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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Jan 21. 2023

밥을 나누는 사이

밥 하기는 지겹고, 밥 먹기는 즐겁다

하루 중 가장 많이 하는 고민 중 하나는, 오늘은 뭘 해 먹지? 하는 생각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내가 자라오면서 받아 온 밥상을 떠올린다. 조부모님과 4남매까지, 여덟 입을 책임졌던 엄마는 늘 밥을 하느라 바쁘셨다. 밥뿐만 아니라 모든 간식을 직접 만들어 주셨다. 하교 후 집에 오면 식탁 위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던 계란빵부터 시작해 고소한 땅콩 가루가 솔솔 뿌려진 양념 치킨, 돼지 등심이 부드럽게 씹히는 탕수육, 뜨거운 기름 위에 동동 떠 있던 한과, 주전자 뚜껑으로 동그란 모양을 낸 도넛, 마당 아궁이에 불을 때 직접 만든 손두부, 그 손두부가 들어간 돼지고기 김치 만두, 요구르트를 넣은 당근 주스까지 하나같이 정갈하고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이었다. 그 손맛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에 따뜻한 김이 피어오른다.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예비 통지서를 받아 들자 손이 떨렸다. 내가 학부모라니!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학부모'가 되어도 되는 것인지 어안이 벙벙했다. 아직 한글도 다 못 뗐는데 학교에 갈 수 있을지 걱정이 가장 컸다. 그러나 학교 입학 준비물에 선생님의 다정한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와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무엇일까요? 선생님 배고파요, 졸려요입니다.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지 마세요. 선행 학습 시키지 마세요. 잠을 푹 재우고 아침밥은 꼭 먹여서 보내주세요. 방학 때 푹 쉬고 온 아이들은 얼굴빛부터 다르답니다."

지나치기 쉬운 그 문장이 가슴에 콕 박혔다. 글을 쓴 선생님의 진심이 느껴졌다. 그 위에 아이를 셋이나 키운 지인의 말이 겹쳐졌다.

  "학교 가기 전에 내 아이의 부족함만 보이는 건 다그래. 부모들은 다 내 아이보다 키가 크고 똑똑한 아이만 보이거든. 근데 막상 가보면 다시 인간관계부터 시작이야. 문제는 다 관계에서 생겨."


  이제 벌써 학부모 3년 차에 들어간다. 사계절을 두 바퀴 돌며 느낀 건 선생님과 지인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아침에는 밥을 든든히 먹여 보내고, 방과 후에는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인다. 내가 궁금한 사항보다 아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원하는 때에 실컷 말하도록 내 마음을 다스린다. 때로 아이는 친구가 접어 온 딱지가 얼마나 멋졌는지 칭찬하고, 억울하게 혼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교과서에 그려진 그림에 자기가 장난친 이야기나 급식으로 나온 제육볶음을 처음 먹어 봤는데 맛있었다며 빨간 음식을 먹은 것에 대해 자랑하기도 한다. 내가 늘 묻는 질문은 점심시간 전에 배가 고프지 않았는지, 싸간 물의 온도나 양은 괜찮았는지, 옷차림의 두께는 적당한지 이다. 아이가 자신만의 줄기를 뻗쳐서 자라나는데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최선은 맛있는 밥상이 아닐까 싶다. 다른 대부분의 것, 아니 거의 모든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다. 내 욕심을 더하면 아이의 스트레스는 늘어난다. 인생을 살아갈 때 가장 애쓰고 힘든 사람은 본인일 테니 말이다.


밥을 하는 건 지겨운 일이다. 찬 물에 쌀과 잡곡을 적당히 섞어 씻은 뒤 앉히고, 입맛이 제각각인 아이들의 취향과 영양, 내 능력과 에너지까지 고려해야 한다. 대가족의 밥을 했던 엄마가 "밥 하나를 해도 할아버지는 꼬들 밥, 할머니는 진밥, 아빠는 콩밥, 애들은 쌀밥을 좋아하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며 하소연했던 적이 있다. 4인 가족 밥을 하는 나도 누구의 입맛에 맞춰야 할지 고민인데 엄마는 오죽했을까.


