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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May 02. 2024

쌀 심은 데 쌀 나고, 나물 심은 데 나물 난다

나물이 지천이라도 뜯어야 보약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지만, 농촌 지역에선 논농사가 시작되는 계절이다.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은 농촌인데 어린이날 즈음이면 흩어졌던 온 가족이 모여 논농사를 돕는다. 그 논농사는 바로 '못자리'! 올핸 그 일정이 조금 앞당겨졌다. 사람들이 흔히 아는 '모내기'는 줄기가 어느 정도 자란 벼를 논에 심는 것이고, '못자리'는 쌀 자체를 모판에 심는 것이다. 못자리를 먼저 한 뒤 한 달 뒤쯤 논에 모를 심는 게 모내기이다.

 

못자리와 농사는 예능에 나오는 웃긴 ‘상황’이 아닌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자 모두의 현실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법이다. 쌀밥을 먹고 있다면, 쌀을 구매하고 있다면 당연히 누군가는 쌀을 심는 수고를 하고 있다. 기름진 땅을 가꾸고 벼가 자라기 좋은 환경을 위해 애쓰고, 때에 맞게 씨앗을 뿌리며 누군가는 농사를 짓는다. 약 1만 년 전에서 6천 년 전부터 시작된 쌀농사는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는 생명의 음식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살 야채볶음밥’




  농촌의 포근하고 평안한 모습이 참 좋지 아니한가. 시기에 맞게 곡식이 여물고, 새가 날아들고 계절마다 한결같은 풍경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쩜 이렇게 잊지 않고 다시 돋아났을까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자연은 때와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고민은 대자연의 순리 속에선 그저 한낱 스쳐가는 먼지에 불과하다고 위로하는 듯하다. 그 안에 있으면 마음속 걱정마저도 따뜻한 바람결에 날아가 버리는 것 같다. 반복되는 육체의 노동은 고되지만 몸을 움직인 만큼 정직하게 열매 맺는 땅과 햇빛과 비바람의 힘이 위대하게 다가온다.


  우리 집은 올해 800여 개 정도의 못자리 판을 만들었다. 가로가 60cm에 세로가 30cm 정도 되는 얄팍한 판이 모판인데, 여기에 벼가 자라기 좋은 흙을 담고 그 위에 쌀을 심는다. 이 단순한 사실을 실행하기 위해선 치밀한 계산과 노력이 필요하다. 국립농업기술센터의 종자연구센터에서 판매하는 종자 중, 심을 곳의 기후와 추후 판매 계획에 맞춰 알맞은 종자를 구입한다. 농협에서 이 볍씨를 열탕소독해 주는데, 이 과정을 통해 볍씨를 소독하고 발아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이후, 모판과 알맞은 상토를 구입해 모판에 상토를 담는다.

모판에 흙 채우기


  이번 못자리엔 부모님과 형부와 언니, 나와 남편과 두 아이들 그리고 남동생까지 13명이 달라붙었다. 창고에 넣어둔 모판 800여 개와 상토를 트럭으로 옮기고 다시 밭에 도착해 트럭에 실린 모판과 상토를 내렸다. 모판에 상토를 담고, 흙을 고르는 흙칼로 평평하게 다진다. 이 모판을 못자리 기계에 넣은 뒤, 한 사람은 이 기계가 돌아가도록 계속 손잡이를 돌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일렬로 서서 모판을 기계에 넣고, 기계에 소독한 볍씨와 흙을 퍼 담는다. 기계에 연결된 호스를 이용해 자동으로 물을 뿌리고 볍씨가 심긴 뒤 다시 그 위에 흙이 뿌려져 기계에서 나오면 서너 명이 달라붙어 모판을 나른다. 물 먹은 흙이 들어있는 모판은 무거워서 이 판을 들어 올려 하우스 안 쪽 끝까지 몇 백 판을 날라 채워 넣으려면 보통 노동이 아니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 못자리를 하고 있자니 굽어진 아빠 등이 보여 마음이 아프다. 형부와 남편에게도 슬며시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는 함께 일하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진심을 다해 칭찬했다. 그리고 어렸을 적, 사물놀이를 했었는데 그때 배웠던 국악을 불렀다. 대회 준비를 하느라 장구를 열심히 두드려 대며 하도 불러서 아직까지 기억하는 '별달거리 장단' 말이다.


"하늘보고 별을따고 땅을보고 농사짓고

올해도 대풍이요 내년에도 풍년일세

달아달아 밝은달아 대낮같이 밝은달아

어둠속에 불빛이 우리네를 비춰주네"



