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돋을볕 May 24. 2024

운동 싫어하는 사람의 운동 시작기

운동을 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실제로 시작하기는 어려운 마음의 짐

평평한 길, 높은 길에서는 물이 흐르지 못한다. 움푹 파인 곳, 무너져 버린 곳, 남들과 달리 더 낮은 곳으로 내팽개쳐지고 파헤쳐지고 상처받은 곳이어야 물이 흐를 수 있다. 물길이 생긴 곳으로 빗물이 고이고 웅덩이가 생기고 강이 되어 흐른다. 더 깊이 파일 수록 바다가 된다. 생명이 쉬어가고 함께 멈춰서는 곳. 그곳이야 말로 생명이 공존하는 현장이 된다.


고양이들이 웅덩이에 고인 빗물을 마시고 있다

  사람의 가슴에도 저마다의 웅덩이가 있다. 우중충한 구름이 끼고 해소되지 않는 갈증이 고여 있는 슬픔의 마디가 있다. 나에게도 때로 이유를 지목하기 힘든 불안이나 답답함이 몰려올 때가 있다. 한 가지 특별한 이유를 말할 수 없을 때면 오히려 주변의 모든 것들에 불만을 갖게 된다. 최근에도 그런 마음이 들었다. 모든 것이 불만이라 어떤 것도 이유가 될 수 없는 답답함으로 무장한 우울감.


  마음에도 날씨가 있다고 한다. 맑고 쾌청한 날이 있는 가 하면 아무 이유 없이 먹구름이 끼고 태풍이 몰아치는 날도 있는 것이다. 나는 한동안 구름 낀 날씨 속에 있었다. 가끔 햇빛이 비치기도 했지만 과중한 책임감 속에서 벗어나고 싶은 답답함을 느꼈다. 올해 책임지는 일을 맡아서 그런가 싶기도 했고, 개인적 성취감을 중요시하는 내게 성취감이 결여된 일상 때문인가 싶기도 했다. 먹구름을 떠내려 보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거나 비를 맞기도 했지만 다시 제자리걸음 같았다.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을 짊어질 힘이 없다면 힘을 한 번 만들어 보자, 육아와 집안일 속에 갇혀있기가 답답하면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공부를 해볼까 싶었다. 뭐라도 시작해 보면 닿는 구석 하나쯤은 발견되지 않을까? 어쩌면 취업의 기회도 생기지 않을까? 그러나 무턱대고 공부를 하기엔 내가 가용할 수 있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아이들을 유치원과 학교에 보내면 오전 10시, 첫째 아이가 학교에서 집에 오면 오후 1시. 겨우 3시간 동안 빨래와 청소, 분리수거와 차량 점검, 점심식사 등 '해야 할 일'들만으로도 벅차다. 게다가 나는 누군가의 보살핌이 절실한 이 어린아이들을 두고 일을 하러 나갈 엄두도 안 난다.


  운동을 해보면 어떨까? 운동을 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실제로 시작하기는 어려운 마음의 짐. 늘 마음은 있지만 몸이 따라가 주질 않는다. 오래전 요가를 배웠고 가끔 홈트로 매트 필라테스를 하고, 억지로 몸을 세워 하루 만보 걷기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혼자만의 의지로 운동을 지속하기란 어찌나 어려운지. 웬만하면 밖에 나가기 싫어하는 집순이인 나는 집에서 운동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해보았지만 체력이 좋아질 만큼 해보진 못했다. 수영은 어렸을 때 갔던 수영캠프에서 죽을 뻔했던 기억 때문에, 에어로빅이나 줌바는 근력이 아니라 살 빼는 것만 강조해서, 헬스는 비싼 P.T 비용과 약한 근력으로 기구를 들 수가 없어서, 필라테스는 꽤 큰 근력을 요구하는 데다 한 번에 큰돈을 결제해야 하는 것이 부담이 됐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나는 운동을 싫어하고 맞지 않는다고만 생각했다. 몸을 쓰거나 근력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자연스레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나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이 팽배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어쩌면 우울감과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해 보니 실제로 운동의 항우울효과에 대한 연구가 많이 있었다. 운동은 우울증을 없애주진 않지만 우울감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나는 우울증까진 아니지만 때때로 찾아오는 우울감을 이길 원천을 마련해두고 싶었다. 그리고 1~2년 전 지인이 추천해 주었던 여성순환운동 센터를 찾아갔다. 일단 상담부터 받아볼 심산으로.

