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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빛 Feb 12. 2021

가을이 오기 전에
몸에 좋은 박속밀국낙지탕

충청남도 태안 박속밀국낙지탕

     

  낙지에 대한 속담은 꽤 많은데 그중 오뉴월 낙지는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이 있다. 초여름에는 어린 낙지를 키우느라 어미낙지의 살이 빠지기 때문이다. 어린 낙지는 어려서 살이 없고 성체(成體) 낙지는 살이 빠져 먹을 게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낙지의 맛을 제대로 보려면 무더위가 지난 9월은 되어야 한다. 여름을 지낸 어린 낙지들은 9월이 되면 제법 살이 오르고 크기도 크다. 이때의 낙지를 중 낙지, 꽃낙지라고 하여 최고로 손꼽는다. 




  무더위로 온 몸이 스물 스물 녹아내릴 때 낙지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대로 가을이 오면 후회할 테니 말이다. 낙지로 유명한 전라도가 멀다면 서울에서 가까운 태안으로 달려도 좋다. 태안의 시내 중앙통 시장 뒤에는 박속에 낙지를 넣은 ‘박속밀국낙지탕’으로 유명한 식당이 있다. 주인아주머니가 시집와서 시작한 식당일이 그 자리에서 40년 되었다고 한다. 이름이 하도 길어 연유를 물었다.



  “박속은 박속이고 칼국수와 수제비를 넣으니
밀국이고 낙지는 낙지지.”

  그래서 이 모두를 합쳐 ‘박속밀국낙지탕’이 된 것이다. 명쾌한 작명이다. 처음부터 박을 넣은 것은 아니었다. 무와 감자를 넣어 탕을 끓인 적도 있었다. 그러나 박속이 낙지와 더 잘 어울리고 맛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줄곧 박속을 사용하고 있다.


  낙지는 달리 손질할 것이 없다고 한다. 갯벌에서 낙지를 잡기 때문에 커다란 물통이나 수족관에 바닷물을 담아 낙지를 풀어놓으면 저절로 해감(바닷물 따위에서 흙과 유기물이 썩어 생기는 냄새나는 찌꺼기)이 제거된다. 그래도 12시간은 지나야 안심하고 손님상에 낸다. 


  낙지는 태안 근처의 갯벌에서 낙지만 전문으로 잡는 이들이 가져온다. 몇 년 전만 해도 잘 잡는 사람들은 하루에 70마리, 80마리를 잡아왔다. 요즘은 예전만 못하다. 연세가 많아 돌아가신 분들도 있고 수확량이 줄어들어 잡는 사람도 덩달아 줄고 있다. 하루 종일 삽을 들고 갯벌을 파헤쳐서 열 마리도 못 잡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게다가 물때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날마다 잡을 수도 없는 형편이다. 그래서 낙지가 없는 날에는 ‘오늘은 낙지가 떨어졌습니다. 다음에 찾아주시면 더욱 정성껏 모시겠습니다.’라는 문구를 식당 앞에 걸어둔다. 따라서 낙지가 있는지 확인 전화를 하고 방문하는 것이 현명하다. 


  산낙지는 즉석에서 익혀야 제 맛이기에 주인아주머니께서 직접 다룬다. 파와 마늘, 청양고추, 네모지게 썬 박속이 동실 띄워진 육수가 맛을 찾는 동안 도마에 탕탕 쳐서 참기름에 버무린 산낙지를 먹어야 한다. 꼬물거리는 산낙지가 입안에 쩍쩍 붙어 떼어지질 않는다. 먹는 모양은 나도 상대방도 점잖지는 않다. 이 모양을 보며 한 말씀하신다. 


  “그러다 산낙지 다 죽어” 

  

잘게 잘라먹는 산낙지회



  드디어 머리 굵은 낙지가 끓는 육수에 들어갈 차례이다. 살려달라고 온 몸으로 요동치는 낙지를 팔팔 끓는 육수에 넣고 재빨리 뚜껑을 덮는다. 한편으로는 안쓰럽다. 그러면서도 입은 연실 기름 발린 산낙지를 오물거리고 있다. 핑크빛으로 낙지가 익으면 다리부터 잘라먹는다. 부드럽고 야들야들한 다리의 식감을 그대로 맛본 후 이 집의 특급 소스에 찍어 먹는다. 1년 동안 숙성된 집간장에 파와 초로 양념을 하여 손님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간장 소스이다. 다음으로 칼국수와 수제비를 넣고 낙지머리가 익을 무렵 건져먹으면 된다.    



  박은 촌에서 별도의 재배공간이 필요 없다. 올해는 힘이 들어 박을 심지 못했지만 그래도 쉽게 구할 수 있다. 오늘 아침만 해도 이웃에서 한 아름 되는 연두색 박을 들고 왔다. 말린 박은 질겨서 연한 박을 사용해야 한다. 아주머니는 뒤란에 박이 더 많다며 박을 모아놓은 곳으로 안내했다. 싱싱하고 수줍은 박들이다. 필자가 직접 들어보니 ‘끙’ 소리가 절로 났다. 그렇게 큰 박은 처음 보았다. 


낙지를 건져먹은 후에 칼국수와 수제비를 넣어 먹는다. 


푸짐한 계란말이


  예전에는 초가지붕마다 박이 있었고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시골 풍경을 그릴 때는 초가지붕에 둥근 박이 한 장면으로 그려졌고 보름달이 뜨면 달마중을 하는 박을 옹기종기 그렸다. 그런데 이젠 그 흔한 풍경도 찾기가 어렵다. 가을이 성큼 오기 전에 부모님을 모시고 단 걸음에 다시 와야겠다.     



[도움 주신 분]

원풍식당 목예균(여, 73세) 주인은

내가 못 먹는 것은 남 안 주고, 항상 같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 위 글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지역N문화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s://ncms.nculture.org/food/story/1779?_ga=2.8494453.1351539288.1613098536-477163452.1613098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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