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미술관의 사회·문화적 역할2

지역공동체(community)로서의 박물관, 소통에서 시작

by 소리빛

박물관·미술관의 사회·문화적 역할 박물관·미술관의 사회·문화적 역할

한 해를 보내면서 박물관 내부의 시선을 벗어나 외부에서 바라보는 박물관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영국에서 오랜 시간 박물관을 경험한 서원주 관장님과 디자인을 전공한 오근재 교수님(전 홍익대학교 조형대학장)을 만났다. 오근재 교수님은 철학과 인문학에 폭넓은 이론과 해석을 겸한 학자로서 관람객의 입장에서 박물관(이하 미술관 포함)에 대한 의견을 주셨다. 그리고 미술계에서 오랜 글쓰기의 경험을 갖고 있는 날카로운 비평가 이준희 편집장님(월간미술)을 만나 우리 박물관의 현재를 들어본다.


# 미래 관람객을 박물관으로 이끄는 호기심 가게


필: 안녕하세요? 서원주 관장님, 전쟁기념관 어린이박물관이 전쟁사를 주제로 한 세계 최초의 어린이박물관이라고 들었어요.

서: 네, 2014년 12월 3일 개관 이후 2주년이 되었어요. 대체로 국내 어린이박물관은 아동발달 중심의 콘텐츠를 일상적인 맥락에서 전시하거나 모(母) 박물관의 콘텐츠를 어린이의 시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우리 어린이 박물관은 후자에 속합니다. 그래서 전쟁과 국난 극복의 역사를 어린이들 입장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계속 고민을 하고 있지요.

필: 관장님께서는 국내·외 학회에서도 많은 활동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박물관은 지식을 학습하거나 전문가들이 가는 곳으로 어렵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어요.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서기 위한 박물관의 사회, 문화적인 역할이 무엇일까요?

서: 하하하. 아닙니다. 영국에서 공부를 하면서 박물관에서 일을 했었고 학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어요. 당시에 느꼈던 것을 이야기하자면, 우선 그곳의 박물관에서 사용하는 언어들이 일상의 언어와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박물관의 잠재적인 작업들이 누구의 시각에서 시작을 하는 가’라는 생각을 많이 해 보았습니다. 우리의 박물관은 관람객과 보이지 않는 간극이 있는 것 같아요. 먼저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언어적인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보고요, 물론 학계에서는 학예사의 전문성을 발휘해서 깊이 있는 언어로 연구가 되어야겠지요.

우리는 박물관을 직접 찾아오는 방문객을 위한 서비스에 대부분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제가 학회 등에서 늘 이야기하는 부분인데요, 일반적으로 박물관들은 찾아오는 관람객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그런데 박물관을 찾아오는 분들은 박물관에 애정이 있는 분들이란 말이죠. 말하자면, 충성도 높은 관람객을 위한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안타까운 사실은 우리들끼리 칭찬하고 격려하는 사이에 문화에 관심이 소홀한 사람들, 비방문객인 ‘Non-Visitor’, 즉 박물관에 오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먼 곳으로 소외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음. 박물관에 오지 않거나, 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이유가 있어요. 단순히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고 하거나, 박물관에 대한 거리감이나 부정적 시각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앞으로 박물관 전문가들이 사명감을 갖고 관심과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하는 부분이 바로 그들을 위한 서비스라고 생각해요.

전쟁기념관 어린이박물관.jpg 전쟁기념관 어린이박물관 | 어린이박물관 제공

그러한 노력의 실천으로, 요즘 우리나라의 국·공립박물관들이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는 ‘찾아가는 박물관’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아직도 박물관 문화의 전반에 엄숙 주의, 경건주의가 남아있어서 아쉬운 점이 있어요. 전시 주제에 있어서 특정 비율은, 대중적인 전시를 통해 일반인들이 박물관과 친밀해질 수 있도록 하면 좋겠어요.

런던 교통박물관 체험전시 | 서원주 제공

조금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재미있는 사례가 있어서 소개할게요. 영국의 동북부 도시 중심가의 시장 한가운데에서 ‘The Curiosity shop’이라는 전시가 열린 적이 있어요. 시장에서 폐업한 작은 가게를 빌려 누구나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독특하고 이상한 생물들의 이야기가 전시되었어요. 인어와 거대한 북극곰, 털이 있는 물고기라든가, 세계에서 가장 작은 고양이 등 어느 누구나 흥미롭게 생각할 만한 내용들이 아주 재미있고 쉽게 설명되어 전시되었습니다. 제 기억엔 지역의 여러 박물관, 미술관, 그리고 갤러리가 파트너가 되어 운영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국립박물관과 미술관, 크고 작은 여러 갤러리가 파트너로 참여해 전시를 운영했다는 점은 우리가 참고할 만한 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호니만박물관 체험식 전시 | 서원주 제공

이러한 대중적인 전시의 장소적 의미는 따로 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박물관에 올 수 없는 비방문객에게 문화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호기심 가게를 방문한 관람객들의 ‘전시 관람 경험’이 미래의 어느 날에는 그들의 주변에 있는 박물관, 미술관, 갤러리에 찾아갈 수 있도록 ‘매개(媒介)역할’을 한다는 점입니다.



