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의 또 다른 경영 공간, 뮤지엄 숍 & 카페
Inside Museum ; Shop & Cafe
어릴 때부터 간직하고 있는 ‘추억의 보물 상자’가 있다. 그 안은 국내·외 여행지와 박물관에서 구매했던 기념품들로 가득하다. 가격표도 떼지 않은 오래된 그림엽서와 박물관을 상징하는 작은 열쇠고리, 작품을 닮은 인형과 오르골, 화려한 도자기를 그린 모형 자석, 디자이너가 제작한 수첩과 시계, 박물관 로고가 새겨진 가방 등 종류도 가지가지이다. 이 외에도 몇몇 기념품들은 누군가에게 전달되어 나의 추억과 장소의 의미를 공유하는 특별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박물관이 기념품을 만든다는 것은 검증된 ‘우리의 이야기’를 콘텐츠화한다는 의미로, 박물관의 스토리를 판매하려는 유혹적인 경영 전략이다. 박물관·미술관(이하 박물관)은 해마다 중장기 전략을 세우면서 소비자, 즉 관람객을 위한 사회적 소명(疏明)을 다하기 위한 변화를 시도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박물관 나름대로의 ‘정체성(正體性)’을 찾게 된다. 어떤 면에서 그 정체성은 ‘박물관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우리’라는 공공의 집단으로 상징화되기도 한다.
박물관은, ‘우리’가 될 수 있는 관람객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스토리를 만들고 유물의 역사와 문화적 진정성에 대한 ‘우리의 이야기’를 브랜딩하고 있다. 그 이야기는 유물에 대한 교육, 가상의 기념품, 음식, 건축물로 표현되기도 한다. 박물관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은 전시와 예술작품에 대한 경험뿐만 아니라, 그 경험의 일부에 대해 구매하기를 원하기도 한다. 예술로 승격된 그 무엇에 대한 기대와 시간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자 원하기 때문이다.
박물관에서 그들의 상징화된 콘텐츠를 판매하기 시작한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되었다. 런던의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Victoria and Albert Museum)은 100년 전 최초의 소매점 매장을 갖추고 모형 석고상과 사진을 팔았다. 곧 박물관의 감흥을 전달할 수 있는 숍 운영은 점차 높은 수익을 올렸으며 박물관 경영자들은 이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여타 박물관 중에는 부속 기관이었던 기념품 숍을 분리하여 별도의 경영을 하였으며, 다른 국가에 여러 곳의 소매점을 두기도 하였다. 즉, 세상에서 ‘유일한 박물관 기념품’을 판매하는 숍과 카페의 운영이 아니라, 다국적 기업(multinational corporation , 多國籍企業) 형태의 경영에 돌입하였다는 의미이다.
박물관은 공간의 규모와 유물의 수로 관람 시간을 정하기에 곤란하다. 유물에 대한 지적 호기심과 영감의 상상력에 대한 소요시간은 한두 번, 혹은 한두 시간으로 수치화할 수 없다. 불특정 관람객들의 다양한 취향은 박물관 학습의 재미와 특별함에 따라 머무는 시간이 짧아질 수도 있고 길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경험에 대한 발산(發散)은 구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더불어 쉴 수 있는 휴식 공간과 훌륭한 맛 집이 있다면 박물관이라는 복합문화공에서 멋진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천리포 수목원의 경우처럼,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 테마별 숙소를 운영하고 있는 곳도 요즘 들어 꽤 생기고 있다.
