친절한 설명서가 없었고 그저 성분을 알 길 없는 투명한 비닐 속의 의심 덩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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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데이케어센터에서 하루를 보낸 엄마와 함께 집에 돌아왔을 때 아빠가 외출복을 입은 채로 기력이 소진되어 침대에 대자로 누워 있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어김없이 자신이 처방한 약봉지가 침대 옆에 빼곡하게 올려져 있다. 주로 기력을 회복하는 약들이거나 근육통을 해소하는 약과 파스들이다. 한동안 뜸했던 알 수 없는 한약이거나 신문에서 광고하는 흑염소 액 같은 것들도 배송되었다.


“아빠, 엄마가 아니라잖아요. 아빠가 어디에다 두고 기억을 못 할 수도 있지. 그만 좀 하세요!”


순간 아빠의 실내화가 내 얼굴을 스치고 날아갔다. 나는 아빠의 못된 손찌검에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이번에는 나의 악다구니에 아빠의 지팡이가 내 팔을 후려갈겼다. 참았던 분노가 가슴을 찢고 요동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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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지만, 제발 나에게 길을 가르쳐주세요. 너무 오래 걷게 되면 쓰러질지도 몰라요.’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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