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걸까?
세상에는 하고 싶지 않지만 그럼에도 해야만 하는 일들이 넘쳐난다. 엄청난 특권을 타고나지 않은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한다는 갈등에 일상처럼 부딪히게 된다. 하기 싫어! 왜? 그냥 내가 하기 싫으니까!! 그래도 해야 돼! 왜? 해야만 하는 일이니까!! 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사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 과정에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시간을 견뎌야 하는 것은 엄청난 모순이지만 당연한 사실이기도 하다. 원하는 대학생활을 누리고 싶으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입시라는 산을 넘어야 하고 원하는 직장을 얻어 돈을 벌고 싶으면 피나는 노력으로 취직이라는 또 다른 산을 넘어야 한다. 더 노력해서 더 가능성이 적은 확률을 뚫게 되면 남들의 부러운 시선도 플러스로 획득할 수 있다.
‘얻고 싶다-그렇다면 산을 넘어야 한다-그러려면 노력해야 하고 때로는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 한다’라는 사실만이 있다면 오히려 간단할지 모른다. 그러나 머리가 커가고 이것저것 엿듣는 이야기들이 많아지면서 또 다른 여러 의문점이 생기는 것이 요즘 나의 문제다.
내가 진짜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내가 억지로 산을 넘어 얻은 결과가 정말 내가 원하던 것일까? 정말 이 모든 노력과 치열한 경쟁이 ‘부질 있는’ 일일까? 주체적인 삶의 목표 설정과 가치관이 뚜렷하지 못해서 그저 한 가지 관문을 정해 놓고 그것을 통과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에 더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맹목적인 노력과 약간의 운을 통한 경쟁에서의 승리, 누군가는 통과하지 못한 관문을 나는 통과했다는 얼마간의 자부심. 그게 도대체 무엇을 의미한단 말인가? 진짜 내 인생에서 그게 유의미할까?
노력할 자신이 없고 목표도 없는 사람이 하는 자기 합리화이자 도피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보다 더 두려운 것은 내가 경주마처럼 달려 얻을 무언가가 내가 진정 원했던 것이 아니진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다. 배부른 고민이다, 일단 하고 말해라, 남들은 다 그렇게 산다는 말은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들 그렇게 살기 때문에 다들 그렇게 행복해지진 않기 때문이다. 그 중의 대부분은 의무감과 조바심으로 점철된 시간을 보내고 가끔 쉬는 시간처럼 찾아오는 성취감과 안도감에 위로 받으며 산다.
요새 학교 밖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조금씩 해보면서 깨닫고 있는 것은 과정 자체가 의미 있고 성취감 있는 일들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때까지 나의 세상은 무언가를 참고, 얻어내려고 노력하고, 그 과정은 결과를 위한 모종의 희생처럼 치부되고 그 결과로 얻은 무언가가 지난 희생의 보상인 것들로 가득 채워졌다. 배움이 아닌 평가를 위한 시험, 고만고만한 사람들끼리 붙여 놓고 점수 1,2점 차로 당락이 나뉘는 취직 등등. 그러나 어느 순간 그게 전부는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스템은 과정 자체가 가지는 의미를 퇴색시킨다. 노력했지만 결과를 얻지 못한 자에게는 한없는 패배감을 안겨주고 그 안에서 조금 더 나아서 관문을 통과한 자에게는 한없는 승리감을 준다. 누군가에겐 패잔병의 씻을 수 없는 자격지심이 깃들고, 동시에 누군가는 우월감과 으쓱해진 어깨를 훈장처럼 갖고 돌아간다. 그러나 영원한 패자도 승자도 없다. 이긴 사람은 또 언젠간 패배할 수도 있고, 패배한 사람은 또 언젠간 이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땐 또 과거의 상처와 영광은 모두 잊고 그 순간의 결과에 빠져들 것이다.
이러한 틀안에서 사고하는 것이 내 인생을 두고서는 무의미하고 근시안적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세상의 일반적인 가이드라인은 매 순간을 경기하듯 살도록 정해져 있다. 그것도 지독히 재미없는 경기를 하고 승패만이 모든 것을 평가한다. 문제는 이러한 경기가 1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끊임없이 경기가 주어지고, 나는 언젠가는 승리할 것이고 또 언젠가는 패배하고 실패할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무엇이 의미가 있을까? 승리에 기뻐하고, 패배에 절망하는 일희일비의 삶이 나에게 줄 수 있는 의미가 무엇일까? 이게 인간다운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모든 인간은 작은 우주고, 존재자체로 의미 있다는데, 이게 내 생명과 실존을 의미 있게 발휘하는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이제 최대한 과정 역시 내가 즐길 수 있는 일들도 나의 세상을 채우기로 결심했다. 좀 더 유의미하고, 과정에서 투자한 노력과 시간이 ‘매몰비용’으로 느껴지지 않을 소중한 경험들로만 나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이런 생각이 나를 패배자로 만들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습관처럼 찾아 들지만 그때마다 인생은 유한한 것이고 언제 인생이 끝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나에게 찬물처럼 끼얹어져 번쩍 정신이 들게 만든다.
나의 목표는 이제 나만의 타임테이블을 가지고 나만의 목표를 가지고 나만이 만족할 수 있다면 아무래도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물론 세상을 떠서 무인도에서 나 혼자 살아갈 순 없으니 다시 기말고사 공부를 시작할 것이고, 여러 시험도 볼 것이고, 또 상대의 눈에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며 면접을 보는 순간도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에서 나의 확연한 목적의식과 이정표를 갖고 있다면 같은 순간을 살아도 다른 감정과 다른 밀도로 인생을 채워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의 평가와 세상의 기준에 흔들리고 아파하지 않을 만큼 단단한 뿌리를 갖게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사실 그것을 위한 것이라면 어떠한 노력과 고통도 달가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