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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빛 Feb 13. 2021

식구는 많고 쌀은 없을 때 양을 늘려먹던 곤드레나물밥

정선 곤드레나물밥 동박골

    

  굽이굽이 동강을 따라 반짝이는 햇빛이 눈부시다. 이십여 년 만이다. 1997년 영월댐 건설계획으로 조양강 주변과 인근 마을이 수몰 위기에 처했을 때가 있었다. 댐 건설을 앞둔 1995년 겨울, 조양강변 마을과 정선읍, 신동읍 마을조사를 진행했다. 그 당시 모든 길은 비포장이었고 어떤 마을은 강을 건너 다녀야 했다. 

  강가에는 줄을 당겨 움직일 수 있는 줄배가 있었다. 사람이 타는 배와 경운기 등 무거운 것을 나를 수 있는 배, 두 종류였다. 배가 건너편에 있으면 큰 소리로 사공을 불렀다. 강가 근처에 사는 사공은 밤이고 낮이고 배를 옮겨주었다. 불편한 교통수단이었지만 어찌 생각해보면 정이 있고 낭만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첩첩산중이라는 지리적 환경은 변화의 물살을 더디게 만들었다. 그 덕분에 마을의 민속과 설화, 민요, 신앙생활 등 연구 자료가 풍부히 남아 있었다. 댐이 건설되기 전에 삶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었던 것일까, 주민들은 귀찮은 질문에도 따듯하게 대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2000년 6월 5일, 세계 환경의 날에 영월댐 건설 계획은 백지화되었다. 



  요즘은 정선으로 가는 교통이 편리해졌다. 버스도 좋고 자가용으로 59번 국도를 타도 좋다. 필자는 동강을 따라 흔들거리는 버스를 탔다. 버스는 운치 있게 여울목에 놓인 섭다리(통나무와 진흙, 소나무 가지로 만들어 놓은 임시 다리)를 편히 볼 수 있게 해 준다.  

  정선은 산이 높고 깊어 밭농사를 주로 한다. 예전에는 아무리 잘 살아도 쌀 반 가마를 먹지 못했다고 할 만큼 쌀이 귀했다. 1970년대만 해도 옥수수 알로 죽을 해 먹었다. 그것조차 없는 봄이 되면 지천에 널린 봄나물로 죽을 끓여먹었다. 곤드레, 머위, 고비, 나물취, 참나물, 곰취 등 산나물은 많지만 그중 곤드레는 자주, 많이 먹어도 탈이 나거나 질리지 않았다. 그래서 정선 사람들은 곤드레나물에 대한 사연이 깊다.



  ‘한 치 뒷산 곤드레 딱쮜기(나물로 먹을 수 있는 다년생 식물)
나즈메(색시) 맘만 같으면
고금만(그것만) 뜯어먹어도 봄 살아나지’   


  위 노래는 정선읍 여탄리의 최귀연 할머니가 구성지게 불러주셨던 아라리이다. 현재 살아 계시다면 98세가 되셨을 것이다. 가까운 뒷산에는 곤드레나물이 많은데 색시 마음처럼 부드럽다면 배고픈 봄도 이겨낼 수 있다는 내용이다. 노랫말을 이해하고 듣다 보면 구성진 목소리에 삶의 애환이 담겨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곤드레는 아무 때나 뜯어먹을 수 있는 나물이 아니다. 5월에서 6월 사이가 적당하고 7월이 되면 쇠어버린다. 연하고 부드러운 곤드레를 뜯어다가 밥을 지을 때 그 위에 올려 뜸을 들이면 향긋한 곤드레나물밥이 된다.


  이금자(여, 64세)씨는 정선에서 하숙집을 하다가 곤드레나물밥 집을 시작하게 되었다. 

  “옛날에 배고플 때는 5월에 먹을 게 제일 없어서.
 곤드레밥을 많이 해 먹었어요.
쌀이 없고 배고플 때, 쌀 조금 넣고 나물 많이 넣고...
식구가 많으니까 양을 늘려서 해 먹은 거야.
곤드레는 꺾은 자리에 또 나고, 또 나고 그러죠.
요즘은 찾는 사람이 많아져서 산비탈에 재배를 많이 해요.
비탈에 난 곤드레나물이 제일 맛있어요.”


  곤드레는 나물 치고는 향이 그윽하고 연하다. 취나물처럼 향이 진하지 않고 털이 억세지도 않다.  찰진 흰쌀 위에 들기름으로 버무려진 곤드레나물 향기가 식욕을 자극한다. 돌솥에 누른밥을 남긴 후, 빈 그릇에 밥을 덜어 간장에 석석 비벼 본다. 잘 삶아진 곤드레나물에 한 쌈 먹어도 좋고 된장찌개를 떠먹어도 꿀꺽 넘어간다. 밥을 다 먹고 나서는 구수한 누룽지로 마무리하면 든든하다. 우리 어머니들이 나물을 보관할 때 그러셨던 것처럼 곤드레나물도 다음에 먹을 것을 말려 놓았다가 조리해도 괜찮다. 


더덕무침


  이모의 일손을 돕다가 가게를 이어받았다는 인상 좋은 조카님은 ‘얼큰한 고등어조림에 무 대신 곤드레 삶은 것을 넣어먹으면 맛이 좋다.’고 귀띔을 해준다. 정선 아리랑시장에서 곤드레나물을 사서 그렇게 요리를 해 보아야겠다.     



올챙이국수와 메밀국수


왼쪽부터 감자밥 멤밀전과 녹두전 그리고 강원도 옥수수



수수부꾸미와 메밀전병


[도움 주신 분]

정선 곤드레나물 밥집은 이금자(여, 63세) 이모가 창업주이다. 조카(59)와 조카며느리(오빠의 부인, 58)가 이모의 뒤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  

지금의 정선시장에는 예전의 낭만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구경거리와 먹거리가 많다.     


* 위 글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지역n문화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s://ncms.nculture.org/food/story/1689?_ga=2.213556692.1351539288.1613098536-477163452.1613098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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