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소견서를 받기 위해 병원에 가는 날이다. 엄마는 대학병원에서 정기검사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의사소견서를 받을 수 있긴 하지만 진료를 받을 일정은 아직 한참이 남았다. 다시 예약 일정을 조절하고 검사를 받으려니 서류 제출 일정에 맞추기가 어려워 동네 가까운 내과의원에 가기로 했다. 아침부터 아빠와 엄마의 식사를 챙기고 병원에 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나니 그새 기운이 빠졌다. 두 분 모두 청력이 약해진 상태라 내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면 잘 못 알아듣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난데없이 엄마는 돈이 없어졌다며 소란을 피운다. 며칠 전 현금을 세고 있는 것을 보고 작은 파우치에 넣어두라고 일러두었는데 그 돈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엄마의 침상 주변은 엄마의 옷가지와 스카프며 손수건, 지갑, 손가방 등으로 마치 새의 둥지 같다. 물론 아빠도 마찬가지이다. 손이 닿는 곳에 물건이 있어야 하고 보이는 곳에 두어야 잊지 않는다고 하여 내가 정리하는 것조차 마땅치 않아 하기에 그냥 그대로 두고 지내니 침대 주변은 만물상이 된 지 오래다.
지갑에도 손가방에도 없는 돈을 찾기 위해 이불을 다 걷어내고 침대 밑까지 기어들어갔다. 엄마는 내가 가져갔다고 오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악착같이 찾아야 했다. 언제 먹었는지 알 수 없는 먹다 남은 초콜릿을 겹겹이 쌓아놓은 종이에서는 초콜릿의 잔해가 바닥에 녹아 달라붙어 있고, 굴러 떨어진 약이 색깔별로 여기저기 굴러 들어가 있었다. 이 외에도 온갖 크고 작은 잡동사니와 엄마가 적어 놓은 기억의 메모 조각들도 찾았다. 엄마의 머릿속처럼 뒤죽박죽이다. 여름 이전의 엄마의 기억도 이곳 어딘가에 숨어있을까? 만약 찾을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서야 꼬깃하게 구겨져 구석에 뒹굴고 있는 현금 얼마를 찾아냈다. 나머지는 어디 갔을까? 왜 돈을 이렇게 여기저기 숨겨 두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생각해 보았다. 내가 엄마한테 얘기하지 않고 돈을 가져간 적이 있었나?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이 집에서 돈을 가져갈 사람은 나뿐이라는 것이다. 엄마는 짜증을 내며 울먹였다. 우선 병원을 다녀와서 다시 찾아보자고 엄마를 달랬다. 나는 뒤집어쓴 먼지를 털고 샤워를 했다.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이 머리를 적셨고 눈물이 물줄기를 따라 흘렀다. 이러한 일들이 얼마나 계속될까.
난데없이 엄마가 욕실 문을 열고 수건을 가져와서는
“이 거 써. 얼른 몸 닦고 가자. 돈 찾았어. 장지갑 속에 있더라.”
어처구니가 없어. 멍하니 엄마를 쳐다봤다. 엄마는 빙긋 웃고 나간다. 지금 이 수건은 도둑으로 나를 의심한 것에 대한 미안함의 표현인가. 나는 수건을 받아서 몸의 물기를 닦고 머리에 수건을 둘렀다. 그런데, 방금 샤워를 마친 내 몸에서 큼큼한 걸레 냄새가 났다.
“이건 무슨 냄새지?”
나는 머리에 두른 수건을 풀어 코를 대보았다.
‘아···· 맙소사.’ 아침에 설거지를 마치고 싱크대 주변을 닦았던 걸레였다. 나는 냄새에 예민하다. 정서적 안정을 찾기 위해 아로마 향을 곁에 둘 정도로 향기에 민감한 나였다. 이런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어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소리를 질러 버렸다. 향긋한 아로마 대신 큼큼한 걸레 냄새가 진동하는 이 현실이, 내가 오늘부터 온몸으로 마주해야 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