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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Nov 04. 2022

아니 땐 굴뚝에서도 연기 난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맑은 물을 흐리듯, 차라리 정보를 차단하라.

 얼마 전, 동네에서 큰 소동이 있었다. 여덟 살 여자아이가 학원 버스에서 내려 엄마를 기다리는데 40대 정도의 남성이 다가와 엄마가 아프니 같이 병원에 가자고 했다고 한다. 아이는 “엄마가 곧 올 거예요.”라면서 거절했고 다행히 이내 엄마와 만나 귀가했다는 이야기였다. 이 소식은 빠른 속도로 퍼졌다. 가장 먼저 접한 건, 학교에서 보내주는 온라인 공문이었다. ‘학교’라는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학교장의 인가를 받아 전파된 소식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학부모회는 술렁였고 며칠 뒤 아파트에서도 방송되었다. 그러자 동네가 뒤집혔다. 지역 카페와 맘 카페에서는 둑이 무너지듯 이야기가 쏟아져 나갔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도 들었다며 댓글을 달고 글을 캡처해 이곳저곳으로 퍼 날랐다. 누군가 어릴 적 들었던 이야기나, 비슷한 유형의 납치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어느새 ‘자신도 들었다’는 말은 댓글을 단 사람의 동네에서도 ‘발생했다’는 말로 변형되어 다른 글에서는 00동, xx동, △△동 등 수많은 곳에서 같은 시도가 있었고 전문 납치범이 우리 시에 돌아다닌다는 이야기가 뉴스로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인근 학구에서 납치 시도가 있었다고 하니 유의 바랍니다”라는 말을 오인해 “우리 동네,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있었다”고 증언하기 시작했다. 그 글은 맨 처음 어디에 올린 글인지 알 수 없지만, 무수히 캡처되어 돌아다녔다. 나중에 길에서 만난 사람은 “학교 앞에서도 있었고, 학원 버스 정류장에서도 있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들릴 때마다 사건은 확대되었고 더 소름 끼치고 두려운 괴담으로 변해있었다. 정확한 출처를 물으면 제대로 대답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사실 나는 그 소문을 믿기가 어려웠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문으로 인해 고생하거나 골머리를 앓은 적이 있을 텐데, 나는 당사자가 직접 말하고 여러 번 진상 파악이 된 일이 아니라면 쉽게 믿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번에도 두려움으로 판단력을 흐리고 싶지 않았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단체 채팅방에 아무 설명 없이 캡처된 글 하나가 올라왔다. 해당 소문은 맘 카페에 한 사람이 글을 올리면서 시작되었는데, 그 글 자체가 거짓이라는 내용이었다. 한 아이가 엄마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시작되었고, 경찰에 신고된 바도 없으며, 소문으로 인해 경찰에서 조사를 해보았으나 CCTV에 아무것도 찍혀 있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캡처된 글에는 이렇게 상세한 내용은 없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짧고 두루뭉술하며 딱딱한 어조로 쓰인 글이었다. 무슨 사건에 관한 것인지, 어디에서 퍼온 글인지, 그래서 그 소문이 진짜인지 아닌지, 어디 동네에서 확산된 말인지조차 불명확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정정된 내용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경찰서에서 직접 해당 사건은 아예 발생하지 않은 일이라고 밝혔지만, 괴소문이라는 정정 보도는 쐐기를 박은 듯 그 자리에만 멈춰 있었다. 첫 소문과 달리 퍼지지 않았고 열성적인 반응도 없었다. 알고 보니 이미 기정 사실화된 거짓 소문은 사람들의 두려움을 타고 몇 년 주기로 계속 반복되는 것 같았다. 몇십 년 전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시골 집 아궁이>

  


납치는 정말 끔찍한 일이고, 사실이 아니더라도 조심해서 나쁠  없다는 사람들의 말도 일리가 있지만 ‘소문이라는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돌이켜 보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아니  굴뚝에 연기   없다 분명 무언가 있을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굴뚝에 불을  지피더라도 연기가 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   생겨나기 시작하면 소문은 확신이 되어 버린다.  없는 말이  리를 가고,  사람이 모이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 낸다고 하지 않는가. 다행히 이번 사건으로 인해 피해를  사람은 없어 보이지만, 누군가 연루된 소문에서는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을까?  또한 사람들에게 건네 들은 말을 의도적으로, 혹은 무심코 믿어 버린 적이 얼마나 많을까, 돌아보았다. 웬만해선 출처가 불명확하거나 입으로 전해오는 말은  믿지 않지만, 그럼에도 내가 쉽게 믿음으로써 상처받고 힘들어한 사람들은 없었을까? 근거 없는 말을 믿어버리는  사실을 확인하고 걸러 듣는 것보다 얼마나 쉽고 편한 일인지, 소문을 믿지 않는 것은 중력을 거스르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어렵다고   수는 없다. 언제나  나은 세상은 누군가의 불편함이 모여 이루어진다. 당사자의 직접 발언이 아니고서야 먼저 판단하고 입에서 입으로 전달하는 일을 자제해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일본의 사상가 사사키 아타루는 그의 저서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서 다른 사상이나 비평을 믿지 말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피력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지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떤 것도 쉽게 믿지 않으며 정보를 차단하고 차라리 어리석음을 선택하라고 설득한다. 질 들뢰즈와 하이데거의 말도 인용하는데 매우 재치 있는 내용이다. “질 들뢰즈의 강력한 말이 있습니다. “타락한 정보가 있는 게 아니라 정보 자체가 타락한 것이다”라는. 하이데거도 ‘정보’란 ‘명령’이라는 의미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다들 명령을 듣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정보를 모은다는 것은 명령을 모으는 일입니다. 언제나 긴장한 채 명령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소문을 접하며 사사키 아타루의 말이 떠올랐다. 차라리 정보를 차단하고 그 시간에 책과 사유로 견고한 성을 쌓아 올리는 게 올바른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정보가 다 유용하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타인의 말에 잎사귀 정도야 흔들릴 수 있지만, 뿌리까지 뽑혀서는 곤란하다. 단단한 뿌리는 깊은 사유와 자신만의 견고한 성에서 나온다.


20221104


<이 추위에 민들레가 피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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