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관으로 간 천재들2

다양한 장르와의 만남, 협력을 통한 ‘접점'

by 소리빛

“눈으로 충분하지 않다. 생각할 필요가 있다.”

폴 세잔은 당대의 화풍을 벗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 인상주의(印象主義)를 만든다. 그는 실제 눈으로 보이는 풍경이 과학적인 원근법과 색채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조금 다른 시각에서 다채로운 빛의 재창조가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다. 그리고 상상한 마음속의 신비로움을 찰나의 빛을 통해 화폭에 담아 새로운 표현기법으로 창조적 세상을 만든다. 전시기획도 마찬가지이다.

Media Facade | RETROMEDIA

현재, 전시의 흐름을 주도하는 특별한 표현기법이 있을까? 만약 특별한 기법이라고 한다면, 기획한 내용을 일정한 공간에 효과적으로 담아 관람객의 감동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기술일 것이다. 전시 공간 자체가 지니고 있는 의미에 대한 체험은 기본사항이다. 영상(image), 텍스트(text), 오브제(object) 등이 멀티-미디어(multimedia)를 통해 관람객과 하나가 되어 시스템처럼 작용한다. 몇 년 전만 해도 관람객은 명품 위주의 선택된 전시내용을 수동적으로 관람해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다른 상황이 되었다. 관람객도 전시 내용의 구성요소가 되어 적극적인 전시문화를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 전시 기획자는 기획 초기부터 관람객의 움직임과 반응 등을 미리 고려하여 최첨단 기술을 통해 공간과 오브제의 특별함을 최대한 부각하기 위해 노력한다.

Media Wall | RETROMEDIA

우리가 알고 있는 전시의 특별한 기법은 시각적 유형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전시의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설명, 영상이나 그림, 조형물 등. 그리고 박물관·미술관(이하 박물관)의 유물이나 원형 작품의 전시가 그것이다. 이 외에 대형 스크린과 특수 효과를 담은 스펙터클(spectacle)한 기법을 동원하면 가상공간 속의 감동을 연출할 수 있다.

스펙터클 한 전시공간 연출 기술에 대해 몇 가지 소개하자면, 전시에 대한 암시나 긴장감을 형성하기에 좋은 파사드(façade, 요즘은 주로 미디어 파사드를 제작한다), 오브제의 원형이나 재현물에 집중시키기 위한 조명, 감정 이입과 내용 전달을 위한 음향, 다양한

Media Wall | RETROMEDIA

시각물을 쉽게 전달할 수 있으며 공간 연출 이동이 가능한 미디어 무빙 월(media moving wall), 입체적인 흥미를 유도하기 위한 디지털 랩핑(digital projection wrapping) 등이 있다. 그러나 시각적인 효과와 감각적인 체험을 극대화하기 위한 다양한 기법과 기술들은 모두 전문가의 섬세한 관리와 막대한 예산이 수반(隨伴)되어야 하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상설전시에서는 이러한 전시연출을 상시적으로 실행하기가 어렵다. 일정이 정해져 있는 기획전시나 단기간의 이벤트 전시행사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전시 공간 연출에 대한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근래 전시의 기법이 다양화되고 있는 만큼 피상적(皮相的)인 표상(表裳)에 집착하여 흥미 위주의 상업주의적인 전시가 트렌드처럼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박물관의 전시는 소장품에 대한 연구와 병행되어야 한다. 국민의 문화적 소양의 증진을 위해 소장품 이해를 위한 전시가 전제되어야 함이 당연하다. 그것이 박물관이 지니고 있는 사회적인 책무라고 본다.

(위) AR기법과 (아래) 태블릿을 통한 전시 체험

지난 2014년 10월, 국립한글박물관이 개관하였다. 올해는 한글의 원형을 담고 있는 『훈민정음』이 간행된 570주년이 되는 해이며, 국립한글박물관 개관 두 돌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훈민정음』에 담긴 한글 원형을 디자인으로 풀어낸 23팀의 디자인 작가 작품을 소개하는 첫 국외 특별전, ‘한글디자인’전이 일본 동경의 주일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에서 10월 7일(28일까지) 개최되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요즘 ‘한글의 소재’를 다양하게 전시하기 위해 문화예술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을 시도하는 중이다. 유물을 기증한 기증자의 도움을 받기도 하며 글자나 언어의 역사, 서체의 다채로움을 보여주기 위해 디지털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관람객이 원하는 정보를 재미있게 체험할 수 있도록 디자인과 기술을 전시 표현기법으로 활용한다.

