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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빛 Feb 13. 2021

쌀이 귀해서 흔한 굴, 김치 넣고
짠지떡이라고 불렀는지

인천시 백령도 짠지떡과 칼국수

  

  백령도의 하루는 짧다. 배가 들어오는 시간이면 소란스럽다가도 오후 5시 즘이면 오가는 사람이 없다. 이 시간에는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는다. 늦은 시간까지 낯선 손님을 기다려준 칼국수집. 그곳의 부엌 이야기가 재미있다.   



  백령도에서도 손꼽는 두메식당. 군인들이 지나칠 수 없는 방앗간이며 주민들이 추천하는 곳이다. 긴 부엌 끝에는 혼자 서서 일할 수 있는 만큼의 공간이 있다. 그곳에서 메밀반죽을 만들어 국수를 뽑고 만두를 빚는다. 칼 손잡이에는 메밀가루 반죽이 거북이 등처럼 말라붙어있다. 주인아주머니와 30년을 같이 늙었다. 얼마 전만 해도 칼국수의 면을 직접 썰었다. 힘 안 들이고 하던 일들이었는데 이제는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은 제면기로 면을 뽑는다. 


부엌 한 켠에는 겨우 혼자 서서 면을 뽑을 수 있는 작업공간이 있다.


  육지에는 나간 적이 없어.
여기는 그전에 두레박으로 물 길어 물지광 지고 다니고 그랬어.
그때 먹을 게 없으니까 메밀가루만 해서 뻣뻣하게 해 먹었지.
굴은 흔하게 바데(바다)에서 캐서 신김치 넣고 해 먹었지.
우리 자랄 때는 뜩(떡)도 못해 먹었어.
구경하기도 어려우니까 짠지 만들어서 그걸 뜩이라고 했는지도 몰라.
그때 너무 귀하니까 소리라도 흔하게 불러 먹으라고.
 
백령도에서 만난 원두막


  “육지에는 나간 적이 없어. 여기는 그전에 두레박으로 물 길어 물지광 지고 다니고 그랬어. 그때 먹을 게 없으니까 메밀가루만 해서 뻣뻣하게 해 먹었지. 굴은 흔하게 바데(바다)에서 캐서 신김치 넣고 해 먹었지. 우리 자랄 때는 뜩(떡)도 못해 먹었어. 쌀 없어서. 생일 때나 돼야 보리 끓여가지고 우에 쌀 한쪽으로 읁었다가 읃어먹었지. 쌀 없으면 노란 조 있잖아. 그거만 떠서 주고. 뜩이 어딨나? 구경하기도 어려우니까 짠지 만들어서 그걸 뜩이라고 했는지도 몰라. 그때 너무 귀하니까 소리라도 흔하게 불러 먹으라고.”


  짠지떡에는 백령도에서 흔한 자연산 굴이 들어있다. 그리고 까나리액젓으로 만든 깔끔한 김치가 그 맛을 좌우한다. 짠지떡을 처음 맛본 이들은 김치만두를 떠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짠지떡의 피는 만두처럼 얇지 않고 두껍고 쫀득하다. 두부나 야채 없이 굴과 삭은 김치 딱 두 가지로 맛을 낼 수 있다니 놀랍다. 게다가 김칫국물을 얼마나 손으로 짜 댔는지 굴이 있어도 무르지 않고 먹기에 알맞다.



  이곳 할머니들은 물 빠지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하늬 바다로 나간다. 바위의 굴을 호미로 톡톡 캐서 플라스틱 물병에 담아 칼국수 집에 판다. 그러니까 칼국수의 굴은 그녀들이 수확물인 셈이다. 배를 타고 오면서 식사를 걸렀을 것을 염려하여 칼국수에 일부러 굴을 많이 넣었다는 주인아주머니의 친절에 코끝이 찡해진다. 

  굴 향기 가득한 칼국수는 그냥 먹어도 좋은데 백령도의 까나리액젓이 유명하다고 하니, 반 숟가락을 떠서 국물에 섞어본다. 아니 이런! 갑자기 입천장에서 콩을 볶듯이 난리가 났다. 청양고추가 들어간 것이다. 이 맛을 다른 이들은 칼칼하고 개운한 맛이라고 하는 걸까?


  백령도에서 맛보아야 할 음식이 또 있다. 메밀냉면이다. 가을 하늘 아래 널려진 반짝이는 메밀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이곳 메밀냉면은 돼지 사골을 푹 고아 생강 물을 섞는다. 생강의 따듯한 기운이 메밀의 찬 기운과 만났다. 면을 풀기 전에 육수에 계란 노른자를 풀어 까나리액젓으로 간을 맞춘다. 이것이 백령도 냉면을 먹는 방법이다. 육지의 메밀냉면과는 다른 맛이다. 생강 향과 까나리액젓 향이 입안에서 지워지질 않는다.      



  하루에 두 번 육지의 발길이 닿는 곳, 백령도. 인천에서 쾌속선으로 4시간을 달려야 한다. 배를 탈 수 있는 날보다 그렇지 못한 날이 더 많다. 겨울이 되면 이곳은 겨울잠을 자듯 조용하다. 백령도에서 북한 옹진반도까지의 거리는 12km이다. 걸어서 3시간이 채 안 된다. 백령도는 울릉도보다 큰 섬이다. 인구도 오천칠백 명이 넘는다(‘17년 12월 기준). 전쟁 통에 터를 잡은 이들과 그들의 자손들이 산다. 그리고 군인들의 수가 그만큼 더 있다. 


   그곳을 나와 바그작 거리는 콩돌 해변을 밟아본다. 세월의 흔적이 섬을 이루고, 섬은 그들의 삶을 만들었다. 다행히 맑은 날에 백령도를 다녀왔다.      


[도움 주신 분]

두메칼국수 이영숙(여, 64세)씨는 31년째 칼국수와 짠지떡을 만들었다. 

그리고 메밀냉면으로 유명한 사곶냉면.     


* 위 글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지역n문화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s://ncms.nculture.org/food/story/1775?_ga=2.107501250.1351539288.1613098536-477163452.1613098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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