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문, 낮은 담장
# 서울상상나라, 스스로의 문턱 낮추기
유년시절 어린이대공원에 대한 추억이 있다. 1973년 개장되었으니 사람 나이로 치면 중년이다. 늘어지게 어슬렁거리며 걷던 어린 시절의 호랑이를 기억하고 싶을 때, 나는 지금도 이곳의 동물원을 찾는다. 며칠 전 갑자기 차가워진 찬바람이 그나마 남아있던 나뭇잎들을 떨어뜨리려고 작정을 하였다. 앙상한 겨울 공원의 입구에 어린이들을 위한 상상나라가 있다 하여 찾아가 본다.
서: 안녕하세요? 김병태 관장님.
이곳의 공간은 어린이를 위한 곳이라 그런지 색감이 따뜻하고 즐거운 마음이 생기는데요. 어른들도 이곳에서는 아이가 될 수 있겠어요.
김: 네. 맞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공간이기 때문에 안전시설과 채광, 색감, 수유실, 어린이 시선에 맞춘 편의시설 등 공간 디자인에 신경을 썼습니다. 서울상상나라는 2013년 5월 서울시 최초로 복합 문화체험시설을 독립된 공간에 설립하였죠. 1995년 개관한 삼성 어린이박물관에서 근무하던 전문 인력들이 그동안 축적된 경험들을 이곳에서 발휘하고 있습니다.
‘서울상상나라’라는 명칭은 서울시민 공모로 선정된 이름이에요. 어린이박물관이라는 일반적인 기관명보다 좀 더 창의적인 이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기관의 성격을 명칭에서 상징적으로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어 방문하는 분들의 이해에도 좋은 것 같고요. 이곳을 찾는 어린이들은 다양한 놀이를 통해 ‘배려’와 ‘과학’, ‘예술’, ‘문화’, ‘역사’ 등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이곳을 찾는 방문객은 서울시민이 90%에요. 우리 기관은 전국의 어린이들에게 열려있는 곳이지요. 하지만 주요 관람객이 서울시민이고 지역과 연계된 문화공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공헌은 과거와는 달리 현재, 매우 중요한 윤리경영이자 기업가치의 척도가 되고 있어요. 박물관의 관점에서는 ‘나눔’이에요. 우리 서울상상나라는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콘텐츠를 모든 서울시민과 함께 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예를 들면, 일 년에 두 번 기획전시를 교체하는데요, 좋은 콘텐츠를 타 기관과 공유하고자 일정이나 운영조건을 조율해서 모듈(module)화 된 순회 전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애인, 문화에서 소외된 어린이들을 위한 워크숍과 이들을 위한 찾아가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어요. 이러한 활동들이 쉬운 일은 아니에요.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고. 그러나 좋은 프로그램들이 많은 어린이들과 공유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운영할 계획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전문화된 디지털 사회가 될 것이라고 하잖습니까? 이러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감성적인 교육은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박물관들은 모두가 함께 하는 열린 문화공간이에요. 그런데 박물관에 종사하고 있는 우리들이 문턱을 높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 스스로의 문턱을 이제는 낮추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지역 학생들의 일상에서 숨 쉬는 탐구 공간
봄이면 온 산이 벚꽃 천지가 되는 ‘안산(鞍山)’ 아래 서대문자연사박물관. 비탈진 길을 오르다 보면 보기만 해도 신이 나는 목이 긴 공룡을 닮은 미끄럼틀이 있다. 미끄럼을 타려는 아이들이 옹기종기 줄 서있는 것을 보니, 이 정도 추위는 아무것도 아닌가 보다. 벌써 10년이 넘었다. 아마도 거의 모든 아이들이 이곳을 한 번 즘은 방문하였을 것이다.
서 : 안녕하세요? 이강환 관장님.
얼마 전까지 과천과학관에 계셨다고 들었어요. 전문가로서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의 운영과 향후 방향에 대한 의견을 부탁드려요.
이 :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이곳처럼 자연사박물관을 운영하면 될 것 같아요. 아직 직제에 대해서는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계신 분들은 자신의 전문성과 경험을 오랜 시간 축적시켜서 연구와 전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이곳의 특징이자 강점이죠. 이 부분은 제가 아닌 전임자들이 이루신 결과입니다.
어릴 때 한번 이상은 와볼 만한 박물관이에요. 저는 관람객들에게 과학적인 마음가짐과 탐구, 과학적 사고방식을 경험하게 하고 싶어요. 예전에는 과학이라고 하면 신기한 사실을 알려주는 것으로 알고 있었어요. 이제는 그것보다 어떻게 알아냈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쳐주는 곳이 과학관이나 자연사박물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전시도 중요하지만 관찰하면서 궁금한 내용에 대한 원인을 과학적으로 찾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곳은 한번 와서 잘 몰라요. 그 내용이나 원리를 이해하려면 자주 와야 해요. 그리고 우리 박물관 사람들은 그들이 자주 올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야 하고 때에 따라서는 우리가 찾아가기도 해야 하죠.
이곳의 관람객 분포는 전국적입니다. 정말 많이 와요. 반면, 해당 지역 관람객은 10%도 안 되고 있어요. 지역에서 만든 기관인데 말이에요. 그래서 지역에 있는 학교에 찾아가서 과학에 대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아주 좋았어요. 호기심을 갖는 학생들이 많았고요. 주로 중·고등학생이에요. 그들이 앞으로 우리 과학의 주인공들이죠. 지역 주민과 상호관계를 갖는 것은 중요한 것 같아요. 지역주민에게 자긍심이 될 수 있는 문화공간이 되어야 해요. 그래야 이러한 자연사박물관이 다른 지역에도 설립되어 지금보다 수가 증가하고 활성화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집과 가까운 곳에 자연사박물관이 있다면 아이들이 수시로 그곳에 들려 과학적인 사고를 갖게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면 미래의 과학인재들이 더 많이 생기겠죠.
