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해외 혼자여행- 9. 진짜 여행은 이제 시작

예측하지 않았던 순간들의 연속

by 케이론

​공연장을 찾아 헤매던 첫날의 긴장이 풀렸는지, 어젯밤엔 눕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다. 일어나 보니 7시 반이다. 호텔 근처인 세나도 광장 쪽에 있는, 여행자들이 많이 간다는 ‘웡치케이’ 식당에 가서 아침을 먹기로 했다.

세나도 광장에 들어서자, 유럽풍 파스텔톤의 건물들이 물결무늬 바닥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 바닥의 물결무늬는 두 가지 색의 작은 블록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유명한 관광지답게 이른 시각인데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예전 이곳이 포르투갈령이었다는 걸 알 수 있는 이색적인 건물의 형태가 가득이었다.

찬찬히 감상하며 웡치케이에 찾아 들어갔다. 한국 관광객이 많아서인지 한글로 메뉴소개가 되어 있었다. 유명한 쇠고기볶음면과 새우완탕 둘 다 주문했다. 그러다 쇠고기볶음면이 나오는 걸 보고 바로 후회했다. 하나만 먹어도 배부를 양이었다. 맛있게 먹었지만 결국 둘 다 조금씩 남길 수밖에 없었다.

커피를 시원하게 마시고 싶어서 근처의 카페를 찾아갔다. 카페 옆 계단 위로 세인트폴 성당이 보였다. 카페 안은 아주 깔끔한 실내디자인으로 되어 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통로가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반대편 거울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내가 보였다.

커피를 마시면서 이번 여행의 로망이었던 첫 드로잉을 했다. 출발하면서 찍어두었던 사진들을 보면서 천천히 선을 그었다. 거의 1년 반만의 드로잉이었다. 오랜만에 스케치 없이 펜으로 하니 선도 지저분하고 전체적인 균형도 엉망이다. 그래도 시작이 중요하니까. 그렇게 간단한 5개의 선 드로잉을 완성했다.


카페를 나와 세인트폴 성당으로 향했다. 세인트폴 성당은 생각보다 거대했다. 이곳은 17세기 선교사들이 세운 동양 최대 규모의 성당이지만 현재는 다 파괴되고 석조의 외벽과 계단만 남아있다. 이토록 텅 빈자리에서 느껴지는 존재감이라니, 허무와 경외가 동시에 밀려왔다. 원 건물이 잘 보존되었더라면 정말 엄청난 위엄을 보여줬을 거라는 생각에 안타까웠다.


옆의 몬테 요새도 들렀다. 많은 사람들이 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나도 온몸이 이미 땀으로 범벅이었다. 챙겨 온 휴대용 선풍기 바람은 무기력했다. 아이스크림 가게도 들렀다. 받자마자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이 내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다. 호텔로 돌아와 씻고 다시 나갈 준비를 했다.

근처에 딸이 에그타르트로 유명하다고 알려준 ’ 마가렛 카페 이 나타’를 찾아갔다. 야외 테라스가 펼쳐진 카페를 보자마자 고흐의 ’ 밤의 카페테리아’가 떠올랐다. 이미 많은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에그타르트와 밀크티는 담백한 단맛으로 잠시의 휴식을 풍성하게 해 주었다. 딸이 가보라던 근처 호텔 카지노에도 들어가 보았다. 화려한 조명만큼 사람도 정말 많았다. 나도 조금만 해볼까 하다가 이동할 시간이 되어 그냥 나왔다. 한 번 해볼걸 그랬나. 혹시 알아 일확천금.. 에이, 됐다.


드디어 마카오 타워에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을 찾아갔다. 이번 여행에서는 택시보다는 대중교통으로 다니고 싶었다. 버스나 마카오 경전철인 LRT를 경험해 보기로 마음먹었던 터였다. 마카도 버스는 거스름돈을 주지 않는다는 정보를 듣고 버스비에 딱 맞는 동전도 준비했다. 그런데 타려는 버스가 한참 동안 오지 않았다. 혹시 또 어제처럼 헤매는 건 아닐까, 마음이 조급해졌다. 다행히 저 멀리 버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버스를 탔다.


마카오 타워까지는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낯선 길 위에서는 모든 것이 조금씩 더 멀게 느껴졌다. 그런데 기사님이 내가 내릴 정류장을 지나가 버렸다! 가는 동안 멍하니 있다가 하차벨을 누를 타이밍을 놓쳐 정류장을 지나친 것이다. 순간 당황했지만 다음에 내리면 되겠지 싶었다. 다음 정류장까지의 시간이 어찌나 길던지. 서둘러 내려 다시 버스를 타려다, 멀리 보이는 마카오 타워를 보고 걸어보기로 했다.

걸어가는 게 옳은 방법이었나 싶을 정도로 덥고 습했다. 그래도 점점 가까워지는 타워를 등대 삼아 걸어 드디어 도착. 도심이 한눈에 보이는 57층의 실내 전망대로 올라갔다. 내가 묵는 호텔이 있는 마카오 반도와 화려한 카지노 호텔이 있는 섬이 보였다. 그 사이를 잇는 긴 다리에는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점점 날이 흐려져 시야가 흐릿해졌다. 좀 더 맑은 날씨였으면 좋았을 텐데 조금 아쉬웠다. 시원한 실내에 앉아 여유 있게 그림을 그렸다.


밖이 더 어두워지더니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번개와 함께 제법 많이.

“어? 야간 버스투어 해야 하는데?”

밤에 예약한 야간 버스투어 관광이 있었다. 어떻게 하나 싶어 검색하니 비옷을 입고 그대로 진행한다고 한다. 버스투어 시간인 8시 반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서 야경도 즐길 겸 걸어가 보기로 했다. 다행히 우산도 있었으니까.

타워에서 내려오자 비가 그쳤다. 다행이다. 걷기에도 편해졌다. 버스투어 장소까지는 4킬로 정도 떨어져 있었다. 구글지도에 의지하여 쭉 뻗은 거리와 고가도로로 복잡한 곳을 한걸음 한걸음 지났다.

약간 헤매다 보니 생각보다 걸렸지만 다행히 출발 시간 전에 도착했다. 드디어 버스에 탑승할 시간. 그런데 그쳤던 비가 다시 오기 시작한다. 직원은 비옷을 나누어 주었다. 설마 그치겠지 했는데 점점 더 세차게 내렸다. ​출발한 버스는 마카오 반도와 코타이의 화려한 호텔과 카지노 주변을 천천히 돌았다. 비는 점점 많이 내렸다. 머리와 얼굴은 홀딱 젖어 빗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이 어이없는 순간에도 웃음이 연신 나왔다. 한 시간가량 기억에 오래 남을, 빗 속 여행을 마무리했다.


김영하 작가가 공항에서 어이없는 일을 당하면서도 글감이 생겨서 좋았다고 했다. 나도 밋밋하지 않은, 깊이 남을 여행이었다. 실수투성이의 하루였지만, 마음먹은 것들을 하나씩 해내는 이 시간이 좋았다. 실수도 어설픔도 결국 좋은 글감이 될 테니 말이다.

여행이란 결국, 익숙함에서 벗어난 ‘나’를 만나는 일이다. 마카오의 비와 바람, 실수와 웃음 속에서 나는 그 낯선 나를 반가이 마주했다.

드디어 내일은 마카오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내일은 과연 별 일없이 지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