지난달, 9월 13일 개관한 기획특별전 ‘덕온공주 한글자료’전은 소장품 연구와 IT기술이 만나, 전시의 이해를 돕는 체험형 전시로 융합된 좋은 사례이다. 전시장 안에서는 각종 IT기술을 활용한 전시 내용 관련 영상 및 사진 자료를 만날 수 있는데, 그중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 기법을 적용한 3차원의 가상 이미지를 통해 덕온공주의 혼례 과정을 시각적으로 연출한 부분이 흥미롭다.


주로 문자가 소재인 지루한 전시가 될 수 있기에 AR기법과 태블릿을 활용하여 중세국어의 어려움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준비에 참여한 학예사나 디자이너, 작가 등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먼저, 국립한글박물관의 전시기획팀이 박물관의 해례본 자료를 3개월 간 연구를 한다. 그리고 참여 작가들과 함께 자료에 대한 학습을 거친 후, 최종적인 작품 방향에 대한 미션(mission)을 수행하게 된다. 그것이 끝이 아니다. 충분한 연구가 훌륭하고 만족스러운 전시로 뒷받

침 될 수 있도록 끝임 없는 논의와 회의를 통해 진정한 협업이 완성되는 것이다. 즉 박물관의 소장품이 문자와 기록 자료라는 한계와 단점을 극복하고 체험형 전시에 대한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해 전문가와의 협업을 선택한 것이다.


이러한 소통의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하며, 그 결과는 관람객에게 다각적인 전시로 새롭게 표현될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 한글에 대한 애정을 담은 국내·외 여러 작가가 협업하여 문화예술이 동반 성장할 수 있는 좋은 모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립한글박물관과 전시기획 담당자, 참여 작가들은 열린 마음과 창의적인 사고, 도전정신이 있어 지금까지의 일들이 즐거웠다고 전한다.

그리고 우리는, 유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다양한 분야의 학자와 전문가들이 우리의 유물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인류의 역사와 문화에 다가갈 수 있는 그 무엇에 대한 열린 가능성이기에 더욱 그런 것이 아닐까. 이와 같은 맥락에서 요즘, 박물관의 수장고 개방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2011년 경주박물관(당시 이영훈 관장)에서는, 천마총과 황남대총 남분(南墳)의 1970년대 발굴 당시 유물 모두를 전시한 적이 있다. 일부 재현한 유물도 있었지만 많은 양의 토기를 적재한 모습과 그 규모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이후 2013년 국립나주박물관(당시 박중환 관장)이, 국립박물관에서는 처음으로 개방형 수장고와 유물의 보관, 관리 과정을 보여주게 된다. 2015년,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의 수장고 개방 특별전도 이와 같은 문화적 소통을 위한 노력이었을 것이다.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 발굴현장

신안해저선 발굴 40주년을 맞아 지난해부터 기획되었던 국립중앙박물관(이영훈 관장)의 ‘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 특별전이 약 6만여 명의 관람객 방문을 끝으로 지난달 40일간의 횡보를 마쳤다. 이번 전시는 3월 관장 취임 후, ‘개방과 협력의 박물관’을 지향하는 그의 철학을 담은 수장고 개방형 전시 중 가장 큰 규모였으며 성공적인 전시였다. 전시의 스토리 전개를 따라 살피다 보면 하루에 보기 어려운 분량의 유물이었다. 특히 중국과 일본과의 교류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실용성과 예술성을 갖춘 공예품이 개인적으로는 꽤 인상적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디지털 전시기술의 활용을 원하는 명민한 전시기획자와 유물의 진정성과 ‘관계의 협업’을 이해하는 천재들이 박물관으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깊은 땅 속에서 혹은 바닷속에서 잊힌 시간의 역사를 발굴하는 이들의 존재이다. 과학적인 분석과 기록들을 근거로 혹은 현장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 고고학자들은 박물관의 화려한 유물의 전시를 가능하게 하는 성실한 천재들이다. 그들의 과거에 대한 남다른 시선과 연구가 현재의 역사와 문화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박물관은 과거를 알 수 있는 열쇠이자, 현재를 이야기할 수 있는 자원이며,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상상력의 원천이라는 것을. 그래서 박물관은 각 분야의 성실한 천재들과 함께 다각화되고 있는 그 역할의 변화를 꿈꾸고 있는 중이다.



위 글은 2017년 한국박물관협회 기획칼럼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전시관으로 간 천재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