  내 장난스러운 노래에 맛깔스러운 웃음이 퍼지고 다시 힘을 내어 못자리를 이어갔다. 가장 의욕이 넘치던 초등학생 첫째가 모판을 나르다 다리가 까지는 바람에 집으로 향하고, 달팽이를 줍던 둘째도 더운 날씨를 이기지 못하고 형을 따라갔다. 언니는 아이들을 돌보며 새참과 대가족 점심 식사를 준비했다. 아침 일곱 시 반부터 시작된 못자리는 오전 9시 반 새참 시간과 점심시간 한 시간을 제외하곤 쉴 새 없이 돌아갔다. 모판이 무거워 못 드는 나는 못자리 기계의 손잡이를 돌렸다. 앉은뱅이 의자에 걸터앉아 몇 시간을 내리 손잡이를 돌리려니 어깨와 팔 그리고 손목이 빠지는 것 같이 아팠다. 그동안 아이들이 어려서 못자리에 제대로 참여한 건 처음이었는데 더 이상 쌀이 그냥 쌀로 보이지 않았다. 배부르다고 남겼던 밥과 쌀 씻을 때 하수구로 무참히 흘러가던 쌀 알갱이들이 떠올랐다. 부모님께 받아먹던 쌀을 다신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귀하고 소중하게 먹으리란 다짐이 안 쓰던 근육 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손잡이를 약 3번 돌리고 자리를 떠난 둘째. 할머니에게 선물받은 사탕바구니를 내내 한몸처럼 들고 다녔다.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농촌에선 고양이 손이라도 빌릴 수 있으면 빌려야 한다" /손잡이 돌리는 게 보기보다 무척 힘들어서 약 3분가량 빌릴 수 있었다.


 오후 3~4시경, 못자리를 시작한 지 장장 8시간여 만에 못자리를 끝내고, 이젠 좀 쉬는 가 싶었더니 엄마가 바구니와 칼을 챙겨든다. 천지에 봄나물이 지천이라며 뜯는 만큼 먹을 수 있다고 한마디 하신다.

  "옛 어른들이 그러시잖여. 나물이 지천이라도 뜯어야 보약이다. 나물 먹고 싶은 사람 따라오노."


  대장이 가는데 졸병이 어찌 안 따르랴. 언니와 바구니를 들고 엄마를 따라나섰다. 양지바른 곳에 뽀록 솟아오른 고사리, 연한 초록잎을 바람에 하늘거리는 꽃나물과 가죽나물, 엄마가 몸에 그렇게 좋은 거라며 극찬하는 방풍나물, 가시나무 끝에 매달린 두릅, 겨우내 웅크리고 있다 거친 땅을 박차고 오른 부추까지! 엄마 말대로 사방이 나물 천지다.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이것들을 다 데치고 무쳐서 먹었을까? 먹을 게 없어서 시작됐겠지만 알수록 건강 밥상의 비결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아직 나물의 맛을 깊이 아는 건 아니지만, 흙을 뚫고 나온 나물을 뜯어서 바구니에 담는 행위 자체가 보람차고 즐거워 봄철의 이 기쁨을 만끽한다.


고사리 찾는 꼬마 농부

  염소에게 풀을 뜯어주다 따라나선 둘째도 제법 엄마를 흉내 내며 통을 가득 채운다. 귀여운 꼬마 농부가 풀 사이사이 숨어있는 고사리를 얼마나 잘 찾는지 칭찬할수록 신이 나서 작은 장화를 신고 더 빨리 뛰어다닌다.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으로 꼬집듯 꽃나물을 꺾어 들어 올리는 얼굴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꽃나물보다 더 예쁜 꽃동이가 아닐 수 없다. 엄마는 나물마다 담겨있는 사연을 풀어놓느라 정신없고, 나는 꽃동이가 귀여워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다. 엄마는 딸 주려 나물을 뜯고, 딸은 그 아들을 보며 미소 짓는다.


꽃나물 뜯는 ‘꽃동이’


  윤기 나는 초록 잎에 얼굴을 빼꼼 내민 초록 매실도 예쁘고, 시골에서 올라올 때마다 엄마가 가득 챙겨주시는 건강 농산물들도 기쁘다. 산에서 날아다니며 매끈한 때깔을 자랑하는 닭들이 낳은 유정란, 따뜻한 늦봄이면 알을 까고 나와 엄마 닭을 쫓는 병아리, 뿔이 나지 않아 강아지처럼 생겨서 엄마 염소를 쫓아다니는 아기 염소들, 순한 눈망울을 굴리며 엄마 소 뒤에 숨어 있는 송아지들, 제비가 무리 지어 날며 턱시도 옷을 자랑하고, 산마다 새소리가 자욱하고, 우리를 반기는 동네 사람들.


  식재료가 마트가 아닌 밭에서 남을 알고 그 수고와 가치를 아는 이의 구슬땀은 얼마나 값진가. 이것은 권정생의 동화 '몽실언니'의 배경인 일제 해방 직후의 일도 아니고, 영화 <웰컴 투 동막골>처럼 한국 전쟁 때도 아니다. 살아 숨 쉬는 현재의 시골이다. 기름진 땅에서 나는 이 흙내음이 나를 정화하고 가득 채운다. 내가 먹는 쌀과 나물이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는 건 '세련'이 아니라 '무지'라 말하고 싶다. 농부가 벼를 심고 각종 나물과 과일, 채소를 가꾸는 건 자식을 돌보는 부모의 마음과 같다. 오죽하면 '자식 농사'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쌀을 심고 나물을 가득 얻어 돌아오는 길, 어둠 속의 달빛이 올해도 대풍이요 내년에도 풍년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밭가에 심은 초록매실이 초롱초롱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정지용,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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