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만 적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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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카메라는 찍은 사진을 당장 확인할 수 없다.
재밌는 건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 가는 대로 편하게 툭툭 찍고 다녔다.
필름 한통에 사진을 24장 밖에 찍을 수 없기 때문에
되려 '사진을 잘 찍고 싶다'는 욕심보다 순간순간 마음의 울림을 기록할 수 있었다.
디지털카메라는 '사진을 잘 찍고 싶다'는 욕구를 현장에서 바로 해결해 준다.
디카였으면 저 사진 한 장을 위해 장미 근처를 맴돌며 100장은 찍었을 거다.
한 장 한 장 찍으면서 결과가 어떻게 나왔나 일일이 확인하고 마음에 들 때까지 셔터를 눌렀을 거다.
집에 오면 펼쳐지는 수백 장의 똑같은 사진은 덤이다.
멋진 결과물은 나오겠지만 생각만 해도 너무 피곤하다.
사진을 잘 찍지 않는 요즘은 계절과 주변의 변화에 매우 둔감하다.
장미를 봐도 '와, 이쁘다'하고 그냥 갈 길을 재촉할 뿐이다.
애정을 갖고 꽃을 바라보던 예전 내 모습이 참 낯설다.
다시 한번 장미의 미소를 들여다보는 마음을 내어볼까 하는데
필름이 너무 비싸져서 필카는 이제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핸드폰 카메라는 요즘 사진이 아무리 잘 나온다 해도 깊은 맛이 부족하다.
음식으로 치면 인공조미료로 맛을 낸 느낌이다.
디카는 매우 크고 무거워 갖고 다니기 참 번거롭고 사람을 집착의 화신으로 만든다.
포토샵을 통한 보정의 유혹은 한번 빠지면 폐인이 된다.
다시 한번 순수해지고 싶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을 알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