과학관과 자연사박물관의 전시는 일회성 관람과 체험으로 이해하기 어려워요. 호기심을 자극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 잊게 되죠. 적어도 이곳에 오기 전에 궁금한 부분의 책을 먼저 보고 전시를 보면서 관찰하고 돌아가서 자료를 다시 보다 보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작은 발견은 과학에 대한 기대와 신념을 자극하여 박물관을 재방문할 수 있게 도와주겠죠. 우리는 아이들이 스스로 찾아오는 박물관이 될 수 있도록 아이들의 생활과 밀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해요.
때론, 박물관 사람들은 실적을 위해 관람객의 방문 수를 높이려 하는데요,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해외 과학자들 중에는 어릴 때 과학관이나 자연사박물관의 경험들이 꿈을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사람이 많아요. 한번 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이들은 집 근처의 과학관이나 박물관을 수시로 다녔던 거죠. 과학을 반복적으로 노출을 시키다 보면 과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이 많아지겠죠. 그래서 우리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지역주민들을 위한 공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지역의 학생들이 과학과 친해질 수 있도록 교육환경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주변 학교에 열린 강연도 나가고 있고요. 가능하면 지역 교육활동에 조금 더 집중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현재 우리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의 할 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중요하니까요.
# 농민의 농협 농업박물관, 농업의 의미와 가치 함께 공유
서울 시내 한가운데 20년 된 농경지가 있다. 이곳은 매년 작은 고사리 손들이 직접 파종과 모내기는 물론 가을걷이도 한다. 그리고 풍년의 소원을 담은 농기와 허수아비도 세운다. 이곳을 지날 때, 앙증맞은 허수아비를 보게 되면 아이들의 솜씨에 웃음이 저절로 난다.
서 : 안녕하세요? 김재균 관장님.
농협 농업박물관이 꽤 오래되었죠? 그 사회·문화적 역할이 무엇일까요?
김 : 1987년에 개관을 했으니까, 이제 2017년이면 30년이 됩니다. 일차적으로는 농업을 통해 발생된 일정 수익을 국민에게 문화적 서비스로 환원하기 위해 설립했죠. 그리고 두 번째는 우리 박물관은 농민이 주인인 농협이, 농업의 이해를 도시민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설립한 목적도 있어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농업박물관이라고 알고 있는데, ‘농협 농업박물관’이 공식적인 이름입니다.
대부분의 유물들은 농민들에게 기증을 받았고 귀한 물건들을 전시에 잘 활용하고 있죠. 처음에는 농기구를 수집해서 박물관을 만든다고 했을 때 어려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전국의 농촌을 다니며 농사도구를 찾아 나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특히 농기구를 소유한 주인을 이해시키는 일이 어려워서 직원들이 고생이 많았어요. 안 다닌 곳이 없습니다. 우리 박물관에는 5천여 점의 유물이 있죠. 모두 농촌주민과 농업인 조합원들이 쓰던 기구들이에요. 저마다 사연이 깊어 고마움과 숙연한 마음이 함께 듭니다. 그분들의 삶이 자연스럽게 전시에 녹아서 우리 도시 사람들의 일부가 된 것이죠.
농민의 고마움과 노고를 알리고 농업이라는 특정 산업의 가치를 국민들에게 이해시키고자 농협이 앞장서게 되었는데요, 그렇다고 농협이라는 설립 주체를 부각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농협의 조합원 교육을 이곳에서 하고 있지만 관람객 수는 일반 관람객 수가 더 많으니까요.
입구에 있는 체험농장을 보셨나요? 지금은 추수 후라 볼품이 없지만 사계절 농사를 이곳에서 다 할 수 있도록 마련했어요. 1995년에 시작했으니까 20년 된 농경지인 셈이죠. 주변의 초등학교를 섭외하러 우리 직원이 직접 갑니다. 1년간 체험교육을 할 수 있어요. 체험을 신청한 특정 학년 전원이 4-5월이 되면 파종과 모내기부터 수확까지 경험할 수 있습니다. 주로 3-4학년이 신청하더군요. 반마다 돌아가면서 참여하는데요, 허수아비 만들기 체험도 하죠. 작품들이 아주 재미납니다.
지난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 이후 20여 년 동안 대부분의 농산물이 개방되었습니다. 그때는 아주 큰일 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지요. 2015년에는 쌀 시장마저 관세화 유예조치가 끝나면서 완전 개방화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고요. 수입개방은 점점 늘고 있는 반면, 농가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걱정이죠. 앞으로 농업은 기계화와 자동화 등으로 스마트한 농업경영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 농업은 스스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해요. 그 과제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의 먹거리는 우리가 지켜야 합니다. 다양한 먹거리 개발을 위해서 다른 산업과의 융·복합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고요. 우리 전시관에는 미래 농업관이 있는데요, 미래농업은 어떤 모습일까요? 농업이 산업으로서 중요하며 그 소중한 가치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노동력 중심에서 벗어나 첨단 농업으로 방향 전환을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하죠. 농민뿐만 아니라, 소비자가 될 수 있는 더 많은 사람들이 농업에 대한 이해를 함께 했으면 합니다. 수시로 우리 박물관에 와서 우리 농산물과 농민들의 미래를 함께 고민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위 글은 2016년 한국박물관협회 기획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