밥벌이를 하는 남편은 아예 아침밥조차 먹지 못하고 셔틀버스에 몸을 싣는다. 집 앞에서 회사에 가는 마지막 셔틀버스가 새벽 6시 넘어서 있다. 꾸역꾸역 정류장에 모인 익숙하고 낯선 사람들 틈에 발 하나를 보탠다. 모두들 얼마나 치열하게 출근을 하는지, 아침에 엘리베이터에 몇 층 사람을 만나는 냐에 따라 오늘 뛰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한다고 한다. 그나마 몇 년 전에는 하루 세끼를 포함해 주말까지 회사에서 먹었지만, 이제는 정해진 근로시간이 있어 저녁과 주말 밥을 함께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밥벌이를 해오는 남편에게 해줄 수 있는 내 위로는 밥이다.


매운 음식을 못 먹는 아이들 탓에 반찬은 더욱 한정적이다. 하얀 반찬과 빨간 반찬을 고려해 만든다. 메추리알 조림, 견과류를 넣은 멸치 볶음, 어묵 볶음, 애호박 볶음, 삶은 양배추, 버섯볶음, 미역국 등을 닷새마다 반찬 공장을 돌려 만들어 놓는다. 이에 그날그날 카레, 짜장, 유부 우동, 생선,  밀푀유나베 등 메인 요리를 더한다. 저녁은 탕진된 에너지로 만드느라 발바닥이 저리고, 아침엔 급박한 시간과의 싸움이다.


밥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무한정이지만 먹는 것은 금방이다. 어쩔 땐 요리 마무리를 하고 식탁에 낮으면 맛있는 건 다 먹고 남은 반찬 찌꺼기랑 먹어야 할 때도 있다. 뭐든지 할수록 는다고, 요즘엔 전보다 요리 실력이 조금 나아진 것 같다. 여전히 간을 맞추는 건 어렵지만 만들고자 하는 음식에 대충 어떤 재료들이 들어갈 거라는 감이 생겼다. 만드는 시간도 조금 줄어들어 힘도 조금 덜 들어간다. 그럼에도 여전히 요리는 어렵고 품과 시간도 많이 든다. 재료를 다듬고 요리 후에 치우는 시간은 더욱 회피하고 싶은 순간이다.


직접 만들어 먹는 요리가 가장 건강하고 이상적인 밥상이겠지만 가끔씩은 외식을 하거나 배달음식을 먹기도 한다. 특히 명절 전투를 앞두고 한 번씩 자극적인 음식을 먹어주면 전투력이 상승하는 기분이랄까. 엄청난 양의 음식을 하면서 내가 먹을 음식을 만들 힘은 없다는 게 아이러니긴 하지만 말이다.


사실은 밥을 해 먹는 행위보다, 따뜻한 밥을 나눌 때의 분위기를 애정한다. 먼 곳의 반찬은 가까이에 놔주고 하루의 농축된 이야기를 보탠다. 힘든 일, 고된 일, 외로운 일을 나누며 밥알을 꼭꼭 씹다 보면 슬픔도 함께 꿀꺽 넘어갈 때가 많다.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연애란 게 서로의 일상에 관심을 갖고 기쁨이 많아지도록 돕는 일이라면, 가족이란 지루한 밥을 나누는 관계가 아닐까.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알베르 카뮈의 스승으로 잘 알려진 장 그르니에는  작품『섬』을 통해 「행운의 섬들」이란 에세이를 발표했다. 거기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달은 우리에게 늘 똑같은 한쪽만 보여 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 또한 그러하다. 그들의 삶의 가려진 쪽에 대해 우리는 추론을 통해서밖에 알지 못하는데 정작 단 하나 중요한 것은 그쪽이다." 타인은 범접하기 힘들고, 때론 자신조차 깨닫기 힘든 달의 가려진 면을 내보이는 관계가 주는 힘은 대단하다. 그것이 가족이 되는 건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다. 지겹고 어쩔 도리가 없는 인생을 함께 꼭꼭 씹어 온기를 나누는 사이. 주름진 얼굴에 꽃다발을 내밀고, 흰머리에 염색약을 발라주고, 좌절이 훨씬 많은 날들에 등을 내어주는 마음. 밥 하기는 여전히 지겹지만, 밥 먹기는 즐거운 사람들이 많아지길 소망한다.

우리의 소박한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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