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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Nov 29. 2021

고구마를 굽는다

"좋은 음식은 좋은 대화로 끝이 난다."

2021.11.29

  맛있게 먹어 줄 벗님들을 생각하며 고구마를 굽는다. 부모님이 친환경 유용미생물 EM으로 농사지으신 속이 노란 호박고구마다. 올해는 어쩐 일인지 간혹 밤고구마가 섞였다. 밤고구마는 심은 적이 없는데 어떤 꿀벌이 몰고 온 걸까? 도무지 알 수 없는 밤고구마의 출현에 꿀벌의 소행일 것이라 추측만 할 뿐이다. 익혔을 때 부드럽고 안에 심지가 적으며 속살이 짙은 노란색을 띠는 호박 고구마가 좋은 고구마다. 껍질에 싸여있을 때는 알 수 없으나 그 안을 벗겨보면 하얗고 목이 메는 퍽퍽한 속살을 음료와 함께 꿀꺽 삼켜야 넘어가는 고구마가 밤고구마다. 우리 가족은 샛노랗고 부들부들한 호박고구마를 좋아한다. 갓 구운 호박고구마를 먹노라면 뜨끈한 아랫목에 두터운 담요를 덮고 누워 뒹굴거리는 느낌이 든다. 동치미나 우유와 먹으면 금상첨화다.



  오늘은 벗님들을 위해 호박고구마를 구웠다. 인덕션으로 바꾼 뒤 가장 속상한 점이 고구마를 구울 수 없다는 점이다. 오븐이 있긴 하지만 불에 굽는 고구마가 더 맛있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아주 오랜만에 버너를 꺼냈다. 아주 조금의 물을 넣고 중불과 약불 사이로 불을 조절해가며 고구마를 굽는다. 가끔씩 앞 뒤로 뒤집어 골고루 익힌다. 고구마를 안 좋아하면 어쩌지? 추운 날씨에 가다가 다 식으면 어쩌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 손은 움직이고 고구마는 익어 간다. 걱정하면서도 벌써 두 판째 올리는 고구마. 적당한 크기에 잘생긴 고구마는 판매용으로 나가고, 집에서 먹는 고구마는 너무 크거나 작은 못난이들이다. 생긴 건 자유분방해도 맛은 살살 녹는다. 말 그대로 꿀맛이다.



  이미 많은 사람이 함께 음식을 나눠 먹는 일의 중요성을 예찬한 바 있다. 쉴라 그레이엄은 "음식은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위안거리다"라고 했다. M.F.K. 피셔는 "다른 사람과 음식을 나눠 먹는 것은 쉽게 빠져서는 안 되는 친밀한 행위이다"라고 했다. 누군가 따뜻한 군고구마를 먹고 위안을 얻으면 좋겠다. 누군가 군고구마를 먹고 사랑을 느끼면 좋겠다. 누군가 함께 음식을 나눠 먹는 이 시간을 기뻐해 줬으면 좋겠다. 조프리 네이어는 "좋은 음식은 좋은 대화로 끝이 난다"라고 했다. 좋은 음식은 사람의 마음을 열고 위로해준다. 나에게도 '좋은 사람들'이 갖는 대부분의 공통점은 늘 맛있는 음식으로 환대를 베풀어준 사람들이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 사람들이다. 이제 고구마와 함께 먹을 따끈한 차를 끓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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