# 다양한 소통의 확대로 인한 또 다른 소외


필: 안녕하세요? 선생님. 근래에 박물관의 역할이 점차 확대되고 있어요. 이러한 박물관의 커뮤니티(community) 확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오: 저는 박물관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관람객, 즉 소비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해 볼게요. 박물관에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 어떤 프레임이 있어요.

예를 들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A유물과 B유물은 서로 관계가 없는 거죠. 원래 가지고 있던 자율성이 소멸된 상태로 박물관에 와 있는 거지요. 오래전에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그릇이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 그릇은 생활과 상관없이, 미적 자율성이 사라진 채 박물관의 프레임에 들어가면서 새로운 가치를 얻게 되죠. 그것이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 가치는 박물관이 만들고 있어요. 옳고 그름을 떠나서 현실을 떠난 편집된 가치가 새롭게 생기는 거예요.

옛 생활들을 현대적 해석으로 재현하는 작업은 박물관의 중요한 일이죠. 그러니까 미적 가치의 소비자를 창출하는 것이 박물관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어요. 원래의 가치를 소멸시키고 박물관 나름대로의 가치를 새로이 만드는 것. 가치 창출.

박물관은 골동품 상점과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언가 가치의 체계를 만들어서 수집한 유물의 가치를 재창출할 수 있는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보기엔 우리나라의 많은 사립 박물관들이 아직 그들의 정체성이라든가 시스템을 찾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박물관이 지향해야 하는 서비스 등을 고려해서 공개해야 하는데 가치 창출에 대한 전문성은 낮은데 권위적인 부분이 강해요.

exhibition-휴식의자.jpg 관람객을 위한 배려

박물관의 다양한 커뮤니티 확대는 좋은 방향이에요. 많은 관람객에게 박물관의 전시를 쉽게 보여주는 일은 바람직하죠. 그런데 그로 인해 박물관의 새로운 가치를 원하는 관람객들이 소외되고 있다는 점은 숙고해야 할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커뮤니티를 위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 같고요. 여러 계층의 커뮤니티에 대한 확대가 성공적이려면 그들에 대한 문제를 먼저 살펴봐야 해요.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에요. 분명한 것은 박물관의 정체성은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지식의 전달이 아닌 미적 경험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원하는 소비자들을 잊지 말아야 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이제 우리 같은 나이 든 사람들은 다리가 아파요. 하하하. 피곤한 관객을 위해서 휴식하면서 감상할 수 있는 전시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피곤한 관람을 하다 보면 다음에 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아요. 작은 의자 하나에 대한 배려가 곳곳에 있었으면 해요.


# 박물관들의 초심, 정체성 되돌아보기


필: 이준희 편집장님, 안녕하세요? 미술전문지를 만드는 입장에서 우리 박물관의 사회, 문화적 역할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넓게 봐서 예술과 사회는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좁게 봐서 미술과 정치도 그렇고요. 저는 박물관과 미술관의 설립 과정을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소장한 특화되고 차별화된 유물이 있고 설립 목적이 저마다 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즘, 그러한 특성들이 정책적인 입장과 행정상의 이유로 일반화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안타깝습니다. 특히 사립 박물관의 경우, 처음 설립 당시의 전문성을 살렸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초심을 잃지 않고 지역사회의 일부로서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열린 마음과 겸손함이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 박물관은 해야 할 일이 참 많다. 지금까지 문화와 관련된 크고 거창한 일들을 해왔다면 지금부터는 ‘함께 살아가는 이웃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여 적극적으로 임해야 할 때이다. 다양한 문명의 이기로부터 소외된 힘겨운 삶들을 돌아보고 지역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일은 단순한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세상의 재미있는 일들을 함께 할 수 있는 지역공동체를 일궈 나가는 사회문화적 책임도 바로 박물관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곧 새로운 해가 밝아 온다. 봄이 움트기 전에 박물관에서 일어날 새로운 일들을 상상해 보자.

상상을 한다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상상력이 풍부한 빨간 머리 앤은 이야기한다.

“나중에 알아볼 것들을 생각하는 일도 근사하지 않나요? 살아 있다는 게 기쁘게 느껴지거든요. 세상엔 재미있는 일이 참 많아요.”



위 글은 2016년 한국박물관협회 기획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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