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케이스를 바꾸며

by 세필

휴대폰 케이스를 바꿨다. 빨간색에서 베이지색으로.

원색은 강렬한 만큼 빨리 질린다. 색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채도가 낮은 쪽이 보기가 편한 법이다. 아니, 채도의 문제가 아니다. 그저 원색이 너무 피곤할 뿐이다.

빨간색 케이스는 세상에서 빨간색이라고 불리는 수많은 색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정말로’ 빨간색이다. ‘정말로 빨간’ 색도 아니다. 그 색은 유일하게 빨간 빨간색이다. 그 빨강을 배경으로, 기호화된 태양이 한가운데에 태양색으로 프린트되어 있다. 그랬으면 좋았을 것이다. 태양은 태양색이 아니라 흰색이다. 아마도 ‘정말로’ 흰색일 것이다. 태양은 다음과 같은 문구의 대략적인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다. ‘KEEP CALM AND PRAISE THE SUN’. 정확히는 AND와 PRAISE의 사이에 끼여 있다. 어절을 기준으로 한다면 한가운데가 될 것이고, 철자를 기준으로 한다면 한가운데에서 반 글자 앞선 게 될 것이다. 어쨌든 대충 중간쯤이다.

이 케이스는 내가 인터넷에서 직접 주문을 의뢰한 물건이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태양을 찬미하라니 이집트 태양신이라도 섬기는 중이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그 태양신의 이름이 라인지 오시리스인지 아누비스인지 전혀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을 것이며, 따라서 혹여 나를 보고 사이비 교주를 태양으로 받들어 모시는 광신도로 간주할 위험성이 있는 어떤 질문들도 모두 거부할 것이다. 킵 캄으로 시작하는 문구는 한때 유행한 디자인일 뿐이며, 태양 찬미는 내가 매우 즐겼던 게임의 대표 유행어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니 문구와 문양은 아무런 맥락도 없이 그냥 그려 넣은 것일 뿐이다. 그렇지만 계속 마주하다 보니 정말로 태양 숭배 신앙을 믿어버릴 것 같아 곤란한 적도 가끔은 있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아무튼 나는 그 빨간 케이스가 질려서 베이지색 케이스로 바꿨다.
태양의 이미지는 뜨거운 만큼 빨리 증발한다. 이미지라는 것은 아무래도 드센 쪽보다 유들유들한 쪽이 보기가 편한 법이다.

베이지색 케이스는 사실 베이지색이 아니다. 그것은 살색이라고 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 그래, 그 케이스는 북유럽의 피가 듬뿍 섞인 슬라브 여인의 피부색과도 닮았다. 혹은 집에서 휴대폰만 가지고 뒹구는 동생의 뱃살 색과 닮았다. 아니면 길거리를 활보하는 여인들이 집 나오기 전에 화장대 앞에서 두드려 펴 바른 파우더의 색과 닮았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적어도 내 피부색과는 닮지 않았다. 그래서 베이지색은 손에 들 때마다 한층 더 밝은 베이지색이다.

베이지(라고 여기는) 색을 배경으로, 오직 그림 하나만이 케이스의 한가운데를 떡하니 잡아먹고 있다. 정사각형이 되려고 했으나 열 끗 차이로 실패한 직사각형의 테두리 안에는 고양이를 의인화한 캐릭터가 무언가를 뱉어내고 있다. 퉤에엣이라는 뜻을 가진 일본어가 으레 만화에서 종종 쓰이는 효과음 표현법으로 그려져 있다.

이 베이지색 케이스 역시 빨간색 케이스를 주문할 때 같이 만들어 달라고 한 것이다. 왜 하필 그 그림일까. 아니 하필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나는 세간에서 흔히들 말하는 ‘십덕’이었던 적이 있으며, ‘십덕’이 아님을 스스로 인정한 지금도 그 잔재만은 남아서 은연중에 그것을 내보이지 않고는 못 배기는 때가 종종 있다. 나는 십덕들의 물건이나 일반인에게 용인될 거라 여기는 수준의 그림을 골랐을 뿐이다. 그 그림은, 그 컷은 그러니까 나 나름의 위장이며 변명이다. 나는 십덕을 속에 품고 있으나 내놓고 다니지는 않는다, 이 그림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십덕들의 취향이 담긴 그림이 아니므로 나는 십덕이라 불릴 만한 놈이 아니다. 그런 치졸한 심정으로 어설프게 나를 감추면서 은근슬쩍 속살을 비치고픈 모순된 마음.

베이지색은 그런 면에서 내 마음의 색이다.
그래서 나는 빨간색 케이스를 휴대폰에서 분리해 베이지색 케이스를 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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