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천변

by 세필

천변 산책길은 새벽녘이 가장 어둡다.

해는 아직 뜨지도 않고, 가로등은 시간을 잘못 맞춘 탓에 일찍 꺼져버려서, 불빛이라고는 그저 드문드문 지나가는 새벽 출근차의 헤드라이트뿐.

강물에 반사된 그 조금의 빛에 의지하며 노인은 얇은 다리를 하나 둘 제법 규칙적으로 옮겼다.

노인의 눈동자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았다.


강물이 졸졸대는 소리를 따라 걷는 노인은 그 소리가 유독 거슬렸다. 평소에는 귀마개나 이어폰을 꽂았는데, 오늘은 하필 옷을 잘못 바꿔 입어서 주머니에 그것이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산책길 초입에서 한참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고문과도 같은 소리를 감내하며 걸었다.


소리는 버드나무에 가까워질수록 커졌다. 노인은 버드나무 아래 벤치에 걸터앉았다. 한겨울, 해뜨기 전 강가에는 칼바람이 분다. 노인은 콧방울이 얼고 볼살이 찢기는데도 기어이 외투를 한 꺼풀 벗었다. 양키스 야구모자마저 벗었다. 아직은 빠질 날이 조금 남은 파뿌리들이 머릿살을 겨우 붙잡아서 날아가려는 걸 겨우 버텼다. 허옇게 센 머리카락이 버들가지 휘청이는 모습을 따라 휘청였다.


한참을 거슬리게 하던 물소리가 어느덧 잠잠해졌다. 노인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바람 지나는 소리와 버들잎 부딪쳐 바스락대는 소리가 물소리를 죄다 묻어버린 탓이다. 노인은 눈을 감았다. 날카로운 강바람, 따끔따끔한 버들잎의 찰음, 그 속에서 노인은 물줄기를 찾아 헤맸다. 그러나 노인은 찾지 못했다. 노인은 얼어버린 호수 하나, 바닥까지 얼어버린 작은 호수밖에 찾지 못했다. 그 얼음 속에 묻힌 그리운 얼굴 -


헉 소리를 내며 노인이 눈을 떴다. 바람은 잠잠해졌고 물비늘이 잘게 반짝였고 버들잎이 고대비로 빛났다. 노인은 벤치에서 일어났다. 양키스 모자를 주워 쓰고 대학 점퍼를 다시 걸쳤다. 그리고 노인은 물소리를 피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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