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글쓰기에 관한 고민들.
한동안 괜찮은 줄 알았던 쓸개는 잊을 만하면 꼭 말썽이다. 꼬박꼬박 챙겨먹었던 우루사를 한 끼 빼먹었다고 이리도 극성으로 뱃속에서 찔러댄다. 그럼 나는 그저 쑤시는 배를 부여잡으며 신음만 흘릴 뿐이다. 치킨을 먹는 게 아니었다고 뒤늦게 후회한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가스를 입으로 토해내고 나서야 통증은 가라앉았다. 휴대폰을 켜보니 새벽 한 시 사십구 분이다. 오늘은 꼭 일찍 자기로 했건만, 치킨 한 상자에 계획은 처절하게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나는 무너져가는 계획을 그저 흘겨볼 뿐이다. 그럴 작정이었다.
한 달 전 의사는 드디어 내게 결전의 날을 정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이 년 동안이나 약을 먹고도 변화가 없고 통증이 있다면 이제는 슬슬 잘라낼 생각을 해보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를 벌써 일 년이나 듣고 있다. 물론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내가 쌓아 올린 지분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이 사태의 일등공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평소보다 조금만 덜 먹어도 되겠다, 쓸개가 문제니까 기름진 것들만 좀 조심해서 먹으면 되겠다 하면서 약을 처방만 받고 먹지 않은 탓에 여기까지 온 것이 확실할 테니까.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그냥 쓸개가 말썽인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 결론을 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건 내 몸을 소홀히 다룬 내 죄를 무시하려는 시도이기에. 나는 오롯이 죄인이어야만 한다. 내 몸을 보전하지 못한 죄인. 쓸개를 고통받게 만든 죄인. 그러나 죄의 대가로 칼을 대는 게 무서웠기에 쓸개를 떼어내는 것으로 끝날 간단한 병을 지금까지 꾸역꾸역 달고 살아왔던 것이다~실은 칼로 배를 째는 것보다 배에 칼을 대는 비용이 무서워서 그럴 것이다.
글쓰기는 언제나 호기롭게 시작하고 초라하게 끝을 맺는다. 아니, 끝을 맺지도 못하고 볼썽사납게 넘어질 뿐이다. 언젠가 글을 쓸 거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도 단순히 끝조차 내지 못하는 글을 수없이 생산해 내는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활동을 어떻게든 좋게 포장하려는 내 눈물겨운 발버둥일 뿐이다. 지금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으나 언젠가는 세상을 울릴 글을 써낼 거라는 터무니없는 환상에 빠져 있을 뿐이다.
꿈은 크게 가져야 하지만 눈은 언제나 앞을 봐야 한다. 목표는 높게 잡아야 하지만 발은 언제나 땅을 디뎌야만 한다. 지금의 나는 눈가리개를 하고 마천루 난간에 서서 오른발을 들고 휘청거리며 서 있는 중이다.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마음의 외줄타기는 몸을 구속한다.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상을 좇는 마음에 몸은 이도 저도 못하고 그저 게으른 듯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이상을 바라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현실에 발붙이기는 더 힘들어진다. 그러니 아마도 나는, 이상을 안고 추락할 것이다.
그렇다면 추락하는 나는 무엇을 얻을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로 알 수 없지 않나. 나의 이상은 내 옆에서 같이 바들거리는 사람의 이상과는 다를 것이라서, 내가 얻는 것과 저 사람이 얻는 것이 같은 것일 리 만무하고, 무엇보다도 이상의 가장 큰 특징은 그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도 모르면서 그저 막연하게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설령 무언가를 얻는다고 해도 그것 자체가 아마 굉장히 설명하기 막연한 물건일 것이다. 그러니 나는 그 막연한 무언가를 얻고자 막연한 이상으로 몸을 내던지려는 중이다. 그러나 내가 무슨 엄청난 이상을 가지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내 글쓰기가 하루에 열 장 정도는 거뜬히 써 내려갈 수 있을 만한 힘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가장 얻고 싶은 것이며 내가 추구하는 최고의 이상이 아닐까 싶다. 내 이상이 너무나도 구체적이라고 느낀다면, 무엇이든 상대적이라는 말 빼고는 달리 할 말이 없다. 내게는 ‘하루에 열 장 정도 거뜬히 써 내려갈 수 있는 힘’은 권력과도 같은 막연한 그 무엇으로 느껴지니 막연한 것이 맞다.
그런데 이런 생각으로 하루를 보낼 시간에 소설이 될 만한 이야기 하나를 고민하는 게 내 글짓기에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 번씩은 꼬박꼬박 하게 된다. 그러니 어쩌면 나는 글을 쓰는 일을 그만둬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꾸준히 하다 보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고 또 자기 최면을 걸고서 오늘도 빈둥빈둥 백지를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