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 늦은 점심

by 세필

매일 점심마다 들르는 식당은 웬일로 손님이 없었다. 시계를 보니 아니나다를까 한 시 반이 조금 넘었다. 식당이라는 곳은 한산할 때와 북적일 때가 나름 정확하게 나뉘어서 좋다. 조용하고 느긋하게 먹고 싶으면 다른 사람들의 점심시간보다 그저 몇십 분만 늦게 오면 된다. 물론 아무나 할 수는 없다. 보통 사람들의 점심시간은 으레 고정되어 있으니. 사소하다면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식당 직원들이 밥 먹는 시간과 겹치는 일이 많다는 것일까. 그러나 돈을 내는 입장에서는 굳이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적당히 구석진 곳을 잡아 앉았다. 종업원이 컵과 물통을 건네주었다. 옆에 선 메뉴판을 펼쳐 훑으면서 물을 따랐다. 돈가스, 짬뽕, 국수, 그리고 이것저것. 메뉴판만 깔짝거리기를 오 분 정도 하다가 결국엔 메뉴판에 없는 늘 먹던 제육덮밥을 주문했다.


왜 메뉴판에 있는 음식들은 하나같이 맛있어 보이고 또 하나같이 맛없어 보이는지 모르겠다. 따져보면 두 경우 모두 동기는 같을 것이다. 어쨌든 뭐라도 속에 집어넣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 때문이겠지. 맛있어 보인다느니 맛없어 보인다느니 하는 건 그냥 그 날 기분이 어떤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일 뿐.


까만 솥 안에 갓 요리된 제육덮밥이 들어 있다. 종업원은 솥을 내 앞에 놓고 직원들이 마주 앉은 곳으로 돌아가 젓가락을 들었다. 이어 숟가락이 바삐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맞춰서 나도 한껏 밥을 비볐다. 빨간 양념이 뒤집어지고 흩어지면서 밥알을 하나씩 빨갛게 코팅한다. 상추는 숨이 죽고 양파는 살짝 달게 익는다. 김가루는 어디 한 곳에 뭉치지 못하고 밥알 하나씩 붙잡고서 서서히 거리를 벌린다.


다 비벼진 제육덮밥 한 숟갈 듬뿍 퍼서 입안에 넣었다. 밥알마다 톡톡 터지는 매콤달콤함, 그리고 찹찹 부드럽게 씹히는 돼지고기.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 생각한다. 인생이 딱 제육덮밥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질리지 않는 삶. 또 생각한다. 그런 게 가능하기나 할까. 어금니에 낀 밥알을 혀로 떼어내 목으로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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