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도 빨간 불이 필요하다
후텁지근한 바람이 불어오고 땡볕으로 온 세상이 끓어오르는 7월 초, 학교는 학기말을 달려가느라 바빴다.
성적 처리, 행사 진행, 업무…. 이 단출한 말들 속에 결코 짧지 않은 과정들이 숨어있음을 우린 잘 안다. 게다가 올해는 성적을 비롯한 교육과정 전반의 평가와 정보를 넣는 시스템이 바뀌고 그마저 오류가 잦아 기운 빠지는 나날이 이어졌다. 아이들도 방학이 오는 걸 넘치는 에너지로 보여주고 있었다.
교실에 도착한 7시 30분, 먼저 창문을 열었다. 밤새 익었던 교실이 신선한 공기로 채워졌다. 시간이 여유 있으면 마음을 정돈하는 아침 드로잉을 간단히 그렸다. 8시가 넘으면 오늘의 업무를 확인하고 공문을 작성하기도 하고 수업을 준비했다. 그러다 보면 복도가 시끌벅적해지면서 아이들이 하나 둘 몰려오고 다시 바쁜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돌아간 오후에도 아이들 교과보충과 공문 처리, 수업 준비, 회의 등 정신없이 보내다 보면 어느새 퇴근시간이 되곤 했다. 화장실 가는 것도 잊을 때가 다반사였다.
여전히 정신없이 일주일을 보낸, 어느 금요일 아침이었다. 7시에 출발하여 학교까지 운전하고 오는 동안 시뮬레이션 되는 오늘 할 일로 머릿속이 바빴다. 출근길에 이미 업무 중이었다.
‘오늘은 임원선거가 있지? 오후에 회의도 있는데.’
‘아, 다음 주 주간학습안내랑 이번 주 학급살이 글도 수정해서 출력해야지.’
‘지난번에 다녀온 연수 보고서도 써야 하는데.’
‘아, 맞다. 막내 영화도 예매해 달라고 했는데.’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은 학교 업무와 집안일까지 섞여 출근길이 생각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도로 앞을 보는 눈과 머릿속은 서로 딴생각 중이었다.
학교로 가는 골목으로 들어서기 위해 우회전을 하려는 순간, 빨간 신호등에 걸렸다. 신호등의 숫자판에 80이 보인다. 한참 서있겠구나.
앞의 풍경을 멍하니 보았다. 구름 하나 없는 연한 파스텔톤의 이른 아침 하늘색이 눈에 들어왔다. 그 파란 하늘아래 존재감이 두드러진 빨간 신호등.
순간, 학교 일도 집안 일도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아, 예쁘다.’
그 말간 아침 하늘에 강렬한 빨간색.
“휴!”
크게 숨을 한 번 쉬었다. 학교일, 집안이 희미해졌다. 그동안 이렇게 잠시 숨 쉴 여유도 없었구나. 그래, 잠시 멈춤이 필요했어. 완전히 멈춘 게 아니라, 잠깐 숨 고르기였던 거야.
초록불이 들어왔다. 다시 핸들을 움직였다. 주차를 하고 파란 하늘을 한 번 더 올려다본 뒤 교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방금 본 아침에 본 풍경을 그렸다. 하늘과 빨간 신호등. 달궈진 엔진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던 내 하루가 잠시 멈춰 선 순간이었다.
빨간 불은 경고의 색이지만, 삶에서는 알아차림의 신호일지도 모른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흔한 말처럼, 내 속도에 맞게 조절되지 않아 삶의 방향이 흔들릴 때, 잠시라도 빨간 신호등 앞에 서는 게 좋은 듯하다. 잠시 서서 알아차리는 이 시간이, 삶을 다시 움직이게 한다.