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물건2] 화분

인간만을 위한 자연의 상징

by 파인피네

인간의 삶은 점점 자연에서 벗어나는 쪽으로 발전해왔다. 인간의 주거공간과 생활공간은 점점 더 견고한 테두리를 갖게 되었으며 더 높아지고 더 밀집되어 인간 생활과 자연의 교집합은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대개의 인간은 자연 밖에서 외로운 존재다. 사람들이 바쁜 삶 속에서 짬을 내어 산에 오르고, 바다에 가고, 탁한 밤하늘에서 별을 찾으려 애쓰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이 고도로 발전하고 모든 것들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인간은 생태에의 향수를 느끼기 마련이다. 비정상적이고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한 속세 속에서 자연스럽고, 순리에 맞는 자연의 일을 자기도 모르게 그리워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향수 속에 인간은 자신들의 생활공간 한 켠에 작은 ‘자연의 상징’을 마련하게 된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생태에 따라 물을 먹고, 산소를 만들어내고, 피고, 지고, 자라고, 죽는다. 완전한 생의 사이클을 목격하면서 인간은 자연에 대한 향수를 조금이나마 해소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인간이 자연을 그리워하며 자연의 일부를 자신의 인생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서, 자연속의 한 생명은 진정한 자연스러움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화분이 존재하는 방 안에는 비도 내리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는다. 벌레도 앉지 않고, 눈도 내리지 않는다. 광합성을 할 햇빛도 충분히 들지 않는다. 화분 속의 식물은 자생력을 일부분 잃고, 인간에게 의지하게 된다. 그 식물에게 비를 내리는 것도 인간이 되고, 햇볕을 쪼이게 하는 것도 인간이 된다. 인간이 화분 속의 생태계를 점령하게 되는 것이다. 한 생명의 존재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서, 인간은 얼마간의 만족을 느낀다. 적절하게 물을 주고 영양제를 챙기면서 식물이 성장하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성취감 역시 느낀다. 한 생명에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는 것을 느끼면서, 인간은 화분에 있어서의 자기 자신의 전지전능함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화분을 키우는 것은 실로 비경제적인 활동이다. 물을 주고, 분갈이를 하고, 흙을 가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만 실제로 화분을 키우는 사람들 중에 그 화분을 통해 실질적인 이득을 얻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발적으로 돈을 들여 화분을 사고 시간과 정성을 손해 보면서까지 인간은 화분을 키우는 것이다. 물론 인간은 경제적인 활동만을 하고 살지 않는다. 이러한 행동에는 ‘여가활동’이나 ‘취미활동’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이 붙는다. 사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화분을 키우는 건 결코 가벼운 ‘활동’은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도 아니고, 순간순간의 기쁨이나 인테리어를 위해 생명을 소유하는 것이다. 분명 화분을 키우는 것은 어느 정도 공존의 의미도 있다. 식물을 죽이기 위해 화분을 키우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완전한 공존이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있었다면 생태에 따라 스스로 생명을 유지하였을 식물이 인간의 행동에 따라 죽을 수도, 살수도 있다. 자신의 소홀로 키우던 화분속의 생명이 죽으면 인간은 잠시 안타까움을 느끼다가 그 화분을 처분할 것이고, 그 자리에는 새로운 식물이 들어설 것이다. 허락된 만큼의 뿌리만을 내릴 수 있는 비좁은 토양 안의 식물들에게 인간의 욕심은 어떤 의미일까.

작가의 이전글[다시 쓰는 물건1] 카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