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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Dec 02. 2021

샤부샤부와 돈가스

내가 좋아하는 음식

2021.08.04


음식을 많이 먹지 않고, 즐겨하지 않아서 무엇을 먹을까 결정할 때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대학생 때는 우유 라인(우유부단의 줄임말)의 대표를 맡기도 했죠. 두 시간 걸려서 결정하고 나면 새 모이만큼 먹고 관둬서, 친구들이 서로 저와 같은 테이블에 앉고 싶어 했답니다.


간혹 정말 맛있다는 느낌이 들면, 평소에는 7~80%의 포만감이 들면 숟가락을 내려놓지만 그날은 더 많이 먹기도 합니다. 특정한 음식을 무조건 좋아하지 않고 그때의 분위기와 기분이 크게 좌우하는 것 같아요. 담백하고 깔끔한 음식을 선호합니다. (떡볶이는 떡볶이니까 제외합니다.)




깻잎, 양파, 오이, 당근, 비트, 적양배추 등을 따뜻한 물에 살짝 불린 라이스페이퍼에 감싸서 따뜻한 고기 한 점 올려 먹는 샤부샤부를 좋아해요. 야채를 다 먹은 다음 뜨거운 국물 위에 동동 뜬 만두를 연겨자 간장 소스에 살짝 찍어 입어 넣으면 목구멍까지 꽉 차는 부드러움에 두 발을 동동 구릅니다. 적당히 졸아든 국물에 시금치와 당근으로 색을 낸 손칼국수를 넣어 휘휘 저어 먹으면 마치 젓가락을 처음 들어 올린 것처럼 후루룩후루룩 삼킵니다. 마지막으로 자작자작한 국물에 하얀 쌀밥과 동그란 달걀, 잘게 부순 김 가루와 고소한 참기름을 쓰윽 뿌려 죽을 만들어 먹으면 비로소 다 이루었노라, 외칠 수 있지요.





얼마 전 지인이 소개해 준 돈가스 집이 있습니다. 평소 튀김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니글거리는 기름 맛이 속을 불편하게 하더라고요. TV 광고에서 기름이 가득 든 통에 치킨을 넣어 튀기는 장면을 보면 너무 느끼해서 입맛이 뚝 떨어지곤 합니다. 치킨은 두 조각이면 충분해요. 이 음식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담백하게 먹을 수 있어서 너무 좋더라고요.


안심 돈카츠를 좋아하는데 동그란 안심 부위에 가벼운 튀김을 입혀서 바삭하게 튀겨냅니다. 튀김옷이 얇고 고기는 선명한 분홍색을 띱니다. 그 위에 참깨를 톡톡 빻아 올리고, 적 와인 맛이 나는 붉은 소스에 찍어 먹습니다. 두 돌 아기도 술술 받아먹을 정도로 매우 부드럽지요.


여기에 랍스터 새끼쯤으로 보이는 커다란 새우튀김과 카레를 추가 주문합니다. 큰아버지가 선장 출신에 지금은 인천에서 선박업을 하셔서 신선한 해산물을 종종 보내 주십니다. 덕분에 바다에서 헤엄 좀 쳐봤다는 새우는 정말 많이 먹어 보아서 밖에서 새우는 잘 안 먹습니다. 여기 새우는 정말 크고 껍질을 까는 노력 따위가 우스울 정도로 살집이 도톰합니다. 새우깡보다 더 고소한 새우 향이 솔솔 나지요. 마요네즈와 키위를 섞어서 만들었을 폭신한 소스에 찍어 먹으면, 평소에는 먹지 않는 새우 머리까지 한 번 먹어볼까 고민에 빠집니다.


카레에는 감자, 양파, 돼지고기 등이 큼직하게 들어있고 적갈색을 띱니다. 성인 주먹만 한 크기의 뚝배기에 담겨 나옵니다. 밑에서 고체 양초가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 따뜻하게 데워줍니다. 세 가지 강도로 매운맛을 조절할 수 있는데,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저에게는 순한 맛이 딱입니다. 보드라운 카레에 밥을 슥슥 비벼, 동그란 안심 돈카츠를 한 입 베어 문 뒤 알맹이가 꽉 찬 된장찌개 한 술을 삼킵니다. 점심에 먹고 나면, 저녁에 또 먹고 싶지요.




고향이 시골이라 어렸을 적에 어머니께서 거의 모든 음식을 직접 만들어주셨습니다. 건강한 먹거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시죠. 치킨도 집에서 땅콩 가루 솔솔 뿌려 만들어 주시고, 학교 갔다 집에 오면 찜기에 놓인 계란빵에서 김이 모락모락 났지요. 길쭉한 등심 부위에 튀김옷을 입혀서 탕수육도 만들어 주셨는데 목이버섯과 과일이 듬뿍 들어 있는 탕수육 소스가 기가 막혔습니다. 지금도 하루 세끼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미역국을 끓여 주시면 한 통 가득 담아 집에 들고 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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