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시게 푸른 하늘이 펼쳐진 겨울 아침. 나는 엄마의 등굣길을 함께 한다. 엄마는 차의 뒤 좌석에 앉자마자 사탕 한 알을 입에 물고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즐겁게 바라본다. 고운 옷매무새에 예쁜 미소를 머금은 엄마는 가끔 혼잣말을 건넨다.
“봄이 되니까 새싹이 나려나 봐, 나무가 파릇파릇해.”
“그러네. 봄이 금방 오려나 봐. 하늘도 파랗고 금방 새싹이 돋겠어. 그치?”
예전 같으면 ‘아직 11월인데 무슨 봄이야?’라고 되물었을 것이다. 성격상 따지고 들어 내가 원하는 답을 얻어야 직성이 풀렸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엄마는 아프면서도 나의 품성을 다시 가르치고 있나 보다.
집에서 20분 거리. 짧다면 짧고 멀다고 생각하면 먼 그 시간이 내게는 무엇보다 소중하고 귀했다. 평생 엄마와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렇게 다정하게 이야기한 적이 얼마나 될까?
“엄마, 오늘도 즐겁게 하루 보내고 학교에서 맛있는 밥 나오면 많이 먹어야 해.”
“알았어. 너나 잘 챙겨 먹고 다녀. 나는 맛있게 잘 먹으니까.”
“혹시 힘들면 참으면서 앉아 있지 말고, 피곤하면 선생님들한테 쉬고 싶다고 얘기하고.”
나는 엄마가 괜한 자존심을 부려 피곤하고 힘든데도 애써 참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이러저러한 수다를 잠시 하면서 ‘데이케어센터’에 도착했다. 사무실에 전화를 걸면 봉사자 선생님이 1층으로 내려오신다. 그리고는 엄마의 손을 잡고 반갑게 맞으며 엄마를 데리고 다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엄마의 모습이 문틈으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준다.
“이따 봐. 즐거운 하루!”
그렇게 엄마를 보내고 쏜살같이 회사로 차 머리를 돌린다.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이지만, 내가 공부하여 사회에 기여한 시간이 얼마나 될까?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하기 위해 공부하고 또 공부하며 전쟁처럼 지나온 시간이 엊그제 같은데, 아직도 그 전쟁은 끝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아빠와 엄마를 돌보는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나마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이 출퇴근이 유연하기에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다. 내가 이러한 시간을 위해 그렇게 고군분투하며 살았나 싶기도 하지만, 이 또한 하늘 어딘가에 계신 조물주께서 찍어 놓은 내 인생의 점이려니 생각하기로 했다. 오후 4시 30분. 나는 하던 일을 급히 접고 다시 ‘엄마의 학교(데이케어센터)’에 달려가야 한다. 센터의 운영 시간이 6시까지이므로 ‘센터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타지 못하는 엄마 혼자 덩그러니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 오늘은 뭐 하고 지냈어?”
“오늘은 게임을 했어. 내가 세 번이나 이겨서 박수도 받았지!”
“와~ 대단한데? 우리 엄마, 무슨 게임이었을까? 어떤 게임이었어?”
나는 엄마에게 맞장구를 치며 물었다.
“음·····, 모르겠어. 뭐였더라? 기억이 안 나네. 뭘 맞추는 거였나 봐.”
“그랬구나. 잘했어. 즐겁게 보냈네. 낮잠도 좀 잤어?”
“응.”
무슨 게임인지 기억나지 않아도 괜찮다. 엄마의 얼굴이 가로등 불빛보다 환하고 예쁘니까. 조금 아파도 괜찮아. 엄마랑 나랑, 이렇게 즐겁게 살자.
작가의 한마디
어머니의 시간이 거꾸로 흐를 때, 비로소 나의 사랑은 깊어지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