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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Jul 04. 2024

힘들어하는 너의 옆자리에 앉아서

가로등에 불빛이 켜지는 걸 목격한 순간

한 때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있었다. 나와 두 살 차이가 났는데,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만난 아이 친구 엄마였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아이의 성별과 나이가 같으며 차분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성향이 나와 비슷해서 금세 친해졌다. 우리는 같이 식사를 하고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놀리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꽤 오랜 시간을 알고 지냈다.


  어느 날, 그 엄마에게 나보다 더 친한 사람이 생겼다. 적극적이고 웃기고 목소리가 큰 엄마였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 엄마와는 성향이 맞지 않았다. 그 엄마는 연년생 아기를 둔 엄마였다. 놀이터에서 자주 마주쳤는데, 아기 엉덩이를 짓무르고 있는 기저귀를 너무 오랜 시간 갈지 않아서 흡수체가 빵빵하게 부풀어 올라 반바지 밖으로 터져 나왔고, 어쩔 땐 제 기능을 잃은 기저귀 밖으로 아기 대변이 새어 나왔다. 아기가 맨홀 뚜껑에 걸려 넘어지고, 얼굴 위로 피와 눈물과 모래가 한데 섞여 흐르는데도 그 옆에 가보지도 않았다. 아이의 다급한 "엄마"라는 부름에도 모른 척 얼굴을 돌리고 곁에 가지 않는 엄마였다. 그 엄마의 첫째 아이는 놀이터에서 아주 긴 나뭇가지를 휘둘러 다른 아이들을 위협했고, 주먹으로 모래를 움켜쥐고 뿌려댔다. 비속어가 섞인 말을 사용했고, 그 엄마는 더 큰 목소리로 웃기다는 듯 욕을 장난처럼 내뱉었다. 여러모로 나와 맞지 않았다.



  한 아이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엄마로서, 나는 그 연년생 엄마를 피했다. 그러면서 연년생 엄마와 가깝게 지내던 친한 엄마와도 자연스레 멀어졌다. 친한 사람끼리는 닮는다는 말이 있듯, 가끔 보는 그 엄마의 아이도 친구를 닮아가고 있었다. 내 아이가 여러 번 싫다고 의사를 표현하는데도 계속 똥집을 해댔고, 재밌게 놀다가도 내 아이를 이유 없이 밀어 넘어뜨렸다. 내 아이가 이해하지도 못하는 이상한 언어를 사용하며 혼자 웃었다. 이런 일을 처음 당해봐서 어쩔 줄 몰라 웃음으로 무마하던 내 아이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고 집에 가고 싶어 했다. 이후, 나는 조용히 관계를 정리했다. 워낙 오랜 시간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라 오만가지 생각이 들고, 감정적으로 힘들었지만 '엄마'로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했다. 만약 내가 누군가를 만났을 때, 상대방이 나를 욕하고 괴롭히고 때린다면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운전하다 가끔 클랙션 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상하기 마련인데, 자주 만나는 사람이 그렇다면 정리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이후 다른 유치원에 진학하면서 만날 일이 더욱 없었다. 문득 그 엄마가 생각날 때도 있었지만, 애써 마음을 접어두었다. 그러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우연히 마주치면서, 그 엄마에게 다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같이 모여 놀자고 했지만, 나는 여러 핑계를 대며 아이들이 만나지 못하도록 했다. 아이에게 다시 힘든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방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엄마와는 아이들이 없을 때 둘이 만났다. 그 엄마는 살이 많이 빠졌고, 여러 힘든 상황에 처해있었다. 아이는 유치원에서 연년생 아이와 같은 반인데, 둘 다 장난이 심해 자주 유치원 원장의 연락을 받는다고 했다. 그 엄마와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다가, 예전에 내가 느꼈던 대화가 잘 통하고 공통점이 있는 성향을 다시 느꼈다. 하지만 전과 같을 수는 없었다. 내 안에 상대를 향한 거리감이 있었다. 내가 그 사람을 향한 친밀감을 거부당했다고 느꼈던 여러 기억들이 떠올랐다. 아이를 키우며 만난 동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또래, 같은 생활 주기를 가진 육아 동역자라고 느꼈던 마음들이 박살 나던 몇 사건들이 있었다. 예전에 그 엄마는 이해할 수 없는 핑계를 대며 나보다 연년생 엄마와 가깝게 지냈다. 덕분에 대화가 잘 통하고, 나이가 비슷하고, 아이를 같은 해에 낳았다고 해서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님을 깨달았다.




