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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며화려한 Dec 10. 2019

드디어 재입고!- 독립서점 노말 에이

쓰는 생활

 누군가를 동행한 외출만 간간히 하는 생활을 하다가 이래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혼자만의 외출을 자유롭게 감행하던 예전의 내 모습이 그립기도 했고 이러다가는 증상의 진전이 없이 제자리걸음만 할 뿐이라는 두려움이 앞섰다. 조만간 혼자 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할 때 즈음 드디어 재입고 요청이 들어왔다.

 재입고는 처음은 아니다. 얼마 전 서점 오 킬로 북스에 들렀을 때도 재입고 차 갔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우리가 먼저 재입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번은 다르다. 서점에서 먼저 재입고 요청이 들어왔다. 서점으로부터 먼저 받아보는 메일은 언제나 설렌다. 무엇 무엇해주실 수 있으신가요로 끝나는 말들도 마음을 움직거리게 한다. 누구한테 자랑스럽게 말할 수는 없지만 나 혼자 느껴지는 대견함. 아직 독립작가 초보의 마음은 작은 것에도 일희일비하고 있다.

 방문을 해서 입고를 하겠습니다의 내용을 적은 답장을 보내면서 '다정'없이 나 혼자 움직일 첫 외출 계획을 감행한다. 기차를 타고 그깟 삼십 분 돌다 보면 도착하는 서울행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이겠냐마는 약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요즘의 나에게는 그랬다. 나가서 불안하지 않도록 가방에 약과 사탕 몇 알을 챙긴다. 요즘에는 없는 속 쓰림 증상에도 겁이나 먹지도 않을 약도 앞주머니에 챙겨 넣는다. 걱정과 불안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처럼 잠시의 외출을 위해 최상의 준비를 마친 후 가는 경로를 찾아본다. 다행히 역과 멀지 않은 위치. 서점에 들렀다가 잠시 다른 곳도 들러볼까 상상을 해보았지만 역시 서점만 다녀오는 것이 나을 듯했다.

 을지로 3가 역에 도착해서 출구를 찾아 나오니 상가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간판들 사이에서 역시 독립서점의 작은 간판을 찾기란 힘들었다. 분명히 네비가 알려주는 대로 걸어갔고 출구에서 78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라고 하지만 지나간 곳을 또 지나가 보아도 간판은 보이지 않았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차근차근히 가다 보니 욕실용품 가게 간판 사이로 조그마한 간판이 보였다. 뚫어져라 보고 다니는 나를 욕실용품 사장님이 손님인가 싶어 유심히 바라본다.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수전들과 수도꼭지들 사이에 가려있던 작은 간판 노말 에이.

 이름 따라 인생이 나아간다거나 노래 제목에 따라 가수의 삶이 바뀐다거나 혹은 유행어에 따라 개그맨의 앞날이 따라간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상호에 따라 주인의 얼굴도 따라갈 수 있는 걸까. 서점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조용한 노래 사이로 차분한 남녀의 얼굴이 보인다. 키 큰 남자와 그보다는 약간 작은 여자. 둘 다 단정한 체격에 단정한 얼굴. 평범한 표정을 지녔다. 서점의 이름과 너무나 닮은 둘을 보고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재입고를 하러 왔다고 말했다. 책을 드리고 역시나 말주변이 없는 나는 어색하게 서점 안을 둘러보고 있을 뿐이다. 여자 사장님이 어디서 왔는지를 물었다. 수원에서 왔다니 멀리서 오셨다는 말과 함께 다시 침묵이 감돈다. 저번에 드린 스티커는 받으셨나요. 네(벌써 핸드폰에 붙여 놨는걸요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서가의 분위기도 차분하다.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사장님의 목소리를 간간히 들으며 책들을 둘러보았다. 일러스트 책이 많은 것으로 알고 방문했는데 민음사의 책들이 꽤 많았던 곳. 그러고 보니 두 사장님의 인상도 왠지 민음사 에디터 같은 분위기도 나고. 별별 잡생각들이 떠오른다. 재입고에 감사드리는 마음을 매출로서 보답해드리고 싶어 한 권 한 권 들여다보았다.

 독립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에는 주로 에세이집을 사게 된다. 아마도 요즘 쓰는 글이 에세이이기 때문에 독서도 하고 나만의 교과서 같은 역할이 되어주기를 바라면서 고르는 마음도 있다. 하지만 서점의 분위기나 그 날의 기분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하는데 오늘이 그랬다. 시집을 하나 골랐고 엄마는 페미니스트라는 책과 육아를 하는 엄마들이 모여 만든 잡지를 한 권 골랐다. 잡지의 맨 앞에 입고를 감사드리는 쪽지가 붙어있다. 나도 저런 문구를 곁들여 입고를 했어야 했나 하다가 에이 이제 와서 뭐 하는 마음으로 계산대에 책을 놓았다. 누가 보아도 엄마인 것 같은 오늘의 책 선정. 담백한 인사만 나눈 채 문을 닫고 나와 서점의 긴 계단을 내려왔다.

 다른 작가님들을 보면 친하게 지내는 서점 사장님들도 계시고 그냥 들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누기도 하신다. 가끔 서점 사장님 대신 일일 사장님의 역할을 해주시기도 하고. 그런 것들을 보면서 내가 꿈꾼 독립작가의 모습도 그와 다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생겨먹은 것은 어찌할 수가 없는지 나는 아직 먼저 다가가는 법을 터득하지 못한 나이만 먹은 아줌마이다. 어색한 인사와 가져간 책을 두고는 안녕히 계시라는 말만 하고 돌아서는. 뭐 저런 사람들이 있으면 나 같은 사람 없으라는 법 있나 싶지만 나만 이런가 하는 생각은 꼭 따라온다.

 오늘의 목표 재입고만 마치고 얼른 돌아서자 집에 예상보다 일찍 돌아왔다. 목적지만 찍고 다녀왔냐고 웃는 남편에게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저 책을 두러 먼길을 후다닥 다녀온 것 같은 허무함에. 하지만 주말의 그 많은 인파 속에서 전철을 타고 기차로 돌아온 나에게 오늘의 성과는 썩 괜찮았다. 숨이 막혔던 기억이 있어 두려운 서울역도 아무 일 없이 지나쳐왔다. 그럼 된 거지. 읽을 책도 세권이나 생겼고. 사는 게 그렇지 않을까. 별거 아닌 성과를 거두며 작은 것에 기뻐하며 사는 것. 적어도 독립작가로 첫 발을 떼고 있는 나의 삶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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