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06.
오늘 아침 1003호 사는 할아버지가 뛰어내렸다. 분명 소리가 났을 텐데 아무도 듣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꼭 아침나절이면 아파트 단지를 세 바퀴씩 돌았다. 언제나 세 바퀴였다. 일주일을 지켜보다 궁금해서 물었다. 세 바퀴를 맞춰서 도시는 이유가 있나요. 할아버지는 말했다.
그쯤 도니께 나쁜 생각이 사라져.
정말로 그런가 싶어서 할아버지보다 이른 시간에 세 바퀴를 돌아봤는데 나한테는 맞지 않았다. 사람마다 맞는 숫자가 있을 것이다 하고 하루 돌고 말았다.
아무튼 매일을 꼬박꼬박 세 바퀴씩 돌던 할아버지는 요 며칠 새 통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나가는 아줌마들 이야기로는 안사람이 늘그막에 바람이 들어서 돈백만을 들고 날랐다고 한다. 할아버지 같은 사람한테도 안사람이 있긴 했구나, 그리 좋은 형편도 아닌 것 같았는데 그래도 먹고 튈 만한 돈은 모아놓을 정도로 살긴 살았었나 보구나 하고 대수롭잖게 넘겼다. 저잣거리 뜬소문이야 하루 이틀 듣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걸러야지 하고 그날은 아파트 단지를 할아버지가 돌던 세 바퀴보다 두 바퀴 정도를 더 돌았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그랬더니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는 게 참 상쾌했다. 할아버지가 자취를 감춘 첫날에 나는 아파트 단지를 다섯 바퀴 도는 습관을 만들었다.
아침 하늘 먹구름 가득 낀 어제,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자유낙하를 감행하기 하루 전날, 아파트 단지 다섯 바퀴 돌려고 현관문을 나섰다가 할아버지를 마주쳤다. 할아버지는 오늘도 딱 세 바퀴만 돌았다며 웃었다.
며칠 안 보이시더니 오늘은 웬일로.
비꼼으로 들릴 수 있는 말을 생각 없이 뱉었다. 할아버지는 웃기만 했다.
이제 얼추 정리가 다 된 것 같으이.
무슨 정리 말씀입니까.
뭐긴 뭐여, 내가 왜 여그를 세 바꾸씩이나 도는지 저번에 말 안 혔는가.
아, 할아버지는 그때 이미 결단을 내리신 모양이었다.
난 아무것도 모르고 -어쩌면 아무것도 모른 체하고 - 멍청한 질문을 했다.
어떻게, 잘 된 것 같습니까.
그려, 인자 속이 쬐에까 후련허네. 인제야 맘 놓고 돌아가도 쓰겄어.
돌아가실 날짜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말하면 손 탄다고. 그래도 최대한 빨리 갈 생각이라고 했다. 만날 때마다 할아버지는 고향 얘기를 그렇게 많이 했다. 언젠가 반드시 흙냄새 가득한 그곳으로 돌아가겠다고도 했다.
할아버지는 정말로 고향으로 돌아가셨다.
그늘져 축축한 흙내음에 붉은 물이 든 것이 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