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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Jan 24. 2023

천연덕스럽고 괴상한 시골살이

시골은 환상이 아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는 낭만적인 시골이 나온다. 시험, 연애, 취업 뭐 하나 뜻대로 되지 않고 실패만 거듭하던 주인공 ‘혜원’은 고향인 시골로 내려온다. 직접 키운 농작물로 정성스러운 음식을 매끼 만들어 먹으며 쉼을 누리고 정서를 회복한다. 그곳에서 오랜 친구들을 만나 정겨운 친밀감도 누린다. 흙을 발라 기워 올린 기와지붕, 아무렇지도 않게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 백구, 꽁꽁 언 땅에서 뽑은 배추로 만든 전과 사과꽃을 넣은 파스타, 직접 빚은 막걸리와 식혜. 음식을 통해 시간이 흐름을 느끼고, 자본주의와는 거리와 먼 이상국 같은 인상마저 준다.      


  또 다른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도 현실과 단절된 듯한 산골 마을이 나온다. 개봉한 지 꽤 지났지만, 팝콘이 벚꽃처럼 튀겨져 날리는 모습으로 유명한 이 영화는 순박한 시골의 절경을 보여준다. 한국 전쟁이 발발한 당시 낙오된 국군과 인민군, 연합군이 어울려 긴장감과 유대감을 형성한다. 멧돼지를 잡아먹고, 산을 타며 약초로 병을 치료하는 모습을 보면 유쾌한 웃음이 터져 나온다.     


  도시 생활이 익숙한 이들에게 시골의 인상을 물으면 나중에 나이 들어서 귀촌하고 싶다거나 농사지어 먹을 만큼만 심어 소탈하게 살고 싶다거나 최불암이 등장하는 TV프로 <한국인의 밥상>을 말하기도 한다. 탁 트인 절경을 보며 잡은 물고기로 마당에서 요리하고 진득한 손맛이 담긴 음식 맛을 느끼고 싶은 탓일 것이다. 나영석 PD의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 역시 도시에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한 끼를 낯선 시골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형식이다. 마당에 커다란 아궁이를 놓고 밭이나 바다에서 요리 재료를 공수해 와 구슬땀을 흘리며 평상에서 밥을 먹는다. 그 모습을 보면 당장에라도 부엌에 달려가 커다란 도마에 중국식 식도를 들고 무라도 썰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실제 시골살이는 어떠할까? 도시살이라는 말로 누군가의 삶을 형용할 수 없듯 시골 생활도 마찬가지이다. 모두가 사는 게 다르고 다양하니 한마디로 정의하긴 힘들다. 다만 분명한 점은 영상매체에서 보는 시골 모습이 현실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시골 사람들도 영화관과 TV를 통해 배우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게 아니겠는가. 물론 완전한 허구라고도 할 수 없다. 농촌에서는 직접 키운 농작물을, 어촌에서는 손수 잡은 수산물을 주로 먹기 때문이다. 영화처럼 크고 묵직한 상품을 먹는 게 아니다. 좋은 건 내다 팔거나 자녀에게 보내고, 흠집 나고 작고 벌레 먹은 작물은 대충 잘라먹는다.     

마트에서 사 온 재료들로 만든 케일 스프링롤

  내 고향은 적당히 한적한 시골 동네이다. 앞산에서 내려온 너구리와 고라니가 닭장과 밭을 헤집어 놓는다. 비가 내리면 흐르는 얕은 계곡에는 1 급수에만 산다는 가재가 도랑 친다. 두더지가 고구마밭을 뒤집어 놓고, 길에는 난데없이 멧돼지가 지나가기도 한다. 엄마는 마당 아궁이에서 옥수수를 삶고 손두부를 만든다. 그러나 차로 10분 거리에 기차역이 있고 중형 마트들이 즐비하며 거실에는 Sky Life가 나오고 LTE가 터진다. 시골 사람이라고 순박한 것도 아니다. 죄를 지어 감옥에 간 사람도 있고 이웃의 물건을 훔치고 아무 데나 쓰레기를 무단투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서로의 살림살이를 저울질하고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욕심내기도 한다. 오래된 상수도관에서는 녹물이 나오고, 지하수는 오염되어 수돗물을 선호한다. 집에 없는 식품은 마트에 가서 사 와야 하고 스마트 폰을 두드려 네 땅과 내 땅을 가른다. 누군가 버리고 간 양쪽 눈 색깔이 다른 오드아이 스코티시 폴드 고양이가 창고에서 음식물을 훔쳐 먹는다.      