  다시 만난 그 엄마는 곤경에 처해있었다. 나와 비슷한 공간과 환경에 거주하면서 이렇게까지 힘들 수 있나 놀라울 정도였다. 그 엄마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집 안팎으로 평안을 잃은 그 삶이 너무 고달퍼보였다. 해 줄 수 있는 거라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밖에 없었지만 우린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났다. 나는 기본적으로 혼자 조용히 지내는 시간을 선호하고, 외로운 시간들을 녹여 글감을 찾고 글을 짓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약속을 잘 안 잡는 편인데도 그 엄마는 주기적으로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엄마는 아무에게도 해본 적 없다는 속앓이의 시간들을 나에게 털어놓았다. 눈물도 없이 흘리는 말들이 눈물보다 더 깊게 내 마음속에 맺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다시 또 마음을 내어주고 있지? 아이들이 없을 때 해야 하는 일들이 차고 넘치고, 에너지를 충전해 놔야 음식도 만들고,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줄 텐데 이게 과연 옳은 행동인가?


  그러나 세상의 아름다움은 이성적 판단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논리적 근거를 대기 어려운 감정적 행동들이 세상을 구하기도 한다. 나는 세상은 못 구해도, 나의 세상을 구해준 이들을 기억한다. 대학생 때, 시험기간이라 늦게까지 공부하고 집에 가려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늦은 시간이라 누구에게 연락할 사람도 없었는데 정말 영화처럼 친구들이 우산을 들고 도서관 입구에 서 있었다. "어머. 어떻게 알고 왔어?" 놀란 내가 묻자 다들 웃으며 대답했다. "뻔하지 뭐. 도서관 문 닫을 시간 됐는데 갑자기 비 오길래, 너 우산 없을 것 같아서 왔어." 전공 시험을 앞두고 있어서 원서에, 참고 도서까지 더해 가방이 엄청 무거웠는데 책까지 나눠 들어줬던, 참 고마운 순간이었다.


  또 한 번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진로에 대해 부모님과 마찰이 일었던 때였다. 당장 기숙사 방부터 빼야 하는데 갈 곳이 없었다. 그때, 대학교 인근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던 선배가 손을 내밀어줬다. "우리 집으로 와. 내 방 같이 쓰면 돼." 그러자 또 다른 선배는 이런 제안을 해줬다. "내가 아는 언니가 아파트 룸메이트 구하는데 연결해 줄게." 결국 나는 부모님과 화해하고 다른 곳에 취직해서 살 집을 구했지만, 말만이 아니었을 그 고마운 손길들을 잊지 못한다.


  내 인생을 구해줬던 순간들이 이뿐만이랴. 아이를 낳고 잠도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으며 힘들어할 때 한 언니는 바쁜 자신의 삶을 쪼개어 내게 반찬을 만들어 주고, 맛있는 음식을 포장해 주었으며, 수시로 내 아이를 안아주었다. 아이와 공원에 간다고 했을 땐, 잠깐 들르라고 하더니 바나나와 직접 삶은 달걀을 챙겨주었고 윗집 누수로 우리 집 찬장이 무너져 난리가 났을 땐 본인 집 한편을 내어주었다.


  여기에 적으려면 한도 끝도 없이 적어 내려갈 수 있는 시간들이 참 많다. 은혜에 빚진 자의 삶을 살아간다. 나는 그 순간들이 내게 천사가 찾아왔던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순간에 대해, 심보선 시인은 <인중을 긁적거리며>라는 시를 지었다.


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
천사가 엄마 뱃속의 나를 방문하고는 말했다.

네가 거쳐 온 모든 전생에 들었던

뱃사람의 울음과 이방인의 탄식일랑 잊으렴.

너의 인생은 아주 보잘것없는 존재부터 시작해야 해.