숍과 카페의 운영방법은 기관마다 다르다. 국립기관의 경우, 숍과 카페를 직접 운영하기도 하며 상황에 따라 전문 업체에게 위탁을 주기도 한다. 사립박물관의 경우는 기업경영의 입장에서 기념품 숍과 카페 운영을 직접 하는 사례가 더 많다. 수익의 중요한 창구가 되며 홍보의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을지로 근처에 있는 ‘그레뱅(Grevin) 뮤지엄’을 다녀왔다. 4층 규모의 크지 않은 근대 건물을 세련된 디자인과 감각적인 빨강으로 탈바꿈하여 놓았다. 높은 빌딩 숲 사이에 있는 원래의 건물은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었다. 일제시대, 미쓰이물산 주식회사 경성지점으로 사용되었던 이곳은 1990년까지 ‘구 미국문화원(등록문화재 제238호)’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서울 시청의 ‘을지로 별관’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2013년 3월 서울시와 프랑스 CDA(Compagnie des Alpes는 세계 10위권의 리조트, 레저 전문업체)가 MOU 체결을 진행한 뒤, 2015년 7월에 밀랍인형 박물관인 그레뱅 뮤지엄을 개관하게 된다.
신문이 거의 없던 시절, 아르튀르 메이에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발간하던 일간지 ‘르 골루아(Le Gaulos)’에 소개되었던 ‘신문 1면의 인물들’에 대한 색다른 상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1882년, 유명인사의 입체적(3D) 밀랍인형을 전시하는 ‘그레뱅 뮤지엄 파리’를 개관하게 된다. 지금까지 이곳은 창시자의 정신을 이어오면서 2,000여 개가 넘는 밀랍인형을 전시하고 있다. 그레뱅 뮤지엄의 글로벌 확장과 기업형 경영의 실천은 몬트리올과 프라하, 서울 등에 또 다른 모습의 그레뱅 뮤지엄으로 선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그레뱅의 글로벌 확장은 각 나라의 문화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한다.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빛낸 위인과 스타를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 누군가의 꿈과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환상을 현실화할 수 있는 공간이 된 것이다.
유명인사의 밀랍인형 하나를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6개월, 비용은 1억 원이 발생한다. 조소가, 인공 보철 전문가, 헤어 이식사, 메이크업 전문가, 코디네이터 등 15명의 아티스트와 장인들이 협력하여 그레뱅만의 극사실주의, 하이퍼 리얼리즘(Hyperrealism)이 예술로 탄생하게 된다. 이러한 전시에 대한 감흥은 미로처럼 이어진 출구 끝의 기념품 숍, ‘그레뱅 부티크’로 이어진다. 어린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스타 엽서와 문구류, 액세서리, 의류를 주로 판매한다. 그레뱅의 감각으로 만든 상품들 중에는 어른들도 좋아할 키덜트(kidult, 키드(kid)와 어덜트(adult)의 합성어로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이의 향수와 문화를 즐기는 사람) 장난감과 값 비싼 스타 피규어(figure, 모형 인형), 유명인의 자서전도 판매하고 있다.
그레뱅 뮤지엄 체험의 마무리를 장식할 ‘카페 그레뱅 서울’은 프랑스 유명 요리 학교인 ‘르 꼬르동 블루( Le Cordon Bleu, 파란 리본이라는 의미. 1895년에 설립된 프랑스 요리, 제빵제과 및 와인 전문학교)’ 출신의 요리사가 직접 운영하는 곳으로 요리의 뛰어난 맛과 시각적인 감동을 주고 있다.
그레뱅 뮤지엄의 탄생 뒤에는 CDA라는 ‘라 꽁빠니데잘프’와 한국의 ‘마스트 엔터테인먼트’의 역할이 있었다. 그들은 획일화된 경영모델에서 탈피한 경영철학과 파트너사의 협력들이 뮤지엄 경영의 기본이 되고 있다고 믿는다. 이곳은 독특한 체험과 놀이에 대한 재미, 즐거운 쇼핑과 맛있는 휴식공간이 함께 하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서 손색이 없다. 즉 관람객의 지갑을 열 수 있도록 특별한 소비를 만드는 박물관 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시대의 역사적 인물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과 스토리, 밀랍인형 제작 기술에 대한 이해를 맥락적으로 이끌 수 있는 연구들이 기념품과 연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위 글은 2016년 한국박물관협회의 기획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