  시골은 환상이 아니다. 억척같이 살림을 살고 허리가 꼬부라져야 쥐코밥상이라도 먹는다. 한 시간에 한 대 다니는 마을버스는 앞뒤로 20분이나 차이 나게 운행 시간을 안 지킨다. 병원을 가려면 그런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전문의를 한 명쯤 만날 수 있고, 이마저도 정확한 장비나 체계가 없어 기차를 타고 지역 대학 병원쯤은 가야 제대로 된 진료를 기대할 수 있다. 네브래스카 농장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마이 안토니아』라는 소설을 쓴 윌라 캐더는 시골의 고단한 삶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시골의 겨울은 너무 길다. 겨울은 오래돼서 상하고, 다 낡고, 나이 들어 음침할 때까지 계속된다.”     

병충해로 한 해 농사를 망친 배추밭...

  그럼에도 이 불편하고 투박한 시골 마을을 사랑한다. 손톱 밑에 검게 낀 때를 수세미로 벅벅 문질러 닦고, 장화에는 무거운 진흙이 가득해 자동차 바닥이 온통 흙투성이고, 자외선과 먼지로 얼굴에 주름과 기미가 가득하며, 무엇을 사든 도시보다 한정적이고 비싼 가격조차도 마음에 품는다. 화장실 벽을 타고 기어오르는 집 거미와 문틈을 파고드는 돈벌레, 추운 날씨에도 어김없이 윙윙거리는 모기와 파리떼, 마당을 거닐 때 얇은 슬리퍼 밑창 아래로 느껴지는 뾰족한 돌조각의 감촉, 코가 시린 위풍과 쭈그려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씻어야 하는 세면대도 감수할 수 있다. 시골의 매력은 순박함이 아니라 자연스러움이다. 느리고 조용하며 계절과 날씨의 변화를 피부로 느낀다. 사람이기에 지닌 옹색한 마음과 풍요로움, 지대한 관심과 관찰, 내 일 네 일이 따로 없는 연결성, 점점 낮아지는 산등성이와 이웃의 들고 남을 아는 지혜가 몸에 밴다.     


  시골로 향하는 사람들이 반갑지만, 제대로 알고 방문한다면 환영받을 것이다. 밭에 심은 작물이나 마당에 핀 꽃을 함부로 꺾어가면 안 된다. 나무도 땅도 다 주인이 있다. 어디를 가든 얻으려는 마음보다 주려는 넉넉함이 사랑받는 지름길이라고 믿는다. 시골 사람들도 나눠 주는 음식과 선물에서 정을 느낀다. 돈과 공산품도 필요하고, 심지 않았거나 망쳤거나 제철이 아닌 식료품은 사다 먹어야 한다. 피부가 망가지면 피부 관리를 받고 싶고, 백화점에서 쇼핑도 하고 싶다. 도시나 시골이나 주된 생업이 다르고 사람 수의 많고 적음이 다를 뿐이지 다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이다. 영화 속 힐링은 노동 없이 소비와 즐김만 있는 ‘여행’에 있는 것이지, 여유 없이 팍팍한 거주지에 있지 않다.      


  다만 시골 사람들은 신발에 흙을 묻히고 산다. 비가 오면 진흙, 눈이 오면 언 흙, 계절마다 고개를 드는 각종 잡초,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도깨비 풀, 아무렇게나 퍼져있는 들꽃과 눈 마주친다. 나는 바로 이 대지의 힘을 믿는다. 발바닥에 흙을 묻히고 사는 사람들에겐 인정이란 게 있다. 모자라고 거칠어도 사람에 대한 이해심이 흐른다. 하나를 받으면 열 개로 베풀고, 생명에 대한 자비가 있다. 민들레도 잠을 자도록 밤에는 가로등을 끈다. 빗물을 받아 호박 넝쿨을 적셔주고 어리고 약한 것들을 더 감싼다. 더디지만 바쁘고 치열하다. 움직인 만큼 입속으로 들어간다. 시골은 천연덕스럽고 숨탄것들이 날 것 그대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일상 현장이다.


2023.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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