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color)으로 방문객(소비자)과 교감(交感)하는 기념품
문 밖에, 여름내 참아왔던 자연의 색들이 쏟아지고 있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자연이 만드는 색의 비밀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다. 작은 티 하나 용납되지 않는 흰색과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검은색, 태양을 닮은 노란색과 강렬한 핏빛의 붉은색을 구하기 위해 광물과 흙, 동식물은 물론 배설물까지 재료로 하여 다양하고 위험한 실험에 도전했다.
색은 문화권마다 다양한 역사와 전설, 상징과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인도 산스크리트 문헌에는 흰색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빛나는 흰색, 치아의 흰색, 백단의 흰색, 가을 달과 구름의 흰색, 은의 흰색, 우유의 흰색, 진주의 흰색, 광선의 흰색, 조개껍데기의 흰색, 별의 흰색 등. 우리가 명명(命名)하는 색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다르다.
나는 종종 색을 설명할 때, 색에서 느낀 이미지나 느낌을 예로 들어 이야기한다. 다양한 푸른색 중에서 지정할 때는 ‘즐거운 파랑’이라고 한다든가, 분홍색을 선택할 때는 ‘봄에 날리는 벚꽃 같은 느낌’이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색에 대한 나의 설명 방식이 상대방을 당황하게 할 때도 있지만, 더 빠르게 이해가 되며 작업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상대방과 내가 색이 지닌 이미지와 상징에 대한 공감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디자인(design)이 모든 면에서 화두(話頭)가 되고 있다. 전통과 의미, 이야기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떠한 방식으로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여기에 담긴 ‘색(collar)’의 정서적 측면이다. 개인적인 성향을 부각하고 특별함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은 색에 민감하다. 색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되며, 스스로를 격려, 치유할 수 있는 동기(motivation)를 부여해 주기 때문이다. 마치 주술(呪術)처럼.
색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시작된 것은 18세기 무렵이라고 한다. 예술세계를 포함하여, 의류와 실내장식 등에서 색채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색에 대한 이해가 그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즉 색은 물건의 구분을 위해 형태를 덮고 있는 것이라는 예전의 개념과는 달리, 그 자체로서 존재의 의미를 갖는 무엇으로 파악하게 되었다.
이러한 색에 대한 철학과 이미지에 대한 상징성은 박물관의 기념품 제작에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박물관의 정체성과 비전을 알리는 광고, 홍보의 효과에도 큰 역할을 한다. 그래서 박물관의 기념품을 제작하거나, 상표, 브랜드를 표기하기 위한 색의 선택은 시각적으로 매우 중요하여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근래, 박물관의 기념품 숍 중에는 PB(private brand) 상품을 제작하여 판매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박물관만의 브랜드 상품을 제작하게 되면 고유한 이미지를 만들고 유지할 수 있어 마케팅의 정체성을 높이고 충성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가격과 품질이 좋으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색과 이미지를 담은 PB상품을 제작했을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물론 그 제작을 뒷받침할 수 있는 예산과 유통, 판매 전략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좋아하는 색을 건축물에 비교하라면, 나는 故김수근(1931-1986)의 공간(空間) 사옥(등록문화재 제586호)을 이야기하고 싶다. 건물의 색은 눈에 거슬리거나 돋보이지 않으며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룬다. 창경궁의 기와, 정원의 나무, 주변 한옥과 잘 어울려 한 폭의 정물화가 된다. 이와 달리, 그 안은 동적인 또 다른 공간의 색을 담고 있다. 한국 현대 건축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곳은 지난 2014년,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로 새로운 변화를 시작했다.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는 한때, 한국 현대 예술의 구심점 역할을 담당했던 공간사옥의 전통을 넘어 세계적인 문화와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독특한 건물구조 때문인지, 뮤지엄 전시관으로 입장하려면 아라리오 뮤지엄 숍을 통과하여야만 한다.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국내외 유명 작가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신진 작가들의 작품과 상품들을 빼곡하게 진열하고 있다. 다양한 작가의 개성을 담은 패션, 액세서리, 장난감 그리고 생활용품과 서적, 문구 등 40여 개의 브랜드 디자인 상품을 골라보는 재미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한다. 그러다 보면 문득 가방 속의 지갑을 꺼내게 된다. 켜켜이 올려진 선반마다 독특한 물건들이 많아 이러한 상품들을 찾아내는 부지런함과 안목을 칭찬하고 싶다.
아라리오 뮤지엄은 세계적인 아트 컬렉터이자 아티스트인 김창일 회장이 가꾸어온 꿈의 결실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곳곳에서 그의 아이디어와 관심들이 묻어나고 있다. 그는 전시와 문화예술 활동에만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라, 뮤지엄 숍의 기념품 판매와 제작에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듯 보였다. 그곳 PB제작은 2013년부터 시작되었고 그 특징은 색과 재미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고집스러우나 정중하며 세련된 검은색과 열정적이며 발랄한 느낌의 빨간색이 이곳 PB상품의 대표적인 색이다. 두 색은 아라리오 뮤지엄 건물의 색을 상징한다. 즉 서울에 위치한 아라리오 뮤지엄 공간사옥의 검은색과 제주도 탑동에 위치한 탑동 시네마, 탑동 바이크, 동문 모텔(Ⅰ,Ⅱ)의 빨간색이 그것이다. 아라리오 뮤지엄 개관 2주년을 기념하여 뮤지엄을 상징하는 색과 철학, 역사성을 담아 제작하였다. 아라리오 뮤지엄의 PB상품에 디자인된 색과 글귀는 기념품 숍을 찾는 방문객들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예술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거야. 그러니 힘을 내라고.”
지금까지는 기념품을 제작할 때 박물관 전시에 대한 홍보와 방문을 추억하는 것에만 집중하였다면, 이제는 한 걸음 나아가 기념품을 통해 방문객과 정서적으로 교감(交感)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고민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상처 받은 누군가가 박물관에 들러 위로를 받고, 기념품을 구매하면서 좌절되었던 꿈을 안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의 색이 담긴 상품이 제작되었으면 좋겠다.
위 글은 2016년 한국박물관협회 기획칼럼입니다.
* 자료 사진 : 아라리오 뮤지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