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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며화려한 Dec 10. 2019

나의 첫 독립출판서점- 천천히 스미는

쓰는 생활

 오랫동안 책을 읽지 않고 지냈던 나에게 독립출판물은 생소했다. 누군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영원히 몰랐을 세계. 집에서도 아이를 키우며 핸드폰으로 글을 쓸 수 있다는 어느 작가의 경험과 여러 가지 형태로 '이런 것도 책이 될 수 있어?'라는 질문들을 던져주게 한 특이한 출판물들은 나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알려주었다. 일단 하면 되지 하는 용기 같은 것도. 그런 세상이 있다는 것은 나와 함께 매일의 메일을 만든 '다정'이 알려주었다.

 처음 독립서점을 찾아간 곳은 내가 다니는 요가원과 가깝게 위치하고 있는 곳이었다. 추운 겨울날 요가를 마치고 얼마 안 되는 거리에서 헤매다가 겨우 찾았던 작은 간판. 독립서점들은 작은 간판들을 가지고 있어 유심히 찾아봐야 한다. 마치 보물찾기 하듯. 이렇게 헤매는 것을 보면 초등학교 시절 보물 찾기를 못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옆 건물에서 식사를 하시던 사장님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소리에 급하게 뛰어오신다. 죄송한 마음에 몸이 굳었지만 천천히 책을 찾았고 에세이집 하나와 티코스터 두 장을 샀었다. 그리고 몇 달 뒤 그 사장님은 남편과 함께 강원도로 이사를 가셨다.

 사장님이 이사를 가셨다고 해서 서점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곳에는 젊은 여자 사장님이 들어오셨고 '천천히 스미는'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오래된 건물에 투박한 철제 손잡이 문을 가진 서점은 예전보다 더욱 작은 입간판이 세워졌다. 몇 달 후 사장님이 바뀌었다는 이야기에 다시 들른 그곳은 마침 해가지고 있던 일요일 오후였다. 책을 고르고 커피를 한 잔 마셨고 내부가 주는 따스함에 지쳐있던 마음을 좀 녹이다가 집에 돌아왔었다. 서점 안은 그대로 밝았는데 해는 이미 기울어 집에 가는 길은 깜깜했다.

 그 이후 나는 그곳을 몇 번 더 들렀다. 원데이 수업도 하고. 소설 쓰기 원데이 수업을 듣고는 짧은 소설을 쓰는 재미에 눈을 뜨기도 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책을 내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해 준 것도 그곳이었다. 독립출판물이 나오고 떨리는 마음으로 입고 신청을 했을 때는 예상과 달리 답장이 제일 늦게 왔다. 사장님과 안면이 있어서 입고를 해주시겠지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분위기가 다르면 그럴 수도 있다고 마음먹기에는 난 조금 소심한 성격이었다. 왜 대답이 없으시지 하다가 체념을 하고 있을 때 즈음 답장이 왔다. 메일을 늦게 확인하셨다며 보낸 입고 요청 메일. 적은 양이었지만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갔었다.

 '천천히 스미는'사장님은 책이 팔릴 때마다 입금을 해주셨다. 입고한 책이 다 팔렸을 때 나는 재입고는 안 하실 거라고 생각했었다. 독립 서적은 계속 생겨나고 있고 그곳도 새로운 책들을 입고해야 하니까. 그런데 예상외로 재입고 요청 메일이 들어왔다. 책을 들고 바로 달려갔다. 그 날은 눈이 올지도 모를 만큼 흐린 구름이 하늘에 빼곡하게 깔려있던 날이었다. 12월을 맞은 서점은 크리스마스 전구가 창문에서 반짝거리며 달려있었고 크리스마스트리 모양의 초가 있고 앙증맞은 굿즈들이 조금 늘어나 있었다. 그곳의 가장 넓은 나무 책상 위에는 새로 들어온 신간들이 빼곡히 쌓여있었다.

 서점 사장님은 작가가 되어 돌아온 나를 이제는 소영 님이 아닌 '작가님'이라고 불러주신다. 처음에는 기분이 조금 낯간지럽고 이상했지만(내가 아직 들으면 안 될 것 같은 호칭이랄까) 조금은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이 서점에서 모임을 할 때마다 나는 작가를 꿈꾼다고 말을 했었고 별거 아닌 작은 출판물을 '다정'과 함께 열심히 만들었다. 그랬던 시간들이 스쳐가며 약간의 감동이 마음에 스밀 때쯤 사장님이 말을 걸었다. 요즘 바쁘시냐고. 아니요, 그럴 리가요. 어떤 분들이 책을 사 가셨냐는 질문에 20대, 30대 여자분들이라는 이야기는 매우 기뻤다. 책을 사가신 분이 읽은 후 와서 좋았다는 이야기를 해주시길래 재입고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셨다고. 누군지 모르는 그분께 마음속으로 연신 절을 올렸다.

 얼마 전 헬로 인디북스에서 주최한 모임에 다정과 함께 갔을 때 서점에 들를 빈손으로 가지 않는다는 것을 배운 나는 재입고 방문을 하면서 무얼 사가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먹을 걸 사갈까. 아님 어떤 것이 좋을까. 하지만 돈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것을 살면서 체감하는 아줌마인 나는 역시 매출을 올려드리자로 결정했고 그곳에서 책 몇 권과 실반지를 샀다. 베이컨, 계란 프라이 등이 그려진 귀여운 인쇄소 스티커도. 책을 포장한 종이봉투의 질감이 무척이나 손끝에 부드러웠다. 바삭바삭한 갈색 봉투는 무언가 뿌듯한 마음을 준다.

 서점을 나서고 흐린 하늘을 보며 걷다가 마트에서 세일하는 고등어와 홍합을 샀다. 눈이 올 것 같은 저녁에는 홍합탕이 딱이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향한다. 집에도 읽을 책이 많지만 읽어야 할 것들이 이렇게 또 늘어났다. 그래서인가 마음이 풍요롭다. 아니면 책을 재밌게 읽어준 분 들 덕분에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살 것이 없어도 가끔 그 서점에 들러 커피라도 한 잔 하고 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저녁 준비 시간이 가까워지는데 마음이 이렇게 가벼운 저녁은 오늘이 처음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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