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물건1] 카메라

우리의 조바심을 위한 순간→영원 변환기

by 파인피네
KakaoTalk_20180117_190433237.jpg 중국 하이난 해변의 해질녘 찰나

사람들은 인생의 소중한 순간에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찰나의 순간이 찰칵, 하는 잠시의 소음과 동시에 영원으로 남는다. 돌잔치, 입학식, 졸업식, 결혼식 등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하는 모든 순간들에는 카메라가 빠지지 않는다. 사진으로 남겨야만, 이 순간이 소중한 순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듯이. 카메라는 ‘이 순간은 지나보내지 않고 남길만한 가치가 있는 순간이다’라는 의미의 도장을 삶의 순간순간들에 내려찍는다. 사진을 찍는 것은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다. 현재의 순간을 흘려보낼 수가 없어서, 지금 이 순간이 희미한 과거가 될 미래의 어느 날을 위해 사진을 남긴다. 그런데 가끔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옛날의 일을 떠올릴 때면, 사진으로 남기지 않은 것이 아쉽다가도 왠지 조금은 다행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너무나도 또렷한 시각적인 증거 없이 그 순간의 공기, 들리던 소리, 분위기 등 조각조각으로 남은 추억의 증거들로 그 장면의 퍼즐을 흐릿하게나마 맞추는 일이 주는 행복감도 크기 때문이다. 과거의 추억이 또렷하게 내 눈앞에 남지 않았더라도 사람은 오감을 동원해 그때의 기억을 더듬는다. 시간에 따른 왜곡과 흐릿함은 추억의 특권이다.


카메라는 가끔 현재의 순간을 맨눈으로 누릴 여유를 잃게 만들기도 한다. 누구나 순간이 지나갈까 조바심을 내며 카메라 렌즈를 눈에 가져다 댄 경험이 있다. 렌즈에 담긴 테두리 진 시야를 통해 현재를 움켜쥐려 애쓰지만 기대와 달리 사진은 그 모든 것을 담지는 못한다. 분명 추억의 생명을 연장시켜주기도 하고, 사진 속 순간을 환기시켜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이 현재로 내 앞에 있을 때 그것을 누리는 것이다. 맨눈으로, 넓은 시야로 그 순간을 온전히 담아둬야 함을 느낄 때가 있다. 카메라로 인해 현재의 소중함을 과소평가하게 되는 경우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이 순간을 내가 인상 깊게 받아들이고 느끼는 것 말고는 추억으로 남길 방법이 없다면 더 현재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러나 카메라를 쥐고 있을 땐 사진으로 찍어 놓으면 언제나 다시 꺼내보고 기억해낼 수 있겠지, 하고 현재의 순간을 머릿속에 남기기 위해 애쓰지 않게 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다. 소중하게 느껴 카메라로 현재를 남기는데, 그 행위로 인해 정작 현재에 충실하지 못하게 된다.


카메라는 분명 많은 것을 담아내지만, 결코 모든 것을 담아내지는 못한다. 카메라 속 사진에는 맥락이 없다. 카메라로 파도를 찍으면 분명 실제 파도와 닮은 모습을 얻을 수 있지만, 결코 그 물결의 몸짓을 담아낼 수 없다. 사진과 현실의 놀라운 유사성 덕분에 사람들은 사진이 거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고 믿지만, 사실 파도 한 장은 파도가 바위에 부딪히고 흩어졌던, 수평선 끝에서부터 끊임없이 밀려왔던 그 많은 몸짓 중 정말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도 그 사진을 보고 그 파도가 눈앞에 밀려오기까지의 수많은 시간을 이해하게 될 순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남겨진 한 장의 정지된 상을 가지고 그 상이 속했던 실제 상황을 상상해볼 뿐이다. 또한 카메라에는 직관이 없다. 카메라는 실재하는 것을 찍는다. 원근법에 따라, 사물의 정확한 상을 담아낸다. 그러나 사람은 실재하는 것만을 보지는 않는다. 가끔 착각에 빠져 이성적이지 못한 상을 얻어 낸다. 카메라가 직관을 품을 수 있다면, 원래 카메라의 용도로 따지면 비실용적이게 되는 것이겠지만, 더 쓸모가 많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카메라를 쥐고 있는 순간이 다행스러워지는 것은 그럼에도 카메라가 나 이외의 세상에 한번쯤은 감사와 경외를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는 과정은 그림을 그리는 것과는 다르게 실재하는 피사체를 필수적으로 요한다. 찍히는 대상이 없다면 카메라는 의미가 없고, 정말 좋은 피사체가 있더라도 카메라를 들 주체가 없다면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카메라를 듦으로써 나와 피사체의 관계에 대해 좀 더 긴밀하게 느끼고, 새삼 사진을 찍을 나 이외의 세상에 감사를 느끼게 된다. 어떻게 보면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은 주어진 순간에 감사를 표하는 조금 성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 시간이, 이 찰나가, 나에게 충분한 가치가 있음을, 그리고 그것을 내가 느끼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