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팔 남매 중 넷째이다. 위로 오빠가 둘, 언니가 한 명, 아래로는 남동생이 셋, 여동생이 한 명 더 있다. 내가 어릴 적에는 이모와 삼촌들이 모여 앉아 6.25를 겪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간혹 들었다. 엄마 등 뒤에 앉아 들었던 이야기 중에는 엄마가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이상한 이야기도 있었다. 피난길에서 엄마가 갓난아기였을 때 열이 너무 높은데 약은 없고 병원도 없어 죽을 줄 알고 내버렸는데 다음날 다시 가서 보니 열도 내리고 살아있길래 데려왔다는 말도 안 되는 외할머니의 옛날이야기. 얼마나 어려웠으면 아기를 버렸겠느냐는 생각도 들지만, 어떻게 자기 자식을 버릴 수 있을까? 하며 매정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이해가 안 됐다. 그래서인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팔 남매를 키우느라 허리를 졸라매며 살았다는 외할머니를 무서워했던 것 같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큰오빠, 작은 오빠, 두 번째 남동생이 먼저 세상과 이별을 했고 엄마를 포함해서 남은 다섯 명은 두 달에 한 번, 혹은 석 달에 한 번씩 만나고 있다. 이번에는 엄마의 생일에 모두 모이기로 했다. 서울에 사는 것은 엄마뿐이고 각자 강원도와 경기도, 경상도에 흩어져 살고 있다. 예전에는 삼촌들이 세 명이나 사는 강원도에서 모임을 하고 속초에 가서 회를 먹는 것이 모임의 순번이었다. 이번에는 가장 나이가 많은 큰 이모가 사시는 포항에서 엄마의 생일잔치하게 됐다.
동생과 언니네가 엄마를 모시고 갔고 아빠는 몸이 불편하여 집에 계시기로 했다. 나는 그런 아빠의 식사를 챙겨야 하므로 남았다. 휴대폰으로 생방송 한 사진과 동영상을 공유하는 동생 덕분에 그곳의 즐거움이 어떠한지 알 수 있어 덩달아 좋았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커다란 창이 있는 식당에서 커다란 생일 케이크와 선물이 쌓여있고 풍선과 리본이 날리고 폭죽도 터트렸다. 연신 ‘사랑해요’를 외치는 엄마는 참으로 즐거워 보였다. 그렇게 창밖의 바다가 까맣게 변할 때까지 식사하고 선물을 뜯어보며 노래하는 엄마를 보았다.
기쁨도 잠시, 성수동에서 포항까지 330킬로미터의 멀고 푸른 여행이 엄마에게 무리였을까? 다음날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동생이 엄마를 품에 안고 들어왔다. 커다란 덩치의 동생에 비해 엄마는 아기처럼 작아 보였다.
“누나, 엄마가 많이 피곤한가 봐. 옷 갈아입혀 드리고 좀 씻겨 드려. 그리고 여기 이 옷들은 다 빨아야 해.”
무슨 영문인지 몰라, 엄마를 부축하여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따듯한 수건으로 얼굴과 손발을 닦은 후 잠옷으로 갈아입혀 드렸다. 공항에서 일하는 동생은 비행기 도착 시간 때문에 서둘러 집을 나섰다. 거실 바닥에 흩어진 옷가지들을 주워 세탁실로 갔다. 축축하게 젖은 옷에서 지린내가 났다.
“엄마가 실수했나?”
나는 엄마에게 가서 이마에 입을 맞추며 물었다.
“엄마, 힘들었어?”
“응. 내가 오다가 소변이 마려운데 일어나질 못해서 바지에 쌌어. 망신스러워.”
“그랬구나. 동생네랑 또 누가 있었어?”
“응. 막내 희옥이”
“엄마, 괜찮아. 포항까지 많이 멀어서 그런 거야. 그런데, 이모가 좀 놀랐겠다. 그치?”
나는 엄마의 약을 챙겨드리고 엄마의 가슴을 토닥이며 잠을 자도록 두었다. 너무 늦기 전에 세탁실로 가서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모? 엄마는 잘 도착하셨어. 이모는 잘 도착했어?”
“그럼, 니 동생이 데려다줘서 잘 왔지. 그런데 니 엄마를 어쩌니?”
“왜? 무슨 일이 있었어?”
나는 이모의 생각이 궁금하여 되물었다.
“아니, 니네 엄마 치매 아니니? 글쎄, 바지에 실수를 다 하고 일어나지도 못해 운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벌써 치매에 걸리면 어쩌니? 검사는 받았어?”
나는 이모의 쉬지 않고 쏟아내는 질문에 잠시 침묵했다.
“응. 엄마는 정기적으로 검사받고 약도 먹고 있어. 여름부터 몸이 약해지셔서···. 여행이 힘드셨나 봐.”
“이게 다, 그 빌어먹을 니네 아빠 때문이야. 니네 엄마가 건강이 나빠진 것도 다 그 인간 때문이야.”
“이모, 건강 조심하시고 어서 주무세요.”
나는 이모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세탁실에 앉아 세탁기 안에서 돌아가는 엄마의 옷을 보며 소리 없이 울었다. 나는 엄마가 왜 이렇게 기억을 빨리 지우려고 하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엄마, 내일이 되면 오늘의 나쁜 기억은 다 지워도 돼. 좋은 것만 기억하고 예쁘게 살자.
내가 그렇게 해 줄게.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