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의 이유가 꼭 관광이 될 이유는 없잖아
이 급작스런 여행은 사실 내가 덕질하는 가수의 해외 콘서트에서 시작되었다.
그즈음 나는 에너지가 고갈되어 번아웃을 겪고 있었다. 삶에 대한 의욕의 가느다란 끈을 간신히 덕질로 연명하고 있던 차였다. 가수의 덕질은 그때 나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지치기 시작한 나는 두어 달 전부터 누구와도 말하기도 싫었고 누구와도 연락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게 가장 친한 친구나 가족이어도 마찬가지였다. 퇴근 후에는 아무 에너지가 남지 않아 그냥 멍하게 앉아 영상만 보았다.
그러다 가족 카카오톡방에 선언했다.
‘나 요즘 말하기도 지쳐. 누구한테 연락하는 것도 하고 싶지 않아. 말없어도 이해하고 전화드리는 것도 좀 대신해줘. 영혼 없이 그냥 있고 싶어.‘
생전 힘들다는 이야기를 안 하던 엄마, 아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서인지 무슨 말이 올라오면 바로 오던 가족단체톡방이 침묵 속에 멈춘 듯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다시 선언했다.
‘나 7월 00일에 혼자 해외여행 갈 거야.’
남편의 답.
‘오케이.’
참 뜬금없는 선언이었다. 그렇게 에너지가 바닥났던 내가 갑자기 의욕을 보이게 된 건, 바로 콘서트 때문이었다. 마침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해외 콘서트 투어 중이었다. 마침이라고 하기에는 주객이 전도되었다. 콘서트를 보러 가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그땐, 여행이 두 번째였다.
비용, 시간 등을 따져 예전 같으면 그냥 포기했거나 효율성을 따지며 다른 곳을 갔을 것이다. 하지만 자꾸 마음속에서 뭔가 꿈틀거렸다. 지금은 효율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내 마음이 기우는 곳으로 따라가기로 했다. 그래야 내가 살 것 같았다.
해외여행이라고는 엄마 칠순 기념으로 모시고 갔던 다낭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패키지여행으로 내가 따로 준비하는 건 거의 없었다. 그러니 이번이야말로 혼자서 모든 것을 준비하는 진정한 자유여행인 셈이다. 그만큼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나이 들어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건, 누구든 걱정인형이 되기 딱 좋다. 심지어 나 같은 무계획의 P형 인간조차도.
여행을 결정하고 나니 콘서트 티켓과 비행기, 숙소는 일사천리로 예약되었다.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의욕적이었다고? 저녁마다 의미 없이 보던 영상을 뒤로하고 여행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혹시라도 혼자 가면서 걱정스러운 상황이 생길까 봐 꼼꼼히 살펴보았다. 어둠에서도 느껴지는 가느다란 빛의 존재감처럼 나는 여행으로 한 줄기 삶의 희망을 느꼈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집을 떠난다는 건 홀가분과 함께 필요해 짊어질 짐의 무게를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집이란 안온함을 떠난다는 건, ‘설렘‘이라는 말의 이면에 있는 불안정과 무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그 불완전으로 인해 나의 통제를 벗어난 새로운 환경에 대한 기대와 경험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이 아니었다면 절대 마음먹지 못했을 것이다. 좋아하는 마음은 이렇게, 무모함도 감당할 용기를 준다. 망설이는 순간에 좋아하는 마음은 굳은 의지를 심어준다. 그로 인한 용기와 의지는 평소의 나를 뛰어넘을 기회를 주었다.
자, 이제 결정된 여행을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백팩에 넣을 짐을 정해봐야겠지? 그런데 다이소에서 꼭 사야 한다는 여행 필수템은 왜 이렇게 많은 걸까? 이러다 가볍게 가려던 백팩이 가득 찰지도 모르겠어.
-3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