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남우 Aug 30. 2022

지혜로운 젊은이

낯선 이와의 대화에서 깨달은 가치

  두 번의 만남 동안 네 시간의 대화를 나눴다. 혼자 서점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옆자리에 앉더니 "무슨 책 읽는지 물어봐도 돼요?"라고 말을 건넨 게 첫 만남이라,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이 상황이 신천지 혹은 다단계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내게 말을 건 진짜 의도가 무엇이었건 간에, 그가 꺼낸 주제들은 내가 좋아하는 유의 것들ㅡ삶에 관한 사유를 요구하는ㅡ이었기에 나름 특별한 기억이 되었다.






  그는 대뜸 내게 주변인들에게 바라는 게 있냐고 물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까 이 질문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나는 그들이 그들의 삶에서 어떻게 행동하기를 바라는가.


질문을 들은 당시에 나는 무조건 후자로 생각했다.

저도 모르게 “난 ~를 할 때 진짜 행복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면 길 가다 갑자기 무릎을 굽히고 쪼그려 앉더니 느릿느릿 지나가는 한 생명체를 발견하곤 “애벌레다. 난 이렇게 작은 생명체를 발견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라고 말하는 상황 말이다. "전 사람들과 말하는 게 너무 좋아요. 발표는 제가 유일하게 자신 있어하는 거예요."라고 말한 친구도 떠오른다. 

  나는 그러한 말을 들을 때마다 그들이 자신이 방금 한 말을 절대 무시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행복은 이상에 있지 않다. 현실에 있다. 그런데 마치 이룰 수 없는 이상에 있는 것처럼 자신을 즐겁게 만드는 일을 그냥 넘겨버리는 게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스스로 '이게 행복이다', '내가 기뻐하는 일이다'라고 느낀 걸 절대 무시하지 않았으면 한다. 설령 지금은 외면하더라도 그것들은 절대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의 친할머니는 103세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장수하셨네요."

  "장수의 의미가 뭘까요."

  누군가의 죽음을 듣고 애도를 표하기에 앞서  103세라는 나이에만 초점을 맞춘 것 같아 갑자기 후회가 되었다. 

  

  오래 사는 건 기쁜 일일까. 살아있어서 기쁘다는 건 뭘까. 가장 어려우면서도 행복한 결말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거겠지? 

  우리 친할아버지는 작년 9월에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담배를 많이 피우셨다. 치료 및 안식을 목적으로 노양원에 계시다 호흡기에 호스를 꽂으셨다. 의사는 엄마와 이모들에게 추가 수술을 할 것이냐고 물으면서 수술을 하면 할아버지가 1주 내지는 2주 정도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했다. 수술은 할아버지의 콧속을 파서 더 깊게 호스를 연결하는 것이었다. 

  의사는 이미 지금도 못 움직이는 채로 고통만 느끼고 있는 할아버지에겐 수술이 더한 고통이 될 것이다, 하지만 수술을 하면 1주에서 2주 정도는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엄마는 내 생각을 물었다. 마침 당시 읽고 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죽음>이라는 책이 답변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할아버지가 '살아있어서 행복하다'라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살아있어서 행복하다는 건 두 발로 잔디를 밟는다던가, 자식과 소통을 한다던가, '내 힘으로' 무언가를 하며 하루를 사는 거지 않을까요. 그런데 지금 할아버지는 누워서 손가락만 움직이면서 온몸으로 전해지는 고통을 끊임없이 느끼고 계시죠. 이미 충분히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콧속을 더 깎아서 생명을 연장한다고 한들, 의사의 말대로 생명이 최대 14일 연장된다고 한들, 할아버지가 그걸 원하실지 의문이에요. '생명 14일 연장'은 기록이 가지는 의미에 불과한 것 같아요. 그건 할아버지의 행복한 나날, 할아버지가 스스로 살아있음에 감사해 하는 나날이 연장됐다고 보긴 어렵지 않을까요. 

  나는 오래 사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우리의 신체는 늙을수록 쇠약해지고 힘을 다하기에, 한계에 부딪쳐 하고 싶은 것들이 제한되는 순간을 난 견디지 못할 것 같다.


  '왜 힘은 젊었을 때만 있고 지혜는 늙어야만 생기는 것일까.' 이 문장을 읽자마자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지혜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우린 점점 건강함과 멀어진다. 한 걸음 두 걸음 점점 멀어지다 더이상 내 신체적 능력만으론 부족한 한계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지혜는 세월을 초월할 수 있다고 믿는다. 노력만 한다면 충분히 젊음과 동시에 누릴 수 있을 것만 같다. 지혜는 쇠약해지지 않는다. 더 깊어지고 진해진다. 이제부터 내 꿈은 '지혜로운 젊은이'다.  깊이 사유하고 보고 느끼고, 스스로를 낮추며 배움을 멈추지 않는 지혜로운 젊은이가 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너를 보는 나를 보는 누군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