말을 끝낸 천사는 쉿, 하고 내 입술을 지그시 눌렀고

그때 내 입술 위에 인중이 생겼다.*


태어난 이래 나는 줄곧 잊고 있었다.

뱃사람의 울음, 이방인의 탄식,

내가 나인 이유, 내가 그들에게 이끌리는 이유,

무엇보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

그 모든 것을 잊고서

어쩌다 보니 나는 나이고

그들은 나의 친구이고

그녀는 나의 여인일 뿐이라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뿐이라고 믿어 왔다.


...(중략)...

나는 어쩌다 보니 살게 된 것이 아니다.

나는 어쩌다 보니 쓰게 된 것이 아니다.

나는 어쩌다 보니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을 나는 홀로 깨달을 수 없다.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

             _심보선, <인중을 긁적거리며> 중에서





내가 나일 수 있는 것은, 누군가가 베푼 수많은 은혜로 인함이다. 그 누군가가 머리를 굴리며 나를 구해야만 하는 이유, 나를 도와줘야만 하는 근거를 찾기 시작했다면 나를 은혜를 입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아무 이유 없이 사랑받을 만한 자격도, 누군가를 감동시켜 도움을 불러일으켜낼 재주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도움을 받은 것은, 내가 도움을 받을만했기 때문이 아니라 나에게 도움을 준 그 사람이 도움을 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그 사람의 의지와 노력이다. 그 사람이 의도를 했든 안 했든 나는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았고, 그 은혜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막막해할 때마다 한결같이, 입을 맞춘 듯 이런 대답을 돌려주었다.


  "나에게 갚으려고 하지 마. 너도 언젠가 이 은혜를 흘려보낼 날이 있을 거야. 나도 그렇게 은혜를 받으며 살아왔고, 그 사람에게 은혜를 갚기는커녕 내가 이렇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조차 그분들은 알지 못할 거야. 너도 기회가 된다면 은혜를 흘려보낼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길 응원할게."


  내가 그 엄마와 만나며 이 말을 떠 올린 건 우연이었을까? 나는 그 엄마를 도울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저 내 삶과 시간을 조금 떼어 옆에 있어 주기로 했다. 비가 오는 날엔 우울하지 않을까 안부를 묻고, 암담한 마음 한 조각을 달랠 수 있을까 싶어 그 엄마가 좋아할 만한 장소를 알아보고 드라이브를 시켜주었다. 내가 먹어봤던 음식점 중 맛있었던 곳에 데려가 앞 접시에 음식을 가득 퍼담아 줬다. 지금은 그 엄마도, 나도 다른 곳으로 이사를 왔는데 그 엄마는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만 운전을 못하고 외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 나는 운전을 할 수 있지만 부담돼서 어쩔 수 없을 때만 하는데, 그 엄마를 위해 운전대를 잡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나는 그 엄마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도, 뭔가 뾰족한 방법을 알지도 못한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냐고, 나 같아도 충분히 그런 마음이 들었을 거라고, 내가 들어도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난다고 조심스럽게 응답할 뿐이다. 내가 그 엄마의 옆자리에 있어 주는 건, 내가 더 나은 사람이거나 착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지만, 그 사람에게는 전부일지도 모를 이 순간이 한 사람을 살려내었으면 좋겠다. 버티고 견뎌내 이 힘듦을 떠나보낼 시간을 맞이하기를 바란다.


  어둠이 맺힌 길거리에 가로등이 켜지는 걸 목격한 날이 있다. 서서히 찾아온 암흑 속을 어두운지 조차 모르고 걷다가, 가로등에 불빛이 탁하고 켜진 순간 주변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그제야 가로수 위에 올라앉은 고양이가 보였고 허기를 느꼈다. 저녁이었다. 우리 삶도 어두운지 조차 모르고 무작정 걷다가 비로소 암담함을 깨달을 때가 있다. 그러나 사위어 가는 어둠 속에 가로등이 켜지면 어둠을 깨닫는 동시에 나아갈 길도 보이기 마련이다. 내가 켠 빛이 누군가의 발걸음에 도움이 되길, 서로가 서로의 빛을 밝히며 두려움을 몰아내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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