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찾는 부모님 댁에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두 권이나 있었다.
하나는 낡았고 하나는 새것이겠지 싶어 책꽂이에 꽂혀 있던 하나를 뽑아다 선반 위에 나온 것과 견줘 봤는데 웬걸, 둘이 별반 다른 게 없다. 표지만 봐서는 둘 다 세월의 풍파를 적당히 맞은 모습, 그러니까 흰색 인쇄용지가 두세 달 정도 햇빛을 받아 누레진 모습이다. 그러나 책등을 보니 책꽂이에 있던 놈이 어째 책 제목의 뻘건 글자가 색깔이 더 바랬다. 혹시나 해서 위아래 옆면을 이리저리 뜯어보니 확실히 선반 위의 것보다 나이를 먹은 티가 났다. 그래서 이 책꽂이 놈이 분명 더 오래전부터 있던 놈이겠구나 싶어 발행 일자를 확인해보니 108쇄라고 한다. 그런데 선반 위에 놓인, 상대적으로 더 반반하게 생긴 것은 75쇄로, 발행 일자가 되려 더 오래된 것이 아닌가.
어찌 이럴 수가 있나 싶어 잠깐 멍하니 있다 나름의 추리를 해봤다. 이 집이 지어진 지가 얼마 되지 않았을 적에는 이 책들의 터가 정해진 것이 없어서 몇 권은 뒷집 창고에 있었고 몇 권은 어떻게 눈에 띄어서 붙박이장 한켠에 뉘어놓은 일이 있었는데, 108쇄는 창고에서 몇 개월을 습기를 머금고 먼지에 묻혀 지냈으나 75쇄는 운 좋게도 적당히 선선한 곳에서 쾌적하게 누워있었던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사물을 다루는 일과 사람 몸을 쓰는 일이 별반 다르지가 않다. 똑같은 나이 오십이라도 불구덩이 속에서 힘깨나 쓰시는 분은 얼굴이 본래 나이보다 열댓은 더 먹어 보이는데 사무실 책상머리에서 보고서에 결재 도장 찍는 관공서 과장님은 흰머리만 구레나룻에서 둥실둥실 떠다니는 것 말고는 오히려 본래 나이보다 두세 살은 어려 보인다. 그러나 책은 늙건 젊건 내용물은 크게 바뀌는 것이 없는데 사람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내용물이 딴판으로 변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사람의 액면가는 내면의 고통을 그대로 반영하게 되어 있나 보다.
앞으로 십 년 후에 내 액면가는 얼마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