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오동나무/ 1
인근 도시에서 꽤 유명하다는 카페에 놀러 갔다. 출입문까지 뻗어 나와 있는 밝은 기운에 이끌려 카페에 들어서니 진기한 장식품들이 많이 있었다. 욕심나는 장식품이 있어서 판매할 물건인지 알아보기 위해 주인장을 만났다. 나와 연배가 비슷한 여주인은 판매할 물건이 아니라면서도 친절하게, 파나마에서 가져왔다는 장식품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나도 이런 카페를 만들고 싶은 소망이 있다는 말을 건넸더니 카페를 운영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면서 적극적으로 추진해 보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미래에 카페 건물을 앉힐 땅에다 올여름에는 오동나무도 심어놓았다고 하니, 잘하실 것 같다는 덕담까지 건넸다.
그래서 내친김에, 바리스타 자격증도 취득해 놓았고 카페 이름도 지어놓았다고 자랑을 했다. “카페 이름을 뭐라고 지어놓은 줄 아세요?”라고 장난스럽게 물었더니, 눈빛을 반짝이면서 이름을 알려달란다. “카페 오동나무”라고 말하면서 내가 멋쩍게 웃자, 그녀도 눈을 마주치면서 까르르 따라 웃었다.
로스팅 기계와 파나마에서 가져온다는 원두에 대한 설명에 이어서 카페 수익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단체 손님이 들어왔다. 영업에 지장이 될까 봐서 서둘러 인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친절한 주인장도 만났고 카페 운영에 도움이 될 이야기도 나눈 즐거움에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한없이 가벼웠다.
나는 작은 수목원이 딸린 카페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지천명을 넘고부터, 그런 카페를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복심이 생겼었다. 서쪽하늘로 떨어지는 쇠잔한 석양처럼의 속절없는 나이가 들었을 때, 헛헛한 심신이 편히 쉴 수 있는 장소가 누구보다도 내게 절실히 필요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까지 항상 바쁘게 살았던 탓에 한가하게 놀아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아무도 나를 찾지도 부르지도 않을 한적한 곳을 찾아서, 두어 시간쯤 편안하게 쉬고 싶다는 바람이 내겐 늘 있었다.
그러나 무료한 날이나 엉킨 상념들이 힘들게 하는 날에 내 심신을 풀어놓을 수 있는 편안한 쉼터가 어디에도 없었다. 풍광 좋고, 주인장 좋고, 차의 맛까지 좋은 그런 카페를 찾기가 어려웠다. 차라리 내가 그러한 쉼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차차 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말이 씨가 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카페를 차리고 싶다는 말을 줄곧 하고 있다. 그들에게 카페를 차릴 것이라는 얘기를 하는 순간마다, 정말로 카페를 꼭 만들어야겠다는 의지를 다시금 곧추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올봄에는 ‘카페 오동나무’, 그곳의 메인 배경이 되어줄 오동나무를, 우선 심어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점 초기부터 오동나무가 쳐다볼만한 크기로 서있어야 되겠기에 묘목을 구하러 다녔다.
적당한 크기의 오동나무를 구하지 못하고 봄을 보냈는데, 여름 들판에서 진한 보라색 꽃이 가득 달린 오동나무를 만났다. 꽃의 색깔이 마음에 쏙 들어서 수형이 괜찮은 줄기를 서너 개 꺾어서 땅에 꽂아놓았다.
수형이 멋져서 기대했던 큰 줄기는 시들어버리고 재미 삼아 꽂아놓은 작은 줄기만 살아났다. 정식하기 위해 내년 식목일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서, 멋진 보라색 꽃이 카페의 배경이 되어 줄 수 있는 자리를 잡아서 다시 심었다.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 옮겨 심었기에 죽을까 봐 걱정했는데, 이틀간의 단비가 내린 후에는 작았던 잎사귀들이 훨씬 넓적해졌다. 줄기가 더 길어지게 밑동의 잎사귀들을 따주니 새잎들이 금방 생겼다.
한 뼘도 안 되는 오동나무에게 ‘카페 오동나무’의 중책을 맡겼다고, 오동나무가 스트레스받는 것 아니냐고 우스갯말을 건네는 지인도 있었다. 그러나 오동나무가 쑥쑥 자라나면 ‘카페 오동나무’에 대한 계획도 더 힘을 받을 생각에, 오동나무 쪽으로 시선만 돌려도 마음에 희열이 가득 찬다.
그런데 ‘카페 오동나무’를 만들겠다고 호기롭게 말은 하고 있지만, 속마음으로는 새로운 일을 벌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하다. 그래서 내 삶에 머물고 있는 좋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은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묘책들을 열심히 찾고 있다.
햇볕을 받고 잘 자란 꽃이 즐비한 출입문을 들어서면,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는 그곳에서, 세월에 덜미 잡히지 않고 잘 익은 노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쉬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카운터에는 하루가 무사히 지나갔음을 감사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따스하게 배웅하는 내가 앉아 있었으면 좋겠다.
아! 그때, 그 카페 뒷마당에는, 언젠가 봉황이 날아와서 앉는다는 오동나무가 호리 낭창 하게 서 있었으면 좋겠다. 그 오동나무에 연보랏빛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여름밤이면, 고혹적인 그 향기에 취해서 숙명으로 다가왔었던 사랑에 대해서 또는 아마도 사랑이었을지도 모를 어떤 마음에 대해서, 차근차근 이야기하며 추억에 젖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으면 좋겠다.
머지않은 어느 날, 연보랏빛 꽃이 바람에 살랑거리는 그 오동나무 아래에서 차 한 잔의 여유를 누리면서 편안하고 한가하게 살고 싶다. 그때 내 옆에는, 꽃과 음악과 따스한 마음들이 늘 함께 했으면 좋겠다. 햇빛에 반짝거리는 은발을 멋스럽게 쓸어 올리며, 열정으로 채웠던 기쁜 젊은 날을 추억하며, 기품 있게 함께 늙어갔으면 좋겠다. 단 한 번뿐인 인생, 아직도 완성되지 않는 내 삶을 위해서, 나는 지금도, 여전히 꿈꾸는 중이다.
쓸쓸하고 허전하고 외로울 나와 내 친구들의 노년을 따스한 온기로 감싸줄 수 있는 ‘카페 오동나무’, 그 꿈의 쉼터를 그리 멀리 않은 시간에 마련하기 위해, 오늘도 나는 열심히 현재를 가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