피트니스 센터 가는 길

  

  인바디검사와 간단한 설문으로 상담을 시작했다. 저체중과 근력 부족. 언제나 동일한 인바디 검사를 해서 무엇하나 싶긴 했지만 상담을 해주시는 분이 계속 용기를 주었다. 나보다 더 마른 사람도 하고 있으며 마른 비만도 많은데, 그게 아니라 다행이고 이 정도면 양호하다고 운동으로 근력량을 확실히 늘릴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센터에 최연장자의 나이가 82세인데 아주 열심히 하신다고 하였다. 센터에 있는 기구도 몇 가지 체험해 볼 수 있었는데 몸을 움직이는 속도에 따라 기구에 중량이 실리는 유압식 원리라 내 힘에 맞춰 기구를 움직일 수 있었다. 키에 따른 운동 기구 사용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고, 각기 자기 상태에 따라 운동량을 조절했다. 기구들이 동그랗게 배열되어 있어 유산소와 근력 운동을 30초씩 번갈아가며 하고, 30분이 한 사이클로 이뤄져 원하는 만큼 할 수 있었다. 물론 나는 30분만 채우고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뒤 집에 왔다.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 가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어차피 동그랗게 서서 운동하니 왠지 모를 소속감도 생기고 동질감 마저 느껴졌다. 연령대도 다양해서 저렇게 나이가 많으신 분도 하는데 30대의 나이에 힘이 없어서 운동을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무지에서 왔단 걸 깨달았다. 예전에 헬스장에서 느꼈던 어색함이나 내가 못 올 곳에 온 것 같은 이질감과 부끄러움이 훨씬 덜했다. 여성전용 피트니스라서 심적으로도 편안했다. 결국 나는 일단 한 달만 등록해 보고 결정하려던 생각을 깨고, 무려 6개월치나 결제했다.


스트레칭 공간


  그렇게 싫어하는 운동을 돈을 주고까지 하게 되다니! 그런데 돈을 주고 운동하니 그 편안함에 웃음이 절로 난다. 땡볕에 물 한 병들고 미세먼지와 씨름하며 재미없이 만보 걷기를 하던 때보다 시원한 에어컨이 켜지고 신나는 음악이 나오는 센터에서 운동을 하니 땀도 안 난다. 상시 선생님이 계셔서 운동 자세를 봐주시는 데다가 자꾸 잘한다고, 잘하고 있다고 응원을 해주니 진짜 잘하고 싶은 욕심이 난다. 오래전에 학원에서 익힌 요가와 혼자 홈트로 하던 필라테스가 나도 모르게 몸에 익어 스트레칭 동작에서 빛을 발했다. 운동은 조금이라도 꾸준히 하면 도움이 된다는 말이 비로소 와닿았다. 센터에 주 3회 이상 출석하면 입구에서 빵바레가 울리고, 인증 도장을 찍어주는데 모으면 선물을 준다. 아기 다루듯 계속 당근을 주시니 근육통은 있지만 재미가 붙는다. 6개월 뒤엔 정말 근력량이 많이 늘어 다른 운동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운동을 하도 안 해서 근력 운동에 손바닥이 아팠다. 덕분에 운동 장갑까지 구입했다는 웃픈 이야기

  아침에 운동을 갈 땐 문이 닫혀 있던 상점들이 운동 후 나올 땐 활짝 문을 열어젖히고 활기찬 음악을 내보내는 걸 보는 재미도 있다. 운동을 가기까진 오늘 운동을 가지 말아야 할 수만 가지 이유를 쥐어 짜내고 현관문을 열어 젖히기가 너무 힘들지만, 일단 억지로 피트니스로 내 몸을 욱여넣으면 오늘도 해냈다는 성취감과 좀 더 튼튼해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아직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저녁마다 녹초가 될 만큼 근육통이 오고 너무 피곤해서 잠도 쉬이 오지 않지만 시간이 해결해 주길, 내 몸이 잘 적응하길 기다리고 있다. 수강료 환불이라는 달콤한 제도가 있긴 하지만 어쨌든 6개월치의 운동을 잘 해낼 수 있기를!


출석 많이 한 사람의 이름이 올라가는 가 보다. 공동 1위가 무려 2100회!

  소설 <자기만의 방>으로 유명한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대학교의 잔디밭을 거닐다 한 관리원에게 제재를 당했다고 한다. 관리원은 여성인 버지니아 울프에게 자갈길만 걸을 수 있다고 말해 그녀는 좋은 길을 놔두고 자갈길을 걸어 도서관으로 향한다. 그러나 여자가 도서관에 출입하려면 연구원과 동행 가거나 소개장이 필요하다며 대학 측으로부터 거절을 당한다. 이에 대해 버지니아 울프는 이렇게 다짐한다.


"원한다면 도서관은 잠가도 됩니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자유로운 나의 사유를 가로막을 문도, 잠금쇠도, 나사도 없습니다."


  가히 버지니아에 비할 순 없겠지만, 가끔 나도 닫힌 문을 보며 걷고 있단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이들이 자라는 걸 옆에서 보고 함께 할 수 있단 건 큰 축복이며 기쁨이지만, 육아는 '나'라는 사람이 사라진 채 제삼자만 등장하는 무대를 꾸미는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 아이들을 옆에서 돌보지 않고서는 아이들을 키울 수가 없는 현실이 답답하다. 내가 썩어나가야 아이들이 자라고 꽃을 피울 수밖에 없는 구조가 닫힌 문같이 느껴진다. 나에겐 문을 열 힘은 없지만 버지니아처럼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갈 방도를 찾고자 한다. 버지니아가 했던 말을 따라 다시 한번 되뇌어 본다. "원한다면 도서관은 잠가도 됩니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자유로운 나의 사유를 가로막을 문도, 잠금쇠도, 나사도 없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쌀 심은 데 쌀 나고, 나물 심은 데 나물 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